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NYT ‘21세기 100선’ 작가 리베카 머카이, 신작 ‘질문 좀…’


“글쓰기가 체조 같은 것이 아니라서 다행이에요. 체조는 나이가 들면 점점 더 못하게 되니까요. 다시 한 번 큰 성공을 거둘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없지만, 적어도 작가로서 계속 성장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어요.”
2018년 출간한 작품 ‘더 그레이트 빌리버스’(The Great Believers)로 이듬해 퓰리처상 최종 후보에 오르고, 뉴욕타임스 선정 21세기 최고의 도서 100선에 뽑힌 소설가 리베카 머카이(사진). 머카이는 문화일보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겸손하면서도 단단한 소감을 전했다.
머카이의 작품 중 유일하게 한국어로 번역된 작품이자 최근작인 ‘질문 좀 드리겠습니다’(황금가지)는 그의 포부처럼 또 한 번의 성장을 보여준 작품이다. 전작이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가 급속도로 퍼지는 1980년대 미국 시카고와 주인공이 살고 있는 2015년 프랑스 파리를 넘나든 문학적 역사소설이라면 이번 작품은 1990년대에 발생한 성폭력 살인사건을 현재의 시점에서 추리해나가는 이야기다. 머카이는 “나는 쉽게 싫증을 내는 사람”이라며 “큰 성공을 거둔 후에도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새로운 일을 해내고 싶다는 마음을 참을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현재와 과거를 잇는 추리의 도구로서 머카이는 팟캐스트를 선택했다. ‘미투 운동’이 확산하던 2018년, 영화학 교수인 주인공 보디 케인은 자신이 졸업한 고등학교에 초청받아 23년 만에 모교 강단에 선다. 그런데 한 학생이 ‘탈리아 사건’에 대해 알고 싶다는 질문을 던진다. 보디의 친구였던 탈리아는 1995년 교내 수영장에서 살해당한 채 발견됐다. 당시 피해자가 매우 예쁘고 부유하다는 이유로, 그리고 범인으로 지목돼 감옥에 간 오마르가 흑인이라서 누명을 썼을 것이라는 일각의 추측 때문에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후 보디와 학생들은 사건 추리 팟캐스트를 제작해가며 진실에 다가간다.
팟캐스트는 한국에서 여전히 일부 사용자만이 즐겨듣는 미디어 매체다. 미국에서는 ‘시리얼’(Serial)이라는 트루 크라임 장르 팟캐스트가 성공을 거뒀고 지금은 저널리즘의 하나로 자리 잡았다. 머카이는 “범죄를 다루는 팟캐스트에는 명암이 동시에 존재한다”고 말했다. “책임감 있는 저널리즘의 형태로 운영되는 팟캐스트는 최고의 프로그램이지만 한편에선 단순히 선정적 관음증 수준에 머무르거나 피해자 가족들을 다시 고통에 빠뜨리고 수사를 망가뜨리는 경우도 많아요. 이것들이 저의 흥미를 자극했죠.” 또한 불완전한 기억에 의존하며 사실을 찾아 나가는 과정이 필연적으로 왜곡된 상상을 낳는다는 점도 소설은 놓치지 않는다. “누가 무슨 말을 했고, 심지어 바람이 어떻게 불었는지까지 정확히 기억하는 주인공을 만들고 싶지는 않아요. 실제로 그런 삶을 사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현재를 살아가며 과거를 이해하려는 모든 노력, 그리고 어려움을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책장 넘기기를 거듭할수록 새롭게 직조되는 현실은 특정 인물을 용의 선상에 올려뒀다가도 금세 새로운 용의자를 찾아내기도 한다. 추리의 끝에서 면죄부를 받을 수 있다는 희망도 모두에게 열려 있다. 소위 ‘나락’ 가면 끝이라는 한국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다. 머카이는 긍정과 부정의 의미를 모두 담아 “미국인들은 언제나 새사람이 되고, 용서를 받을 수 있다고 믿는 것 같다”고 전했다. “많은 미국인이나 그들의 선조가 새로운 대륙의 이민자로서 이전의 삶과 다른 삶을 살았던 경험을 가졌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마치 한 권을 끝낸 뒤 새로운 책을 시작하며 다른 삶을 사는 소설가와도 닮아있네요. 저도 누구나 상상 그 이상의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 믿고 있어요.”
장상민 기자주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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