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눔 실천하는 초록빛 능력자들 - 13년째 안경 기부하는 장인호씨

 

손녀 통신문 못 읽는 할머니께

돋보기 선물한 게 나눔의 시작

많으면 한달 100개 넘게 후원

 

단순한 완제품 안경 기부 아닌

개별 시력 검사 통해 렌즈 맞춰

“나눔으로 소통 이어나갈 것”

초록우산을 통해 13년째 취약계층 아동들에게 안경을 후원하고 있는 장인호 후원자. 초록우산 제공
초록우산을 통해 13년째 취약계층 아동들에게 안경을 후원하고 있는 장인호 후원자. 초록우산 제공

“아이들이 안경을 맞추러 오기로 한 날이 가까워지면 마치 소풍 가기 전날처럼 설렙니다. 아이들이 안경을 받고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 너무나도 큰 행복감을 느껴요. 한편으론 도움이 필요한 사람은 여전히 많이 있고, 그 사람들을 위해 앞으로도 더 나눠야겠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안경원을 운영하고 있는 후원자 장인호(56) 씨는 13년 전부터 초록우산을 통해 무료 안경을 나누고 있다. 초록우산을 통하기 전에도 장 씨는 시청·주민센터와 연계해 안경을 기부해 왔다고 한다. 많이 기부할 때는 한 달에 100명도 넘는 사람들이 장 씨에게 무료로 안경을 맞추기도 했다. 현재는 보호대상아동, 자립준비청년 등 매월 도움이 필요한 어린이와 청년 4∼8명 정도에게 안경을 나누고 있다.

장 씨가 초록우산을 통해 지원하는 후원금과 물품을 모두 금액으로 환산하면 매월 100만 원 정도가 된다. 그 밖에 독거노인에게 지원하는 안경까지 합치면 훨씬 많지만, 장 씨는 “매월 얼마씩 후원하는지 세면서 기부를 하고 있지는 않다”며 웃었다. 장 씨는 “제 안경을 받고 얼굴이 환해지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그저 뿌듯함으로 계속 나누는 것”이라고 나눔의 기쁨을 설명했다.

장 씨의 첫 나눔은 약 20년 전으로 되돌아간다. 장 씨가 대학교를 졸업한 뒤 안경원에서 일하던 어느 날, 한 할머니가 종이 한 장을 들고 가게로 들어왔다고 한다. 할머니는 “글을 읽지 못한다”며 장 씨에게 초등학생 손녀가 받아온 가정통신문을 내밀었다. 장 씨가 내용을 읽어드리자, 할머니는 거듭 고맙다며 가게를 떠났다.

하지만 얼마 뒤 할머니는 또 다른 가정통신문을 들고서 가게에 들어와 읽어달라고 부탁했다. 장 씨는 그제야 할머니가 글을 몰라서 읽지 못한 것이 아니라 시력이 좋지 않아 글을 읽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장 씨는 돋보기 안경을 하나 맞추기를 권했지만, 손녀와 단둘이 지낸다는 할머니는 “그럴 형편이 되지 않는다”며 미안함을 감추지 못했다.

고작 몇만 원 하는 안경을 맞추지 못해 할머니가 잘 보이지 않는 눈으로 홀로 손녀를 키운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쓰인 장 씨는 할머니가 떠난 뒤 곧바로 할머니를 위한 돋보기 안경을 하나 맞췄다. 이후 할머니가 다시 오셨을 때 “누가 맞춰놓은 건데 오랫동안 찾아가지 않았다”고 둘러대며 안경을 건넸다. 그때부터 장 씨는 어렵게 사는 사람들을 위해 안경을 나눠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장 씨에게 안경 기부는 단순히 시력 보조용 기구를 나누는 것이 아니다. 그의 안경엔 나눔을 통해 사람들과 소통하려는 마음이 담겼다. 장 씨는 “안경을 나누는 것은 단순히 완제품을 기부하는 것이 아니라 개별 시력검사를 통해 그 사람의 눈 상태에 맞는 안경을 맞춰야 한다”며 “그렇기에 내겐 지금까지 나눈 안경 하나하나가 모두 각자 다른 나눔과 같다”고 말했다.

장인호(오른쪽) 후원자가 초록우산 감사패를 받고 있다.
장인호(오른쪽) 후원자가 초록우산 감사패를 받고 있다.

장 씨는 고도 난시용 교정렌즈 안경, 백내장·녹내장 예방용 안경, 시각장애인용 보호 안경 등 필요한 사람들에게 종류를 가리지 않고 안경을 나누고 있다. 장 씨는 요즘 특히 자립준비청년들에게 관심이 많다고 한다. 그는 “어려운 환경에서 자라면서 성인이 돼 사회에 덩그러니 놓이게 된 청년들을 보면 얼마나 힘들까 하는 생각이 든다. 초록우산을 통해 안경을 맞추러 오는 자립준비청년들과 대화해 보면 한 명 한 명의 사연이 참 딱하고, 힘들게 지내고 있는 게 느껴진다”고 털어놨다. “아이들을 보면 씩씩하고 예의 바른 아이들도 있는 반면, 낯가리고 뾰로통한 아이들도 있다. 각자의 태도와 분위기는 다르지만 모든 아이들이 제 눈엔 다 예뻐 보인다”는 장 씨는 “자립준비청년들에게는 한 달에 10명이 됐든 100명이 됐든 언제든지 안경을 꾸준히 후원하고 싶다”고 말했다.

나눔은 뿌듯한 소식으로 돌아오기도 했다. 장 씨는 “초등학교 4학년이던 한 친구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며 “한부모가정 아동이었는데, 안경을 맞춰준 이후로 학교에서 성적으로 1, 2등을 다투는 상위권이 되었다고 들었다”고 회상했다. 이 학생은 그동안 시력이 안 좋아 칠판이 잘 보이지 않았는데, 매일 폐지를 줍는 할머니를 생각해 비싼 안경을 맞춰달라고 할 수 없었다는 사연이다. 노인들에게 안경을 후원하며 따뜻한 온정을 돌려받은 적도 있다. 장 씨는 “노인분들이 정이 워낙 많으시니 안경을 받은 뒤 본인이 농사 지으신 거라며 감자나 고구마를 쪄서 가져다주시고, 도시락처럼 밥을 싸 와 주시는 분도 계셨다”고 웃어 보였다.

장 씨의 나눔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이기도 하다. “어린 시절 아버지께서 농사를 지어 가을에 추수하면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 명단을 적어서 쌀을 몇 가마씩 보내기도 하셨고, 어려운 가정 아이들을 위해 책과 책가방·운동화 등도 사 주셨다”는 장 씨는 “그래서 그런지 우리 가족들에게는 어려운 사람을 돕고자 하는 마음이 전통처럼 남아 있다”고 설명했다. 앞으로는 안경 기부를 넘어 더 큰 나눔을 하고 싶다는 것이 장 씨의 또 다른 다짐이다. 그는 “친척들이 좋은 일을 하기 위해 모은 돈이 있어, 그것을 기금으로 오는 7월부터 어려운 형편의 아이들을 위한 장학 사업을 해보려고 한다”고 밝혔다.

문화일보 - 초록우산 공동기획

조율 기자
조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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