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데스크가 만난 사람- 지정학·국제경제 분석 전문가 김동기 변호사

 

Q. 관세전쟁의 의미와 대응방안

 

美국가부채 이자액 국방비 초과

보수 현실주의자들 위기감 커져

관세정책 같은 파격적 제안 준비

 

각국 보유한 외화 매각 유도하려

미 국채→100년물 할인 교환 등

실행 옮기면 더 큰 마찰 가능성

 

달러 대체할 수단 현재로선 없어

타국 협상 지켜보며 전략 짜야

韓 방위비 분담금 등 요구할 듯

미국 편 서되 中 적대시해선 안돼

김동기 변호사는 “미국 입장에서 생각하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정책은 과격한 측면이 많지만 중국과의 패권 경쟁, 심각한 국가 부채, 제조업 공동화에 따른 중산층 몰락 등에 대응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로 분석된다”며 “미국과 현 동맹관계를 유지하되 부담을 최소화하는 쪽으로 협상을 해나가야 한다”고 밝혔다.  박윤슬 기자
김동기 변호사는 “미국 입장에서 생각하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정책은 과격한 측면이 많지만 중국과의 패권 경쟁, 심각한 국가 부채, 제조업 공동화에 따른 중산층 몰락 등에 대응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로 분석된다”며 “미국과 현 동맹관계를 유지하되 부담을 최소화하는 쪽으로 협상을 해나가야 한다”고 밝혔다. 박윤슬 기자

인터뷰 = 유회경 경제부장 yoology@munhwa.com

김동기 변호사에게 인터뷰를 청한 건 순전히 팬심과 호기심 때문이었다. 그가 2020년에 낸 ‘지정학의 힘’을 우연히 접하게 됐는데 내용이 충실하고 다양한 지정학 이론이 잘 정리돼 있어 김동기란 이름이 머릿속에 남아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변호사가 왜 지정학 관련 책을 썼지?’ 이런 의문을 갖고 있던 중 ‘달러의 힘’이 나왔다. 책은 미국의 팍스 아메리카나를 가능케 하는 것은 달러의 힘이라고 주장하며 달러가 어떻게 출범했고 어떤 과정을 통해 기축 통화가 돼 현재에 이르고 있는지 유장하게 추적한다. 지정학과 달러는 어떻게 연결되는가. 호기심은 점점 커져 갔다. 이런 중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발(發) 관세전쟁이 터졌다. 트럼프 대통령의 목적은 어쩌면 심플하다. 미국의 무역수지와 재정 적자를 바로 잡고 무너진 제조업 기반을 되살리겠다는 것이다. 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중국과의 갈등과 경쟁은 불가피하다는 게 트럼프 대통령의 기본 생각인 것으로 보인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관세전쟁의 의미를 김 변호사에게 물어보았다. 지정학과 국제 경제를 포괄하는 좀 더 깊이 있는 통찰을 듣고 싶어서였다.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정책이 나오게 된 배경은.

“미국에 제조업 공동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1980년대부터다. 미국 정치사를 보면 정치와 경제가 밀접하게 맞물려 돌아왔음을 알 수 있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신자유주의를 처음 주창했고 이후 신자유주의는 수십 년간 미국의 주도 이념으로 득세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제조업 공동화는 심화됐고 환율을 인위적으로 조정하는 플라자합의 역시 이 흐름 속에서 나온 것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신자유주의는 큰 위기에 봉착한다.”

신자유주의란 스태그플레이션(경기침체 속 물가 상승)과 케인스주의 정책의 한계에 대한 반발로 등장해 세계 경제질서를 주도한 경제 사상 및 정책 노선으로 시장 중심주의, 규제 완화와 민영화, 자유무역과 세계화, 복지 축소, 금융화 등을 주요 특징으로 한다.

―금융위기 이후 미국 대중들은 어떻게 반응했나.

“금융위기 극복 과정에서 미국 정부는 망가진 금융 시스템을 복원하기 위해 월가의 거대한 금융회사들을 구제해줬다. 이때 분노한 사람들이 티파티 운동을 시작했다. 금융위기에서 촉발된 불만이 시차를 두고 정치적으로 표현된 것이 2016년 트럼프 대통령 당선이다. 우파 쪽에서만 불만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2016년 대통령 선거 당시 민주당 대통령 후보 중 한 명이었던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에 대한 높은 지지는 좌파 쪽에서도 불만이 상당했음을 알 수 있다.”

티파티 운동은 2009년 시작된 보수주의 정치 운동으로 당시 버락 오바마 정부의 의료보험 개혁과 대규모 경기 부양책 등에 반발하여 등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나.

“트럼프 대통령은 뉴욕에서 활동했지만 월가 금융 분야 인사들과는 일정한 거리가 있었다. 부동산 개발업자였기 때문이다. 그는 정서적으로 백인 노동자들과 친했고 특유의 어법으로 선동을 일삼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통령이 되기 훨씬 전부터 제조업 공동화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고 제조업을 부활시켜야 한다는 의식을 강하게 갖고 있었다. 그는 제조업 부활을 위해 관세를 갖고 공격적으로 나왔다. 트럼프 대통령만 이런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미국 공화당 안에서 현재 주류를 이루고 있는 보수적 현실주의자들을 말하는 것인가.

“그렇다. 보수적 현실주의자들은 전 세계가 꼭 자유주의적 가치를 모두 같이 가져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미국에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다른 나라들과 관계를 갖겠다는 세계관을 갖고 있다. 트럼프와 공화당 신주류(보수적 현실주의자)들은 네오콘(보수적 국제주의자)과 달리 국가 존립에 대한 위기의식이 상당히 높은 편이다. 특히 지난해 국가 부채 이자 비용이 국방비를 초과하면서 위기감이 더욱 커졌다. 스티븐 미란 보고서는 이들 집단적인 토론의 결과를 정리한 것이다.”

스티븐 미란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CEA) 위원장은 지난해 11월 ‘글로벌 무역 체제 개편을 위한 사용자 가이드’란 제목의 41쪽짜리 보고서를 작성했는데 현재 치러지고 있는 관세전쟁의 설계도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미란 보고서에 따르면 달러 약세를 유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미국 제조업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선 약달러가 필요하다. 미국은 무역수지에서 적자를 보고 있지만 자본수지에선 흑자를 유지하고 있다. 무역에서 돈을 번 국가, 특히 아시아 국가들이 죄다 달러 자산을 사니까 자본수지 흑자가 되고 결과적으로 강달러가 된다는 것이다. 미란 보고서에서는 달러 약세를 유도하기 위해 외국 통화당국이 보유 중인 달러 표시 외화보유액 매각을 추진할 수 있도록 제안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외국 통화당국이 보유한 미 국채를 100년물 할인 국채로 교환하는 파격적 아이디어를 제안한다. 미국이 제공하는 안전보장 우산으로부터 제외, 연방준비제도(Fed)가 제공하는 스와프라인으로부터 제외 등의 방식도 쓰일 수 있다. 외국 협조가 여의치 않을 경우 미국 단독으로 달러 약세를 유도하려 할 수도 있다. 외국 통화당국의 외화보유액 매각 유도를 위해 미 국채 이자 지급액 중 일부를 수수료로 징수하거나 Fed가 외환시장에 직접 개입해 달러 약세를 조성할 수도 있다.”

―실제 가능할까.

“글쎄 실제로 실행에 옮길 수 있을지 모르겠다. 만일 실행에 옮겨진다면 실행 과정에서 세계적으로 엄청난 마찰이 있을 것이다. 다만 미란 보고서에는 이 내용이 들어있고 지금까지 트럼프 정부가 이에 맞춰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점을 고려할 때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무시할 순 없다. 또 관세 정책은 트럼프의 글로벌 전략 가운데 시작이라는 점도 유념할 필요는 있을 것 같다.”

―최근 미 국채 금리 상승에서 드러났듯이 장기적으로 달러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지 않겠는가.

“물론 그럴 수 있다. 하지만 미 국채를 신뢰할 수 없어 매각한다고 치자. 그다음 다른 자산을 사야 한다면 무엇을 살 수 있을까. 달러 대체 수단이 있나. 현재로선 없다. 유럽연합(EU)의 유로화가 그 역할을 대신할 수 없고 중국 위안화도 마찬가지다. 달러의 힘은 시장의 힘인데 중국은 통제적 사고에 빠져 시장 개방에 나설 수가 없다. 장기적으로 달러 신뢰도가 떨어질 순 있겠지만 현재로선 대안 부재로 달러 지위가 생각보다 훨씬 오래갈 수 있다.”

―미국은 우리와의 관세협상에서 어떻게 나올 것인가.

“개별 국가별로 협상을 해서 이것 얻어내고 저것 얻어내고 할 가능성이 높다. 우리에겐 방위비 분담금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정밀지도 공개 등 비관세 요인들의 개선도 요청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상황이 무조건 불리하지만은 않다. 역설적으로 정부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바람에 미국과 다른 나라 관세 협상 추이를 지켜보면서 대응할 시간적 여유를 벌게 됐다. 더욱이 미국 입장에선 중국을 견제하는 게 최종 목적이다. 우리의 전략적 비중은 훨씬 높아진 면이 있기 때문에 이를 협상 과정에서 적극 활용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어떤 전략을 갖고 협상에 임해야 하는가.

“우리는 일단 미국 편에 서야 한다. 그게 우리 살길이다. 미국의 요구 중 수용할 수 있는 것은 수용하고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는 가운데 대중국 최전방 견제 동맹으로서의 우리 위상을 지렛대로 이용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조선, 방산, 원전 등은 중국과의 대척점을 세우는 가운데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업종들도 일부 있다. 중국의 힘이 너무 커지는 건 우리에겐 위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중국 역시 적대시할 필요는 없다. 손해 보는 게 많기 때문이다. 미국 편에 서되 지혜롭게 처신해야 한다.”

―왜 변호사 생활을 하면서 지정학이나 국제 경제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나.(인터뷰 말미에 가장 궁금한 이야기를 물어 보았다.)

“어렸을 때부터 호기심이 많았고 특히 국가 간 파워 게임에 관심이 있었던 것 같다. 미국 유학 시절 호되게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달러의 힘에 눈뜨게 됐고 미국 패권주의 근간이 달러라는 걸 깨닫게 됐다. 법대를 졸업하고 변호사 생활을 하고 있지만 내 나름대로의 답을 찾기 위해서 관심 분야에 대해 독학했고 어느 정도 답을 얻은 것도 같다.”

■ 김 변호사는…

△1960년 전남 담양 출생 △광주고 △서울대 법학과 △미국 코넬대 로스쿨 △제25회 사법시험 합격 △미국 뉴욕주 변호사시험 합격 △법무법인 동서양재(現)

“한국, 美北 밀착땐 북한과 경제적 관계 증진 고려해봐야”

■향후 동아시아 세력 구도 전망

북중 관계 언제든지 균열 가능

트럼프가 남북 중재자 될 수도

김동기 변호사의 최근 관심사는 북한이다. 미국의 글로벌 전략 창끝은 미국에 패권 경쟁을 걸어오는 중국을 향해 있다. 중국에 근접한 한국의 전략적 가치가 더 높아진 것은 그러한 이유에서다. 김 변호사는 상상력을 좀 더 발휘한다. 만일 북한이 중국을 떠나 미국 쪽에 붙는다면 동북아시아 지역에선 어떤 변화가 생길까.

김 변호사는 “동아시아 지정학적 구도의 가장 큰 특징은 중국을 중심으로 세력 불균형이라 할 수 있다”며 “중국의 국력은 점점 커지는 반면 한국이나 일본 등 다른 나라들은 상대적으로 쪼그라들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누구 하나 독주하지 못하도록 세력 균형이 이뤄져야 하는데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는 점이다. 그는 “흔히 중국이 북한을 통제한다고 생각하고 있으나 중국에 대한 북한의 반감은 상상보다 크며 언제든지 균열될 여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 의회가 설립한 미중경제안보심의위원회는 초당적으로 중국과의 무역 및 경제 관계가 국가 안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검토하고 의견을 피력하는 기관이다. 이 위원회는 지난 2022년 ‘중국-북한의 전략적 균열’이라는 보고서를 낸 적이 있다. 이 보고서는 북·중 사이에는 내재적 갈등이 있고 북한은 미국과 전략적으로 우호적 관계를 맺고 싶어 하므로 미국이 동맹들과 함께 북한을 활용해 중국을 견제하는 데 참여시키는 게 미국의 이익에 부합하고 동아시아 안정에도 기여할 것이라는 의견을 제시한다.

김 변호사는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때 미국과 북한 간 관계에서 상당히 큰 변화가 있을 수 있다”며 “만일 미국과 북한 간 관계가 해소되면 우리나라에선 안보에 대한 우려가 커질 수 있지만 한편으론 미국의 협조 아래 북한과의 경제적인 관계를 증진시키는 방안도 적극 고려해야 한다”고 밝혔다. 결코 쉽지 않은 문제다.

북한과의 관계 개선의 가장 큰 걸림돌인 핵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김 변호사는 “쉽지 않은 문제지만 미국이 중재자가 돼 남북 간 적대적 관계가 일정 부분 해소되고 북한 경제 개발이 이슈화되면 한국 기업들이 최대 수혜자가 될 수 있을 것”이라며 “신성장 동력에 목말라 있는 우리 경제에 예기치 못한 돌파구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유회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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