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규회의 뒤집어보는 상식

28일 충무공 이순신 탄신일 480주년을 맞았다. 이순신(1545∼1598) 장군은 임진왜란(1592∼1598) 때 풍전등화의 위기에 놓인 나라를 구한 시대의 영웅이다. 그는 직접 지휘한 전투에서 세계 해전사에 유례없는 23전 전승의 불패 신화를 썼다.
이순신 장군 하면 거북선을 떠올릴 만큼 둘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서울 광화문 이순신 동상 앞에도 어김없이 거북선이 놓여 있다. 왜군들은 거북선을 메쿠라부네(めくらぶね), 즉 장님배(盲船)라고 불렀다. 바깥에서 아무리 살펴봐도 배의 눈에 해당하는 것이 보이질 않아 붙여진 이름이다. 거북선은 명실공히 조선 최초의 장갑선(겉을 철판으로 덮어 적의 공격을 막을 수 있는 배)이며 조선 수군의 용맹성을 보여 준 대표적 전함이다.
거북선은 이순신 장군 때 처음 등장했을까? 그렇지는 않다. 거북선은 이미 오래전부터 있던 배였다. 신라시대 장보고는 동아시아 바다를 지배한 청해진(전남 완도에 있던 군사기지)을 경영하면서 배 위에 방어용 등껍질을 씌운 독특한 전투선을 개발했다. 이 배는 속도가 빠르고 활이나 창을 이용한 적의 공격을 잘 막아냈다. 마치 거북선과 흡사했다. 실제 거북선은 고려 말부터 개발되기 시작했다. 거북선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조선 초기 태종의 ‘조선왕조실록’에 나온다. ‘태종실록’에 “태종이 즉위 13년 2월 5일 임진도(臨津渡:임진나루)에서 귀선(龜船)과 왜선(倭船)이 서로 싸우는 상황을 구경했다”고 기록돼 있다.
엄밀히 말하면 이순신 장군은 거북선을 처음 발명한 사람이라기보다는 전통적인 거북선을 개량해 최강의 전함으로 재탄생시킨 지략가였다. 기존의 거북선 모양을 바탕으로 그 위에 철갑을 씌우고 여러 기능을 보완해 많은 대포를 장착할 수 있게 발전시켰다.
거북선은 임진왜란 후에 훨씬 많이 만들어졌다. 건조와 유지 비용이 비쌌지만 성능을 검증받았기 때문이다.
도서관닷컴 대표
주요뉴스
시리즈
이슈NOW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1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