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밀가루 반죽을 기름에 튀겨 낸 뒤 설탕이나 시럽을 듬뿍 발라 먹는 이 음식, 그런데 이 땅에서는 이름이 셋이다. 바른 국어 생활을 하는 이들이라면 ‘도넛’을 먹는다. 그러나 미국계 기업이지만 미국 다음으로 많은 이 땅의 매장에서는 ‘도너츠’를 먹는다. 그러나 일제강점기를 경험했거나 그 직후를 산 사람들은 아직도 시장통에서 오래된 기름에 진한 갈색으로 튀겨진 것을 하얀 설탕 범벅으로 가린 ‘도나쓰’를 먹는다.
이 음식의 이름은 밀가루 반죽을 가리키는 ‘dough’와 견과류를 뜻하는 ‘nuts’가 결합된 ‘doughnut’이다. ‘dough’는 흔히 ‘도우’로 쓰지만 외래어 표기법을 따르자면 ‘도’로 써야 한다. ‘nut’은 ‘넛’으로 표기하지만 복수형으로 쓰이는 ‘nuts’는 ‘너츠’ 정도로 써야 한다. 그러나 외래어 표기법에서는 복수를 인정하지 않는 것도 감안해야 한다. 그 결과 외래어 표기법을 따르자면 ‘도넛’이 맞다.
그런데 우리 땅에 600개가 넘는 매장을 둔 다국적 기업에서는 규범을 어기고 ‘도너츠’를 쓴다. 요즘은 간판이나 포장지에 아예 한글 표기를 하지 않고 고유의 로고와 디자인만 사용하지만 다들 ‘도너츠’가 붙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일제강점기에 이 음식이 일본어 ‘ド-ナツ’로 소개되었으니 ‘도나츠’로 읽어야 하지만 외래어표기법에 따라 ‘도나쓰’로 쓰는 사람이 더 많다.
같은 음식이지만 그것을 가리키는 이름이 때와 장소에 따라 달라지는 사례는 흔하다. 특히 외래어 또는 외국어가 그런데, 도넛도 그중에 하나다. 규범을 따르자면 도넛이 되어야 하지만 이 땅에서 그토록 많은 돈을 벌어가는 다국적 기업의 무신경 또는 무례함도 놀랍다. 이 또한 규범의 잣대를 들이대면 얼마든지 고치게 할 수 있다. 그런데 밀가루가 아닌 찹쌀을 반죽해 짙은 갈색으로 튀겨 낸 뒤 설탕을 듬뿍 묻힌 ‘도나쓰’는 손대기 어려울 듯하다. 어릴 적 시장통에서의 강렬한 추억 때문에.
인하대 한국어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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