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미 논설위원

 

칸 영화제 한국영화 초청 0편

넷플릭스 등에 ‘패자의 악순환’

드라마는 기존 흥행공식 반복

 

일본 감독, 중국 콘텐츠 경쟁력

혁신적인 새 창작 상상력 필요

정부 도전적 작품에 적극 지원

한국 영화가 결국 올해 칸영화제에 단 한 편도 초청받지 못했다. 지난 10일 초청작 발표 후 추가 선정에 기대를 걸었으나 24일 공개된 최종 리스트에 포함되지 못했다. 충격적이지만 예견된 결과다. 지난 몇 년간 개봉한 한국 영화를 떠올려보면 내용은 물론 형식과 기법에서 경이로운 작품은 차치하고 수작으로 꼽을 영화도 별로 없었다. 작가주의 예술영화를 선호하는 칸의 기준으로 보면 더더욱 그랬을 것이다. 한국 영화가 칸 영화제 공식·비공식 부문에서 모두 초청받지 못한 것은 26년 만이다. 봉준호 감독이 ‘기생충’으로 황금종려상을 받으며 한껏 높인 K-시네마 위상이 6년 만에 훅 꺼졌다. 그때가 한국 영화의 ‘화양연화’가 되는 건 아닌지. 지나친 비약이길 바란다.

‘칸 충격’은 새삼 코로나19 이후 좀처럼 회복되지 않는 한국 영화를 돌아보게 한다. 지난해 극장 관객은 1억2313만 명으로 전년 대비 1.6%(201만 명) 줄었다. 넷플릭스 등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공세에도 선전한 것 같지만, 코로나 이전 2017∼2019년과 비교하면 심각하다. 당시 연평균 관객 수는 2억2098만 명이었으니 반 토막 난 셈이다. 반면, 지난해 OTT의 영화·영상 분야 비중은 62.2%로 역대 최고였다.

하지만 최근 한 조사에서 관객이 극장에 안 가는 가장 큰 이유는 다름 아닌 ‘볼만한 영화가 없어서’(24.8%)였다. ‘티켓값 부담’(24.2%), ‘다른 방법으로 시청할 수 있어서’(16.6%)를 넘었다. 칸이 한국 작품을 초청하지 않은 이유와 닿아 있다고 할 수 있다. OTT에 밀린 영화는 ‘패자의 쳇바퀴’에 빠졌다. 수익을 못 내니 투자가 감소하고 투자를 얻으려 흥행에 목숨을 거니 콘텐츠 질은 떨어지는 악순환인 것이다.

OTT 덕에 경쟁력을 높인 드라마 시리즈가 장밋빛인 것도 아니다. 한국 진출 10년인 넷플릭스를 비롯해 글로벌 OTT는 과감한 투자로 K-콘텐츠에 날개를 달아줬지만, 국내 제작사를 위기로 몰아넣었다. 편당 100억 원 수준이던 제작비는 최고 1000억 원 수준으로 오르고 배우와 제작진 몸값은 치솟았다. 불황까지 겹쳐 방송사들의 드라마 제작·편성은 대폭 줄었다. 영화는 투자가 안 돼 기존 흥행 공식을 반복하는 ‘패자의 악순환’에 빠졌다면, 드라마는 자본 규모가 너무 커서 안전한 성공 프레임만 되풀이하는 ‘승자의 함정’에 떨어졌다.

K-콘텐츠에 창의적 상상력이 사라지고 있다. 흥행이 보장된 안전한 작품과 흥행 감독에게만 돈이 몰리고 도전적이고 혁신적인 작품은 투자받기가 어려워졌다. K-콘텐츠가 쌓은 명성 덕분에 완성도 낮은 작품도 OTT에 공개되면 글로벌 순위에 오르고 화제가 되니 혁신의 감각은 더 무뎌지고 있다. 결과적으로 비슷비슷한 콘텐츠만 쏟아지고 새롭고 개성적인 작품이 나오지 않는다. K-콘텐츠가 글로벌 시장에서 인기를 얻은 것은 상상력의 한계에 달한 할리우드가 새로움과 다양성을 외부에서 수혈받기 위해서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어떤 시장이든 경쟁력을 갖추지 않으면 도태되고 늘 새 경쟁자가 등장한다. 요즘 세계 영화계에선 예술적 정체성을 앞세운 일본 젊은 세대 감독들이 약진 중이다. 칸 영화제만 해도 일본 영화는 경쟁 부문에 3편이 초대됐고 한국 영화가 3년 연속 초청된 미드나이트 스크리닝 부문도 가져갔다. 일본의 제작비가 한국의 3분의 1 수준으로 역전되면서 글로벌 OTT들의 협업 파트너로 부상하고 있다. 중국도 만만찮다. 봉준호 감독의 ‘미키17’이 지난달 중국에서 개봉되자 한한령(限韓令·한류 금지령)이 해제될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됐지만, 중국 시장이 예전과 다르다는 진단이 많다. 그사이 중국의 자체 콘텐츠 경쟁력이 높아지고 젊은 세대들이 자국 콘텐츠를 즐기게 됐다는 것이다. 오히려 중국 거대 자본의 한국 제작·엔터사 인수를 걱정해야 한다는 우려가 크다.

모든 것에 앞서 창작자와 제작자, 투자자의 ‘도전적 DNA’가 필요하다. 정부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K-콘텐츠 지원을 위해 6000억 원 규모의 ‘K-콘텐츠·미디어 전략펀드’를 조성하고, 지식재산권(IP)을 제작사가 갖는 360억 원 규모의 ‘한국 영화 메인투자 펀드’ 등을 마련하고 있다. 눈과 귀를 열고 파격적·도전적인 작품,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줄 작품을 적극 지원해야 한다.

최현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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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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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실 /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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