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윤 한국군사과학포럼 대표
9·19 공동선언의 부속합의서인 ‘군사분야 남북합의서’는 2018년 9월 19일 체결됐다. 그런데 이 ‘9·19 남북군사합의’는 체결 당시부터 대한민국의 군사 대비태세를 뿌리째 허문 졸속 문서로 비판을 받았다. 그런데 북한의 지속적인 합의 위반에도 이를 문제 삼지 않은 문재인 정부의 대북 굴종적 행태가 문제를 더 악화시켰다. 이와 관련, 최근 비무장지대(DMZ) 내 북한군 감시초소(GP) 폭파와 관련한 군 현장검증단의 보고서가 공개되면서 문제의 심각성이 재조명되고 있다. 당시 군은 폭파 대상 북한 GP 지하시설에 접근조차 못 한 군 검증단 팀장들에게 ‘북한 GP 불능화 달성’이란 거짓 결론을 담은 보고서에 서명하도록 강요하고 DMZ를 관할하는 유엔군사령부에 ‘경계작전상 제한이 없다’는 거짓말 보고 정황이 포착됐기 때문이다.
이를 계기로 근본 문제를 재점검하고 재발 방지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먼저, GP 수는 우리보다 북한이 훨씬 많은데도 폐기 GP 수를 남북 양측 같게 합의한 게 문제다. 그마저도 북한 GP의 불능화는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사실상 북측은 160개이고 우리는 60여 개인데, 상호 11개씩을 없애기로 합의해 결과적으로는 우리가 훨씬 더 큰 손해를 본 것이다. 이에 더해 지역 단위로 GP를 없애기로 했지만, 북한은 지상시설만 폭파하고 지하시설은 그대로 보존했다. 북측은 우리 군 검증단의 접근도 이런저런 사유를 들어 틀어막았다. 우리는 11곳의 GP를 폭파했지만, 북한은 지하시설이 온전해 지난해 11월 군사합의 전면 파기 선언 후 단기간에 복구할 수 있었다. 이는 전쟁 초기 방어작전을 수행하는 국군에는 치명적이며, GP의 군사적 중요성을 정치 목적으로 희생했음이 분명하다. GP는 적 동태를 최일선에서 감시하는 곳으로, 유사시 적의 투입을 우리 부대에 경고하고 적의 조기 전개를 강요해 아군의 방어작전을 유리하게 이끌 수 있는 곳이다.
또한, 훈련금지구역인 완충지대 설정으로 손발이 묶여 손해를 본 쪽은 우리 군이다. 남북 양측의 군사력 대부분이 휴전선 부근에 있어 서울과 평양의 지리적 위치는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 9·19 군사합의 당시 군사분계선(MDL)으로부터 등거리로 훈련금지구역을 선정한 것은 큰 문제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판단했는데 그 우려는 현실이 됐다. 합의 이후 국군은 실사격 훈련장이 없어 전력에 큰 손실을 봤지만, 북한은 깊은 종심이 있고 우리와 달리 군이 마음만 먹으면 모든 민가지역을 훈련장으로 사용할 수 있어 훈련에 별 타격이 없었다. 야전 지휘관들은, 군단과 사단 정찰기들이 사실상 기능을 할 수 없게 되고 실사격과 연대급 이하 부대의 기동훈련조차 하지 못하는 등 훈련이 제한돼 실전감각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고 토로한다.
따라서 이렇게 불평등한 9·19 군사합의는 마땅히 파기해야 한다. 하지만, 행여 6·3 대선 이후 출범할 차기 정부가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9·19 군사합의를 다시 살리려고 할 경우에도 반드시 수정해야 할 부분이 있다. 훈련금지구역과 폐기할 GP 선정은 등거리, 등수가 아니라 ‘등거리 비율’과 ‘등수 비율’을 적용하는 것이다. 아울러, 합의 이행을 담보할 수 있는 국제감시단의 활동도 보장돼야 한다. 남북 간 군사적 긴장 완화는 필요하지만, 군사합의는 매우 신중하게 상향식(bottom-up)으로 검토돼야 한다. 정치적 목적의 졸속 합의가 얼마나 위험한지를 보여주는 9·19 군사합의는 역사적 증거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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