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욱 경희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한국은행 발표에 따르면 지난 1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전 분기 대비 -0.2%를 기록했다. 지난해 2분기 이후 4분기 연속 0.1% 이하의 성장률로,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2020년 코로나19 사태 때도 볼 수 없었던 현상이다.

우리의 저성장 상황은 구조적이다. 물론 계엄과 탄핵 사태로 인한 정치적 불확실성, 미국 도널드 트럼프발(發) 관세전쟁, 역대 최대 규모의 산불 등 예기치 못한 여러 악재의 영향이 있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우리 경제의 저성장 문제를 설명할 수 없다. 돌발적인 원인은 일시적이다. 그러한 악재들이 사라지면 경제는 어느 정도 회복될 수 있다. 그러나 우리 경제는 이미 수년간 구조적인 문제로 인해 계속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이런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저성장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경제가 본격적으로 회복되고 성장하기 위해서는 생산 활동이 활발해져야 한다. 생산 활동의 핵심은 기업과 기업가다. 따라서 경제를 회복시키고 성장시키려면 기업과 기업가가 자유롭고 역동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정부와 국회는 기업과 기업가가 자유롭게 생산 활동을 하는 환경을 만들어 주기보다는 오히려 방해하는 경향을 보여 왔다.

상법 개정, 공정거래법 개정, 금융복합기업집단법 등 기업의 지배구조와 소유구조를 강력하게 규제하는 법안들이 도입됐다. 또한, 사업장 내 사고에 대해 과실이 없어도 최고경영자에게 책임을 묻는 중대재해처벌법, 경직적인 주 52시간 근로제 등 기업활동을 제약하는 법들이 제정됐다. 게다가 기업활동을 제한하는 추가 법안들도 계속 논의 중이다. 최근 대한상공회의소와 정책평가연구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10년 동안 기업부담지수(BBI)의 규제부담이 88.3에서 102.9로 크게 상승했다. 기업 환경이 얼마나 악화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경제가 성장이 아닌 후퇴의 길을 걷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경제를 회복·성장시키기 위해서는 기업과 기업가의 활동을 옥죄는 규제를 완화·철폐해야 한다. 하지만 정부와 정치권은 내수 활성화를 명분으로 정부 지출을 늘리고 금리 인하에만 치중한다. 이러한 내수 활성화 정책은 근본적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물론 정부 지출이 특정 부문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는 있지만, 전체 경제의 성장을 이끌지는 못한다. 정부는 본질적으로 새로운 부(富)를 창출하는 주체가 아니라, 기존의 부를 한 부문에서 다른 부문으로 이전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금리를 내리면 경제가 잠시 회복될 수는 있으나, 인플레이션이라는 대가를 치르고 지속적인 성장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진정으로 저성장 국면에서 벗어나 경제가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단기적이고 단편적인 내수 활성화 정책보다는 기업 환경 개선이 필요하다. 기업활동을 옥죄고 있는 각종 규제를 완화하거나 철폐해야 한다. 세계적으로 높은 수준의 징벌적 상속세를 폐지하거나 획기적으로 개선하고, 경쟁국들보다 높은 법인세를 인하해야 한다. 이러한 구조적인 요인들을 혁신해 기업과 기업가가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지 않으면 경제 회복과 지속적인 성장은 절대로 기대하기 어렵다.

안재욱 경희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안재욱 경희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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