■ 빛과 실

한강 지음│문학과지성사

소설가 한강. ⓒ전명은
소설가 한강. ⓒ전명은

‘사랑이란 어디 있을까?/ 팔딱팔딱 뛰는 나의 가슴 속에 있지.// 사랑이란 무얼까?/ 우리의 가슴과 가슴 사이를 연결해주는 금실이지.’

소설가 한강은 지난해 노벨문학상 수상 강연 ‘빛과 실’을 통해 자신이 8세 때 쓴 시 한 편을 소개했다. 가슴 속에 품은, 뻗어 나와 가슴과 가슴을 연결하는 ‘금실’인 사랑. 어린 시절 발견한 그 사랑이 노벨문학상을 타던 때까지 모든 작품을 금실처럼 연결하고 있다고 그는 말했다.

책의 맨 앞에는 강연문 전문이 수록됐다. 작가는 질문의 끝에 다다를 때 장편소설을 완성할 수 있다고 말한다. 세 번째 장편소설 ‘채식주의자’에서는 ‘우리는 얼마나 깊게 폭력을 거부할 수 있는가?’ 물으며 차라리 식물이 되길 선택한 주인공의 이야기를 다뤘다. 이후의 집필을 통해 질문은 뻗어 나간다. ‘바람이 분다, 가라’에서는 마침내 살아남아 진실을 증거해야 하지 않느냐 묻고, ‘희랍어 시간’에서는 폭력으로부터 살아남는 일은 서로의 온기를 통해서만 가능하지 않으냐 묻는다.

‘소년이 온다’에 이르면 많은 독자에게 울림을 준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닿는다. 소설 제목의 현재형 동사 ‘온다’는 무한한 애도를 통해 과거는 언제나 현재가 된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작가는 제주 4·3을 다룬 최근작 ‘작별하지 않는다’에서 ‘우리는 얼마나 사랑할 수 있는가? 어디까지가 우리의 한계인가?’ 물어본다. 결국 사람을 살리는 온기와 애도의 근원에는 사랑이 있다는 것이다. 금실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한 작가는 지난해 12월 스웨덴에서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계엄 사태를 비판하며 장갑차와 무장 군인을 막아선 사람들, 소극적 태도를 보인 젊은 군인과 경찰의 용기를 짚었다. 과거 제주, 광주에서의 참극이 반복되지 않은 것은 과거의 금실이 현재의 모두에게 이어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치 작품을 통해 한 작가의 가슴에서 나온 금실이 모든 독자에게 연결돼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이 책 역시 작가와 독자 사이를 잇는 또 하나의 금실이다. 책에 실린 시와 산문에는 그가 2019년부터 ‘북향 방’과 ‘북향 정원’이 있는 집에 살게 됐다고 적혀 있다. 볕이 잘 들지 않아서 거울로 빛을 반사시켜 식물을 보살핀 시간을 ‘정원 일기’로 담담히 풀어낸다. 겨우내 죽은 줄만 알았던 관중고사리, 둥굴레가 마침내 피어나는 것을 지켜보며 작가는 빛과 뿌리, 생명에 대해 이야기한다.

책의 맨 끝에 실린, 시와 산문 무엇으로 읽어도 무방할 ‘더 살아낸 뒤’에서 작가는 죽기 전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할 수 있을지 묻는다. ‘나는 인생을 꽉 껴안아 보았어/ (글쓰기로.)…충분히 살아냈어./ (글쓰기로.)’ 이렇게 책은 한국 최초 노벨문학상 수상자라는 부담 속에서도 작품을 계속 쓸 수 있는지, 광주와 제주의 고통을 살아낸 뒤에도 또 다른 질문을 이어갈 수 있는지 걱정하는 이들에게 답한다. 매일 생명의 경이를 깊이 느끼며 회복하고 있다고, 그리고 끝내 글쓰기로 계속 살 것이라고. 금실인 사랑은 끊어지지 않고 과거와 현재, 작가와 독자를 무한히 이어줄 것이라고. 172쪽, 1만5000원.

장상민 기자
장상민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