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안 인터뷰 - 여한구 前 산업부 통상교섭본부장
유조선·파이프라인 건설 등
개별 기업아닌 국가차원 대응
일본·대만 등과 협력도 필요
한미 관세협상 온도차 뚜렷
진행 과정서 일희일비 말고
최종 목표 뚝심있게 밀어야
‘트럼피즘’ 이젠 뉴노멀 시대
대미무역 흑자 모니터링 등
장기적 통상 대책 마련 절실

“당장 상업적 타당성이 안 나올 수도 있지만,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 참여 여부는 국가 전략적으로 봐야 합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1월 두 번째 취임 이래 ‘관세 장벽’을 통해 각국의 대미 무역수지 흑자 폭을 대폭 줄이려는 의도뿐만 아니라 미국의 제조업 부흥과 수출 확대를 동시에 꾀하고 있다. 지난해 기준 6837억 달러의 역대 최대 수출 실적을 달성한 한국은 전체 수출액 가운데 18.7%(1278억 달러, 전체 교역국 중 2위)가 몰려 있는 미국의 정책적 변화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만큼 최근 양국 재무·통상 장관급 회담인 ‘2+2 통상 협의’를 통해 본격적인 관세·경제 협력 협상을 시작했다. 정부 통상 당국에서 오랜 기간 근무한 여한구(미국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 선임연구위원) 전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은 지난 10일과 28일 대면 및 이메일로 이뤄진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의 이 같은 정책적 변화가 트럼프 2기 행정부 임기 이후에도 ‘트럼피즘’(트럼프주의)이라는 글로벌 통상·무역·경제 분야의 새로운 시대사조로 지속할 양상인 만큼 장기적 대응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통상 현안을 바탕으로 미국 측의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 참여 요구도 제기되고 있다. 이 문제를 국내 당국과 업계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이 부분은 전략적으로 봐야 한다. 이것은 내가 (산업부) 국장으로 근무하던 시절부터 미국 측 인사들을 만나면 계속 나오던 사안이다. (정부 당국이나 기업 등) 개별 입장에서 보면 이 프로젝트는 상업적 타당성이 안 나올 수 있다. 그런데 지금은 개별 기업 차원에서 볼 문제가 아니라, 국가적 차원에서 봐야 할 부분이다. LNG만 고려해야 할 것이 아니라 거기에 연관된 유조선 같은 조선 산업, 1300㎞ 파이프라인 건설에 관련된 철강 산업 등이 종합적으로 걸려 있어서 국가 차원에서 전략적으로 패키지를 만들어야 한다. 또 일본이나 대만 등 아시아 주요국들이 조인트(합동)해 한 국가가 감당하기에 과한 리스크(위험) 부분을 분담하면서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
―지난 24일 열린 ‘한·미 2+2 통상 협의’ 후 미국 측은 조속한 타결 기대감을 나타냈고 한국 측은 ‘줄라이 패키지(July Package)’를 언급하며 상호관세 유예 기간(7월 8일)까지의 신중한 협상을 시사했다. 왜 이 같은 온도차가 나오는가.
“미국의 정치 상황은 몇몇 우방국들에 대한 신속한 관세 협상의 타결을 필요로 하고 있다. 혼란스럽고 과격한 관세 정책에 따른 시장의 불안 및 유권자의 우려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우리의 정치 상황은 대선 이후 들어오는 새 정부가 이 협상을 본격적으로 진행해 타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보니, 서두를 수가 없다. 기본적으로 양국이 처한 정치적 상황이 정반대이다 보니, 이런 온도차가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우리 측에서 우리의 상황을 보다 적극적으로 미측에 설득시키고, 미측에 대한 소통을 좀 더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다.”
―이번 2+2 협의가 양국 간 최종 타결점을 찾기 위한 적절한 출발점 역할을 했다고 보는지, 부족한 부분이 있었다고 보는지.
“말하자면 ‘1000m 계주 내지 단축 마라톤’의 시작점을 출발한 셈이다. 우리의 상황이 100m 달리기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고, 미국의 상황이 마라톤을 뛸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새 정부에 바통을 넘겨줘야 한다는 점에서 1000m 계주와 비슷하고, 상세한 디테일을 담은 딜(협상)을 만드는 데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는 점에서 ‘단축 마라톤’ 정도로 보면 되지 않을까 싶다. 앞으로도 협상 과정에서 수많은 오르막길, 내리막길이 있을 것이고, 트럼프 1기 행정부 때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협상 과정에서 협정이 폐기 위기로까지 몰렸던 것 같은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따라서 진행 과정에서 일희일비할 필요는 없고 결승점, 즉 최종 타결점을 향해 뚝심 있게 여러 난관을 극복하면서 가야 할 것이다.”
―미국이 상호관세를 발표한 뒤 중국을 제외하고는 유예 중인데 향후 미국의 상호관세로 인해 국제 통상·무역 환경이 어떻게 변화할 것으로 전망하는지.
“미국의 일방적인 힘의 법칙에 의해 소위 ‘정글의 법칙’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다. 역설적인 것이, 트럼프 대통령이 ‘1기’라고 할 수 있는 앞선 임기 때 만약 8년 연속으로 재임했다면 (상호관세 같은 정책은)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좌충우돌하면서 8년으로 끝났을 텐데 (1기 재임 후) 4년의 공백 동안 더 준비하면서 ‘트럼피즘’으로 진화했다. 지난 1945년 이후 2017년까지는 ‘글로벌 자유 무역 기조’였는데 (트럼프 대통령 1기 취임으로) 2017년에 이 기조가 꺾일 뻔하다가 조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오면서 트럼프 행정부의 기조는 하나의 일시적 변이 과정이었고 다시 정상궤도로 돌아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프랜시스 후쿠야마 스탠퍼드대 교수는 이제 트럼프 대통령 재취임으로 바이든 행정부의 기조가 변이였다고 보고 있다. 글로벌 자유 무역 기조는 이제 완전히 꺾인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트럼피즘은 미 중서부 ‘러스트벨트’(쇠락한 공업지대) 문제, 무역 적자 누적을 문제점으로 인식하고 제조업 재건에 초점을 맞췄다. 더욱이 중국이라는 ‘괴물’이 나타나서 세계무역기구(WTO) 체제하에서 중국과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없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이런 동인이 트럼피즘으로 진화했는데, 이게 4년 안에 끝날 동인이 아니다. 상당 기간 걸릴 수 있는 부분이고 ‘뉴노멀’로 인식해야 하는 상황이다.”
―미국 측은 ‘무역수지 불균형 해소’를 전제로 향후 후속 협상에서 상호관세율 재조정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는데 한국의 대미 무역 흑자 조정 방안으로 어떤 것이 있는가.
“현재 트럼프 행정부가 무역적자 축소를 우선순위 중 하나로 보는데, 이걸 아예 기계적·도식적으로 제로(0)로 만들겠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정치적으로도 워낙 무역수지 적자에 중심을 둬 놨기 때문에 어떤 형태로든 우리도 (대미 흑자를) 줄여가는 추세로 가야 한다. 그래서 LNG 수입 확대 얘기도 나온다. 그리고 우리 기업들도 경제 질서의 틀이 바뀌는 부분에는 체질 개선·구조 변화를 통해 위기를 벗어나는 접근 방식을 취해야 한다. 기업들에는 그게 해외 투자인 것이다. 이제까지는 수출에만 주로 의존했다면 점점 그것이 어려워지는 게 글로벌 상황이다.”
―그러면 우리 기업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1980년대 일본 기업들이 구조 전환에 적극 나섰다.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 시절 일본의 대미 자동차 수출, 무역 흑자가 높아지니까 레이건 행정부는 무역 규제의 틀로 통상 압박을 했고 그러다 보니 일본 기업들은 아예 미국의 관세 장벽 안으로 들어가서 생산하기 시작했다. 우리 기업들도 일본 기업들처럼 현지화, 국내와 현지와의 균형점을 찾는 식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본다. 정부도 이제는 대미 무역수지 흑자 동향을 모니터링하면서 정부가 역할을 할 부분은 해야 한다. 이때까지는 개별 기업 차원에서 알아서 최대한 수출하고 그것을 다 합하면 무역 흑자가 되니까 정부는 할 일이 없었는데 이제는 관리 경제로 바뀐 것이다. 그래서 정부가 월별, 분기별로 무역수지 흑자 동향을 모니터링하면서 워닝(경고) 업종이 있으면 그렇게 할 필요도 있다. 과유불급이라는 말이 있듯이 지금 시대에는 대미 수출이 잘 된다고 해서 제어나 자율규제 없이 하다가는 오히려 더 큰 피해가 올 수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과유불급이라는 부분을 되짚어봐야 한다.”
―미국의 상호관세에서 한국의 해외생산기지인 베트남 등에도 높은 관세율이 책정됐다. 한국이 대미 협상 과정에서 해외 생산기지가 설치된 국가들의 상호관세율 문제도 함께 언급해야 하는가.
“필요하다고 본다. 기본적으로 우리 대기업들은 글로벌 오퍼레이션(운영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대기업은 신축적으로 생산라인을 옮긴다든지 할 역량을 갖고 있는데 따라서 대기업보다는 해외 진출 중소·중견기업들이 더 우려된다. 미국이 베트남, 대만에 관세 폭탄을 부과한 건 중국의 우회수출을 막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미국의 실책이다. 미국 입장에선 탈중국 생산기지 다변화가 주요한 경제 안보·전략적 목표인데 실질적으로 중국 대체 생산지는 인도 또는 동남아시아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그런데 관세 폭탄으로 이를 차단하면 탈중국 생산기지 다변화 목표 달성은 더 어려워질 수 있다. (중국의 우회수출을 막으려면) 정밀 타격을 해야 하는데 융단폭격으로 하면 선의의 기업도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점을 트럼프 행정부도 현실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중국의 과잉생산 문제는 국내 수출업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이를 통상 당국이 어떻게 관리를 강화해야 한다고 보는가.
“굉장히 심각한 이슈다. 지금은 이러한 불공정 무역행위가 한국 산업 기반을 위협할 수 있는 수준까지 왔다고 본다. 무역위원회 확대 등은 잘한 것이다. 앞으로도 중국의 불공정 무역행위, 피해를 주는 행위는 우리가 단호하게 대응을 해야 한다고 본다. 사실 우리가 중국의 경제보복을 우려했기 때문에 과감하게 대응하지 못한 측면이 있는데 지금은 이제 그 수준은 지났다고 본다. 석유화학, 철강 등 우리 기간 산업에 미치는 부정적 효과가 가시화하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더 이상 소극적으로 있을 수는 없다.”
박준희 기자주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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