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권 산업부 차장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실세 트럼프 주니어가 금주 중 한국을 찾는 건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그는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공식적으로 지난 1월 그린란드, 3월 세르비아 등 두 차례 해외 일정을 수행했는데, 모두 이번 방한과 결이 다르다. 앞선 해외 일정은 트럼프 행정부의 영토 확장 의지와 트럼프 일가의 부동산 개발 프로젝트 등과 연결된 의도 있는 행보였다. 반대로 한국 방문은 트럼프 행정부의 의지보다는 절대적으로 한국 재계의 요청에 따른 움직임이다. 트럼프 주니어와 친밀한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이 가교 역할을 했다. 트럼프 행정부와 소통이 간절한 재계의 요청을 성사시킨 것이다. 정부나 정치권의 역할은 없었다.

복합 위기 속에 기업들만 고군분투하고 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지난 3월 미국을 직접 찾아 210억 달러(약 30조8500억 원)의 대미 투자계획을 발표했다. 대규모 관세 폭탄을 맞은 자동차업계가 글로벌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내린 전략적 방침이다. 역시 정부나 정치권 인사의 역할은 없었다. 지난 21일 장인화 포스코그룹 회장은 현대차그룹과 협력해 미국 루이지애나주에 전기로 제철소를 건설하겠다고 밝혔다. 해당 제철소는 포스코와 업계 1·2위 라이벌 관계인 현대제철이 추진해온 사업인데, 경쟁기업과 손을 잡은 것이다. 관세 전쟁의 직접적인 타격으로 존폐 위기에 내몰린 철강업계의 전격적이지만, 쉽지 않은 결정이다.

한시가 급한 기업과 달리 정부와 국회 등 공직사회는 느긋해 보인다. 지난해 12월 14일 대통령 탄핵소추로 시작된 국정 공백의 여파 탓인지, 성과를 기대했던 주무 부처 장관의 ‘2+2 통상 협의’도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는 ‘7월 패키지’를 들고 왔다. 자동차·철강의 고관세는 물론 산업계 전반의 불확실성이 2분기 내내 이어진다는 의미다. 정치권 역시 도움은커녕 악재만 쏟아내고 있다. 대선을 위해 반(反)시장·포퓰리즘성 공약들로 기업을 더욱 옥죄고 있다. 기업 성장을 저해하는 상법 개정안 재추진부터, 불법 파업을 조장하는 노란봉투법, 기업의 영업비밀 제출을 강제하는 국회증언감정법 등도 다시금 거론되고 있다. 지자체는 더하다. 더불어민주당 출신 경남 거제시장은 한화오션과 삼성중공업에 5년간 총 1000억 원의 지역상생기금 출연을 요구했다. 장기 침체 끝에 최근에서야 실적 개선에 나선 조선업계에 자신의 공약을 위한 기금 출연을 사실상 압박해 논란이 됐다.

국제통화기금(IMF)은 22일 한국의 올해 성장률을 1.0%로 전망했다. 종전 전망치보다 0.5%포인트나 낮췄다. 주요국 중에서 가장 큰 폭의 하락이다. 정부와 정치권의 행태가 반영돼 한국이 관세 전쟁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할 것이라고 분석한 것이다. 실제 1분기 경제성장률은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수출 중심인 한국은 글로벌 관세 전쟁의 한복판에 서 있다. 각국이 무역 전쟁을 본격화하는 지금이 국가 생존 여부가 달린 가장 중요한 시기라는 의미다. 기업들은 하루하루가 지옥이며 전쟁인데, 정부와 정치권은 6월 대선 이전엔 아무것도 안 할 것처럼 보인다. 기업들만 홀로 고군분투하고 있는 현재 상황은 분명 정상은 아니다.

이용권 산업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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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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