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숙 논설위원

전쟁은 살육과 약탈을 동반하지만, 아돌프 히틀러 독일 총통이 1939년 폴란드 침공을 신호탄으로 유럽 각국을 점령할 때 문화재와 예술품은 전례 없는 수난을 당했다. 아마추어 화가 출신인 히틀러는 유대인 소유 회화 및 문화재를 대놓고 약탈했고, 점령지 예술품도 전리품 수집 특수부대를 통해 조직적으로 반출했다. 조지 클루니 감독·주연의 영화 ‘모뉴먼츠 맨(2014)’에는 나치 강탈 예술품을 추적하는 특수부대의 활약상이 잘 드러나 있다. 이 부대는 오스트리아 알타우제 소금광산 등에 은닉된 나치 약탈 회화 등을 회수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유럽 각국은 히틀러의 마수가 뻗치기 전 보물급 문화재 대피 작전을 벌였는데 프랑스가 독일 침공 전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 등 핵심 소장품을 비밀리에 숨긴 것이 대표적이다. 루브르 박물관은 1939년 8월 25일부터 문을 닫고 3600점의 회화를 중요도 순으로 분류해 안전하게 철수시켰다. 특히, 모나리자가 벨벳 특수 포장에 싸인 채 6년간 5번에 걸쳐 피란을 다녔고 프랑스 남부 샤토 수르슈 지하창고에서 해방을 맞았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최근 뉴욕타임스엔 17세기 네덜란드 황금시대를 대표하는 화가 얀 페르메이르의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 등이 나치 시대를 견딘 스토리가 보도됐다. 헤이그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은 1940년 5월 독일이 네덜란드를 침공하기 직전 이 작품을 비롯해 렘브란트의 초기 걸작인 ‘니콜라스 튈프 박사의 해부학 강의’ 등을 미술관 지하에 보관한 뒤 북해 인근 아트 벙커, 그리고 최종적으로 벨기에 국경 마스트리흐트 동굴에 숨겼다. 히틀러가 17세기 네덜란드 회화를 좋아해 표적이 될 것이라는 판단 아래 펼쳐진 비밀 작전이다.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는 이 동굴에서 3년을 버틴 뒤 1945년 9월 헤이그로 최종 돌아왔다. 미술관 책임자들의 용기 있는 결단 덕분에 이 작품은 원작 그대로 보존됐고, 동명의 소설에 이어 영화로까지 만들어지며 세계의 예술 애호가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은 ‘폭풍에 직면한 전시(戰時)의 미술관’을 주제로 해방 80주년 특별전을 6월 29일까지 갖는다. 페르메이르와 렘브란트의 작품이 어떻게 나치의 광기를 견뎠는지 헤이그에 가면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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