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철환의 음악동네 - 콜드플레이 ‘We Pray’

봄날에 ‘진달래 먹고 물장구치고 다람쥐 쫓던 어린 시절’을 구가(謳歌: 입을 모아 함께 노래)하던 귀요미는 이제 더 이상 어린이가 아니다. 어찌하랴. 진달래는 해마다 피고 다람쥐는 여전히 뜀박질하는데 한번 간 인생의 봄날은 다시 오지 않는다. 하지만 실망하긴 좀 이르다.

노래는 시간의 파수꾼이다. 흘러간 노래는 없고 흘러온 노래가 있을 뿐이다. 어느 날 예고 없이 약수처럼 그 시절 그 노래가 흘러나올 때 생수 한 모금으로 굳었던 몸이 반응한다면 비록 짧은 순간일지언정 우리는 소풍 가는 어린 음악대로 복귀한다. 흐렸던 눈은 맑아지고 묽어진 피는 붉어질 것이다. 김밥과 사이다를 가방에 넣고 교실(현실)을 벗어나 ‘그날 그 눈물 없던 때’(이은상 ‘가고파’)로 역주행한다.

올해(제45회) 장애인의 날 표어에는 봄이 세 개나 들어있다. ‘행복을 바라봄, 일상을 담아봄, 희망을 이어봄.’ 눈을 뜨고 보는 세상의 넓이는 한계와 경계가 뚜렷하다. 눈을 감으면 안 보이는 것들까지 볼 수 있다. 마음의 눈은 시력보다 시선이 중요하다. 한국의 레이 찰스(혹은 스티비 원더) 이용복은 번안곡을 많이 불렀다. ‘진달래 먹고’로 시작하는 가요의 우리말 제목은 ‘어린 시절’인데 원곡은 ‘Playground in My mind’(가수 클린트 홈스)다. ‘세상이 실망스럽고 사랑은 실종일 때 눈 감으면 마음속에 운동장 하나가 나타난다.’(When this whole world gets me down and there’s no love to be found I close my eyes and soon I find I’m in a playground in my mind)

4월 중 무려 엿새 동안 대화역 3번 출구에선 해지기 전부터 목마른 사람들이 꾸역꾸역 밀려 나왔다. 매번 5만 명이 마음속에 운동장 하나씩 품고 모였으니 그 기간 고양종합운동장은 운동(運動)장이 아니라 감동(感動)장이라 불러도 무방했다. 사전연습 없이도 앉았다 일어났다 요동치며 시종일관 관객이길 거부했다. 돈 내고 들어온 자들을 집단연희자(플레이어)로 만든 그날의 제사장은 바로 콜드플레이였다.

야광봉이나 휴대전화 조명 대신 친환경 재질로 만든 팔찌(LED 자이로밴드)가 요술을 부렸다. 나눠주니 그냥 팔목에 휘감았을 뿐인데 관객은 매스게임에 동원된 일급 요원들로 시시각각 변신했다. 암흑천지였다가 휘황찬란했다가 꽃이었다가 별이었다가 글자 그대로 색즉시공 공즉시색이었다. 명색이 쇼 연출가였던 나는 공연의 진화에 다소 무안해졌다. “기술과 예술이 협업하니 천상의 은하계를 지상의 은하수로 옮기는 일도 가능하구나.”

무대 위의 북극성과 객석의 뭇별들이 혼연일체가 된 공연은 일종의 부흥회(revival meeting)를 연상시켰다. 트와이스와 함께 ‘We Pray’를 부를 때 특히 그랬다. ‘정직해지길 기도합니다.’(Pray that we speak with a tongue that is honest) ‘겸손해지길 기도합니다.’(And that we understand how to be modest) ‘형제가 축복받길 기도합니다.’(Pray my brother is blessed)

함께 부르면 시든 영혼도 되살린다는 걸 30만 명이 입증했다. 초혼제를 마치고 지하철에서 휴대전화를 켰을 때 시국의 난맥과 함께 프란치스코 교황의 선종 소식이 눈에 들어왔다. 오늘 밤은 ‘We Pray’로 마음을 수습해야겠다. ‘비록 죽음의 어두운 골짜기에 있을지라도(Though I’m in the valley of the shadow of death) (생명의) 길로 이끌어줄 누군가 나타나길 우리는 기도합니다.’(And so we pray for someone to come and show me the way)

작가·프로듀서·노래채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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