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는 말없이 창밖의 낙조를 바라보았다/ 하늘이 태양을 닫고 있었다/ 다 식은 커피잔을 쥐면 금방 김이 올랐다/ 불이 붙은 채로 사랑할 수 있었습니까// 그는 자그맣게 숨을 쉬고 있었다/ 최소한으로 살겠다는 듯이’
- 최현우 ‘서른’(시집 ‘우리 없이 빛난 아침’)
시내 유명한 냉메밀 가게 앞에서 어머니를 만나기로 했다. 점심시간을 피했는데도 줄이 길었다. 대기번호를 받고서 마중을 나갔다. 바람이 좀 불었지만, 더없이 화창한 봄날 대낮. 횡단보도 건너편에 어머니가 서 계셨다. 손이 절로 움직여 사진을 찍었다. 파인더에 눈을 대고서, 먼 옛날 내가 아기였을 때 아마 어머니 손도 이렇게 움직였겠지. 내 사진을 찍었겠지. 파란불로 바뀌어 길을 건너오던 어머니는 나를 발견하곤 활짝 웃었다. 이 사진은 혼자 간직해야지. 혼자 봐야지. 세상엔 그런 모습도 있다.
최근 다니기 시작했다는 노래 교실, 좀처럼 가시질 않는다는 허리 통증, 곧 결혼을 하게 되는 막내 걱정. 가까운 과거와 머지않은 미래 사이 우리는 앞에 놓인 메밀국수 두 그릇처럼 애틋하다. 나이 들어가는 것이 나만일 리 없다. 마주한 어머니의 얼굴에도 세월은 두껍게 내려앉아 있다. 근처 카페로 자리를 옮겨서 나는 부러 옛날이야기를 청해 듣는다. 그렇게라도 시간을 유예하고 싶었던 것이다. 어머니가 들려주는 어떤 일은 익숙하다. 들어본 적 없던 일도 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더러 웃으면서, 문득 이 모든 이야기의 배경에 사랑이 있다는 사실을 눈치챈다. 누구라도 모두의 한 생애는 결국 사랑으로 요약되는 게 아닐까. 내가 사랑하는, 내 어머니는 그렇다면 사랑의 천재이다. 나는 일렁이는 마음을 참지 못하고, 어머니 참 잘 살아오셨어요 하고 말했다. 어머니는 못 들었는지, 쑥스러웠는지. 빙긋 웃으며, 이 집 커피 참 맛있다, 엉뚱한 대답을 건네왔다. 창밖이 포근한 저녁 빛으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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