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달 국토교통부와 서울시가 토지거래허가구역 재지정안을 발표하면서 해당 자료에 ‘상급지’라는 표현을 4번이나 썼다. 상급지가 어느 지역이냐는 질문에 정부 관계자는 “선호 지역을 이해하기 쉽게 표현한 것”이라고 했다. 이날 토허구역 지정 대상으로 발표된 강남 3구와 용산구를 의미한다는 것이 가장 그럴듯한 해석일 것이다.
상급지가 있다면 중급지, 하급지도 있나? 인터넷 검색만 하면 쉽게 지역별 상·하급지 분류 체계를 접할 수 있다. 대체 이런 개념을 누가, 왜 만든 걸까. 급지는 수십 년간 축적된 정치·경제·사회·문화적인 요인들을 토대로 부지불식간에 생겨나 확산된 개념으로 보인다. 1970년대까지는 광화문과 종로 일대를 일컫는 사대문 안이 대한민국의 유일무이한 부촌이었다. 1980∼1990년대 강남이 개발되면서 부의 지도는 확장됐다. 강남 3구와 분당·평촌 등 1기 신도시, 과천·용인 수지와 같은 택지지구, 동탄·광교 등 2기 신도시, 강북 구도심의 ‘뉴타운’까지 서울 수도권 곳곳에서 대단지 아파트촌이 탄생했다. 단독주택 집주인이 아니라면 주로 그 집에서 세 들어 살았던 한국인 대다수는 점차 자가 아파트 소유주가 됐다.
단독주택은 집마다 입지와 형태가 다양해 시세 비교가 어렵다. 반면 표준화한 주거 형태인 아파트는 가격표를 붙이기가 너무 쉽고, 대중은 가격표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2000년대 들어 인터넷에서 아파트 가격을 실시간으로 비교·확인할 수 있었고, 2006년 실거래가 등록제가 실시됐다. 가격 서열화에 최적화한 환경이 조성된 셈이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서울 25개 구를 상급지, 중급지, 하급지로 나누다 못해 동별로도 계급도를 세분화하는 문화가 생겨났다.
이런 세태에 눈살이 찌푸려지는 것도 사실이지만 부동산 계급론이 정부 보도자료에까지 등장한 마당에 이를 인터넷 커뮤니티의 B급 문화로 치부하기도 어렵다. 이른바 ‘상급지’로 불리는 지역이 어떤 곳인지 객관적으로 따져보자. 교통·학군·일자리 등 다방면에서 좋은 조건을 갖춘 곳이다. 새 정부는 최선호 지역의 아파트 가격을 찍어 누르며 대중의 욕망과 싸우기보단 원하는 주거 상품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그런 주택을 많이 공급하기 위한 정책이 무엇인지를 숙고해야 한다. 이것만이 서울 아파트 계급을 타파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김영주 기자주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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