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종 논설위원

우리 역사상 13명의 대통령 중 국무총리 출신은 제10대 최규하 전 대통령이 유일하다. 그는 1979년 10·26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 직후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았다가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간선제로 대통령에 선출됐으나, 전두환 신군부 세력에 의해 사실상 물러났다. 국민이 투표로 직접 뽑은 대통령은 아니다.

가장 대통령에 근접했던 인물은 이회창 전 총리. 김영삼 정부 시절 ‘대쪽 총리’로 명성을 날린 이 전 총리는 1997·2002·2007년 세 차례 대선에 도전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1997년 대선 때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김종필 전 총리와 힘을 합해 ‘DJP연합’을 만드는 바람에 실패했고, 두 번째 도전 땐 아들 병역 문제에 발목이 잡혀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패하고 말았다. 판사로 정평이 났지만, 정치인이 가져야 할 돌파력과 포용력이 부족했다.

‘영원한 2인자’인 김종필 전 총리는 충청을 기반으로 대통령에 도전했지만, 지역적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다. ‘행정의 달인’으로 불린 고건 전 총리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탄핵소추로 업무가 정지돼 있을 때 안정적인 국정 관리로 대선 후보 반열에 올랐다. 실제 캠프까지 차려 준비에 들어갔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은 “정치적 비전이 없는 관리형 지도자는 곤란하다”고 사실상 고 전 총리를 겨냥해 한마디 했고, 이후 고 전 총리는 대선 도전을 포기했다.

이해찬 전 총리는 실세 총리였지만, ‘친노 폐족’ 이미지 속에서 대통합민주신당 경선에서 정동영, 손학규에게 밀려 3위로 낙마했다. 서울대 총장 출신의 정운찬 전 총리도 ‘동반 성장’을 외치며 대권 도전의 꿈을 꾸었지만, 총리직에서 1년 만에 내려왔다.

황교안 전 총리도 박근혜 정부 마지막 총리로 탄핵 이후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주목받았지만, 국정농단 책임론을 넘어서지 못하고 불출마 선언했다. 이낙연 전 총리도 정치인 출신이지만, 팬덤이 강한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넘어서기 어려웠다.

한덕수 대통령 대행이 곧 출마선언을 할 것이라고 한다. 역대 총리 출신에 비해 보수·진보를 넘나들며 중용되고, 통상 전문가라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지지율이 높지 않고, 탄핵된 윤석열 정부의 2인자라는 단점도 있다. 나이(76세)도 걸림돌이다. 이번엔 성공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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