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존경합니다 - 황복님 선생님

초등학교 시절 나에게 특별한 사랑을 베풀어주셨던 황복님 선생님. 늘 감사한 마음이다.
초등학교 시절 나에게 특별한 사랑을 베풀어주셨던 황복님 선생님. 늘 감사한 마음이다.

선생님을 처음 만난 것은 초등학교 3학년 때다. 매년 학년이 오를 때마다 당연시 여기던 반장도 맡게 되었다. 선생님은 고향이 강화도다. 그 당시 교과서에 강화도 특산물로 화문석이 소개되어 선생님 하면 화문석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지금은 계절이 바뀌어도 바뀐 계절이 피부에 와 닿지 않지만 어릴 적에는 특히 봄에 개학을 하면 추워도 너무 추웠다. 아침 일찍 등교하기 전 학교 아저씨가 장작을 양동이에 들고 와서 솔방울과 함께 조개탄 난로를 피우는데 교실 한가득 연기로 가득 채우고 나서야 겨우 난로에 온기가 생겨났다. 수업 중간에도 난롯불이 꺼지지 않도록 수시로 조개탄도 넣어주어야 하고 밑으로 빠지는 타고 남은 재도 치워야 했다. 수업 중에는 온전히 선생님 몫인데 정말 능숙하게 처리를 하시는 모습이 어린 마음에 대단하게 느꼈었다.

어느 봄날 아침 운동장 조회시간에 불현듯 선생님은 ‘신발을 바꿔 신자!’고 하셨다. 반장으로 맨 앞에 서 있었으니 신발을 바꿔 신으려면 내가 그 대상이 될 수밖에 없는 노릇이기는 했다. 봄이기는 하지만 아직 운동장 바닥은 얼었다가 완전히 녹지 않은 상태로 한낮에는 녹았다가 저녁이 되면 다시 얼어서 아침까지는 여전히 언 땅이었다. 문제는 선생님의 신발은 높은 굽의 뾰족구두였고 내 신발은 운동화였는데 선생님의 발이 내 발과 딱 맞아서가 아니라 주번 선생님으로서 구멍 뚫린 구령대에 오르려면 뾰족구두는 불편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황급히 내 운동화를 신고 구령대에 올라가신 선생님의 벗어놓은 뾰족구두를 신고 있어야 했으나 만일 그 뾰족구두를 신게 되면 친구들한테 일 년 내내 놀림감이 될 것이 뻔했다.

그 당시에는 남자가 여자의 그 무엇이라도 걸치면 당연히 놀림감이 되던 시절이었다. 이름 때문에도 놀림을 받고, 생긴 모습으로도 놀릴 때였으니 말이다. 나는 이름이 여자 이름이고 반에 여학생도 같은 이름이 있었으니 늘 놀림감이 되기는 했다. 그런데 거기에 뾰족구두까지 신었더라면 분명 엄청난 놀림감이 되었을 것이다. 할 수 없이 언 땅에 신발을 신지 않은 채로 선생님이 되돌아오실 때까지 서 있어야 했다. 선생님의 뾰족구두는 옆에 가지런히 둔 채로 말이다.

언젠가 선생님과 연락이 되어 이야기를 나누다가 선생님도 그때 일을 기억하고 계셨다. 지금이야 발에 맞지 않아도 얼마든지 뾰족구두를 신어볼 수 있겠지만 어린 시절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선생님은 나를 특별히 사랑해 주셨다. 한 번은 수업이 끝나고 쉬는 시간에 선생님이 보시는 책을 한 권 주시더니 페이지를 가리키며 ‘읽어보라’고 하셨다. 무심코 대충 읽어 보았는데 그동안 배우지 않은 내용이었으나 간단한 문답 형식이었다. 쉬는 시간이 끝나고 다시 수업시간이 되면서 선생님은 그 책을 가지고 내가 읽었던, 아니 선생님이 읽어보라고 하신 그 부분에서 문제를 내셨다.

어린 마음에 아는 것이 나오니 번쩍번쩍 손을 들고 시키기도 전에 답을 말해 버렸다. 다른 아이들은 배우지 않아 알지도 못한 내용이기도 했지만 불과 몇 분 전에 읽은 것이니 너무나 쉬운 문제였던 것이다. 지금도 잊지 않는 것이 벼에 기생하는 해충이 벼멸구라는 것이다. 지금은 아니지만 적어도 초등학교 시절만큼은 공부가 참 재미있었다. 모두 선생님이 베풀어주신 특별한 사랑과 배려 때문이었던 것 같다. 어찌 보면 지금의 내 모습이 그때 선생님으로부터 받은 사랑으로 뭉쳐진 덕분이지 않을까 생각된다.

그로부터 시간이 흘러 군대를 다녀와서 사회인이 되고 나서도 선생님과는 연락도 없이 지내다가 우연히 ‘선생님 찾기’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교육청과 연결되어 선생님을 찾아냈다. ‘교장선생님으로 은퇴하셔서 지금은 수원 영통에 사신다’고 했다. 당연히 연락을 드렸고 지금도 꾸준히 연락을 하면서 지내고 있는데 손주 돌보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신단다. 이제는 많이 연로하신데 자주 연락을 드리지 못해 죄송할 따름이다.

선생님! 많은 훌륭한 제자들을 육성하셨으니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시고 또 뵙는 날까지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선생님! 사랑하며 크게 존경합니다.

고색초교 제자 정희순(이랜드재단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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