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엘레지의 여왕 이미자 고별무대

 

열아홉 순정·황혼의 부루스 등

2600곡 중 대표곡 엄선해 열창

 

“동백 아가씨 금지 됐을때 떠올라

그 당시엔 죽어야 하나 싶었다”

 

“후배들이 전통가요 맥 이어가길”

가수 이미자(가운데)가 27일 고별무대를 마친 후 함께 무대에 선 후배 조항조(왼쪽부터), 주현미, 정서주, 김용빈 등과 기립박수를 치는 관객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쇼당이엔티 제공
가수 이미자(가운데)가 27일 고별무대를 마친 후 함께 무대에 선 후배 조항조(왼쪽부터), 주현미, 정서주, 김용빈 등과 기립박수를 치는 관객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쇼당이엔티 제공

“전통가요의 맥을 잇는다는 것, 외롭고도 고달플 길일 겁니다.”

가수 이미자(84)가 66년간 지켜온 ‘엘레지의 여왕’이라는 수식어를 스스로 내려놓으며 담담하게 소감을 말했다. 얼굴은 그 어느 때보다 밝고 편안했다. 오랜 기간 홀로 짊어진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듯 시종일관 미소를 지으며 함께 무대에 오른 후배 가수 주현미, 조항조, 김용빈, 정서주를 흐뭇하게 바라보고 칭찬했다.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경험한 세대를 위로하며 쉼 없이 달려온 예인(藝人)의 더할 나위 없는 대관식이었다.

이미자는 26, 27일 이틀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고별 무대 ‘이미자 전통가요 헌정 공연-맥(脈)을 이음’을 진행했다. 6000석은 순식간에 동났고, 미처 표를 구하지 못한 이들은 대극장 로비에 서서 밖으로 흘러나오는 이미자의 노래를 들으며 흥얼거렸다.

거대한 붉은색 천이 걷히고 푸른색 원피스를 차려입은 이미자가 등장하자 우레와 같은 함성이 쏟아졌다. 잠시 그 분위기를 만끽하던 그는 30주년 기념곡이었던 ‘노래는 나의 인생’으로 막을 열었다. “나와 함께 걸어가는 노래만이 나의 생명”이라는 가사는 그의 66년 가수 인생을 반추하는 듯했다. 노래를 마친 그는 전통가요가 ‘뽕짝’이라 불리고 ‘왜색이 짙다’는 이유로 질타받던 때를 떠올리며 “나라 잃은 설움부터 우리네 삶의 슬픔과 기쁨이 모두 다 담긴 노래였다. 그 가사의 내용을 곱씹으며 함께 견디고 살아왔다”고 자부심을 드러냈다.

이어 이미자가 후계자로 지목한 주현미(아씨·여자의 일생), 조항조(흑산도 아가씨·여로), 정서주(눈물이 진주라면·황포돛대), 김용빈(아네모네·빙점)이 그를 위한 헌정 무대를 꾸몄다. ‘여자의 일생’을 부를 때는 이미자의 과거부터 현재 사진이 스크린을 가득 채웠다.

다시 무대에 오른 이미자는 그동안 발표한 2600여 곡 중 직접 선곡한 대표곡이라며 데뷔곡인 ‘열아홉 순정’을 비롯해 ‘황혼의 부루스’ ‘기러기 아빠’를 연이어 열창했다. “보기만 하여도 울렁”이라는 가사로 대표되는 ‘열아홉 순정’을 마친 후에는 “열아홉 감성을 다 못 전해줘 미안하다”면서 여전히 소녀같이 수줍은 미소를 지었다.

약 2시간 20분에 걸친 이날 공연의 백미는 단연 ‘동백아가씨’였다. 장엄한 분위기로 도입부를 편곡한 ‘동백아가씨’를 부를 때 이미자는 실제 동백꽃이 된 듯 붉은색 수를 놓은 무대 의상을 입고 무대 위에 꼿꼿하게 섰다. 그는 이 노래가 22년간 금지곡으로 지정됐던 때를 떠올리며 “그때 제 심정은 ‘죽어야 하나’ 싶었다”면서 “해금될 때까지 끈질기게 기다리고 사랑해주신 여러분이 있었기에 오늘까지 행복하게 무대에 설 수 있었다. 은혜를 입었다. 감사하다”고 고개 숙였다.

진행을 맡은 황수경 아나운서가 ‘동백아가씨’의 가사를 인용해 “이제 헤일 수 없이 수많은 밤을 누가 위로해주나?”라고 아쉬움을 드러내자 이미자는 웃으며 “후배들이 잘 이어갈 것이다. 시대가 변함에 따라 달라질 것”이라고 답했다.

엔딩곡은 그가 50주년을 자축하며 2009년 발표했던 ‘내 삶의 이유 있음은’이었다. “나 아픔 속에서도 살아갈 이유 있음은 / 내 안에 가득 사랑이 / 내 안에 가득 노래가 있음이라”라는 가사에는 당시에도 은퇴를 염두에 두고 이 곡을 불렀으나 이후 16년간 더 무대를 지켜야 했던 이유가 담겼다.

이날 이미자는 한없이 자신을 낮췄다. “마지막을 이야기하는 것은 노래를 ‘안하는’ 게 아니라 ‘못하기’ 때문”이라며 “노래가 안 되지만 후배들과 전통가요의 맥을 잇겠다는 마음으로 공연을 열 결심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미자는 이날 여전한 발성과 감성으로 좌중을 압도했다. 이미자의 말에 황 아나운서가 “노래 잘되고 계세요”라고 만류하자 객석에서는 “맞아요!”라는 맞장구와 함께 박수가 쏟아졌다.

이미자가 “마지막”이라고 강조한 무대를 본 관객들은 공연이 끝난 후에도 쉽게 자리를 뜨지 못했다. 오히려 눈시울을 붉히는 관객들을 위로하듯 이미자는 “‘동백아가씨’ ‘기러기 아빠’와 제3대 히트곡 중 하나”라며 ‘섬마을 선생님’을 앙코르곡으로 들려줬다. 그는 “다 함께 불러주시면 저는 이 마지막 무대를 너무 행복하게 끝낼 것 같다. 같이 불러달라”고 당부했고, 관객들은 “예”라고 크게 화답한 후 합창했다. 몇몇 관객은 자리에서 일어나 덩실덩실 춤을 췄다.

이미자는 이날도 수차례 더 이상 이미자를 위한 무대는 없고, 신곡 발표도 없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전통가요의 맥을 잇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돕겠다”고 그는 말했다.

“후배들이 불러준다면, 제가 필요하다면 게스트로 출연하겠습니다. 하지만 ‘특별출연’은 싫습니다. 그냥 게스트면 만족합니다.”

안진용 기자
안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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