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종훈의 백년前 이번週

사람은 누구나 자기만의 추억이 있다. 또한 같은 세대(世代)들만이 공유하는 추억도 있다. 지금은 서울에서 벚꽃놀이 명소로 여의도 윤중로가 손꼽히지만, 한때 가장 유명한 서울의 벚꽃놀이 명소는 어디였을까? 바로 ‘창경원(昌慶苑)의 밤 벚꽃놀이’다. 창경원은 일본제국주의 통감부가 1909년 11월 1일 개원한 유원지다. 창경궁 자리에 동물을 들여오고, 전각 일부를 헐어 서양식 정원과 건물을 지었다. 창경원은 1983년 폐쇄되기까지 시민공원 역할을 오래 했는데, 일제강점기부터 밤 벚꽃놀이로 유명했다.
1925년 4월 28일 동아일보에 실린 ‘불빛에 꽃향기, 창경원에 밤놀이’라는 제목의 사진이 눈에 띄는데, 벚꽃 아래 삼삼오오 모여 담소하는 아리따운 아가씨들의 사진이 실린다. 100년 전 4월의 벚꽃놀이는 어떻게 준비하고 진행되었을까?
1925년 4월 17일 매일신보를 보자. ‘창경원의 앵화(櫻花·벚꽃)도 다소간 늦게 피게 되었으나 오는 4월 27일, 28일경에는 장차 만개(滿開)될 듯한 고로 예정한 야앵(夜櫻·야간 벚꽃놀이) 개방의 준비를 25일까지에 전부 마치기로 하여 방금 분망(奔忙)한 중, 금년에는 전등도 200개를 더하여 700개로 한 즉 관광자의 인기는 자못 예상 이상일 것이라 한다. 여러 가지 가설물들이 특히 창경원에서 처음되는 장관(壯觀·훌륭한 볼거리)인 즉 시내 밤 구경의 인기는 모두 이곳으로 집중할 터인 바, 기간은 아직 확정치 아니하였으나 25일, 26일경부터 열흘 동안 예정이라더라.’
이런 준비 과정을 마친 창경원의 야앵은 4월 25일에 시작된다. 당일 동아일보 기사. ‘경성 시민의 봄놀이 터 창경원에는 곳곳마다 ‘일미네순(illumination·전등 장식)’이 있어 창경원의 야경은 지극히 아름답게 되었다. 창경원의 야간 공개는 오늘부터 매일 열릴 터인데 입장료는 작년과 같이 10전씩이라 한다.’
이런 창경원의 밤 벚꽃놀이는 경성 시민의 엄청난 인기와 함께 부작용도 따라서 많이 발생했는데, 그 부작용에 관한 기사들을 찾아보자. ‘수일 전부터 개방한 밤의 창경원에는 날마다 수만 명의 남녀 관객 중에는 탕자(蕩子)·음부(淫婦)들의 앵화 구경을 핑계로 밀약(密約·남몰래 비밀리에 약속) 장소로 이용하는 자도 있으며, 더욱이 모(某) 학생의 맥주병 나발도 한 가지 가관(可觀)이다.’(1925년 4월 30일 매일신보)
‘창경원의 밤은 4월 29일 밤에 13,673명, 4월 28일에는 14,573명이라는 많은 입원자(入苑者)를 보게 되었었는데…(중략)… 이와 같이 많은 사람이 모여들므로 인하여 창경원 앞길은 실로 혼잡을 이루어 여러 가지 위태한 경우도 적지 않은 터인데 관할 동대문 경찰서에서는 자동차는 물론 전차, 인력거 기타 자전거라도 절대로 속력을 내지 못하도록 엄중 취체를 할 터이라는데…(하략)’(1925년 5월 01일 조선일보)
추억이 아름다운 건 현실이 창백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추억이 그리운 요즘이다.
19세기발전소 대표
※위 글은 당시 지면 내용을 오늘의 독자들이 이해할 수 있게 풀어서 옮기되, 일부 한자어와 문장의 옛 투를 살려서 100년 전 한국 교양인들과의 소통을 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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