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기은 정치부 차장
시중에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침대 축구’를 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말이 넘쳐난다. 도저히 무슨 일이 일어나기 어려운 운동장 끄트머리에 자리를 잡고 심판의 종료 휘슬이 울리기만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90분 중 10분만 버티면 되는데, 상대 진영에서 모험적 공격을 전개하는 것은 비합리적일 수 있다. 상대 공격수에게 공이라도 뺏기면 80분의 노력이 물거품이 된다. 그래서 유력 대권 후보인 그는 남은 10분을 안전지대에서 지루하게 공을 돌리는 선택을 하고 있다.
이 후보는 사실 그 누구보다 공격 성향이 넘쳐나는 스트라이커였다. 이 후보는 지난해 4월 총선을 앞두고 ‘비명횡사’ 공천을 주도했다. 비민주적이라는 비난을 무시한 채 ‘이재명 일극 체제’를 완성했다. 총선 대승 이후에는 입법 폭주라는 비판을 아랑곳 않고 30회에 걸쳐 탄핵소추를 벌였다. 그 결과, 12·3 비상계엄이라는 윤석열 전 대통령의 자해적 조치를 끌어냈다. ‘개딸’은 환호했고, 이를 기반으로 40% 정도의 아스팔트 지지율을 확보했다. 이후 그는 돌변했다. 낯설게도, ‘수비형 스트라이커’가 됐다. 상대 진영을 파고드는 돌파나, 이슈를 선점해 중원을 장악하는 장점을 잃었다는 평가다. 최근 보수 인사 영입, 정체불명 우클릭 정책 발표 등이 말해준다. 누군가는, 이 대표가 선거 막판 욕설을 하는 등의 자멸을 기대하지만, 이는 순진한 바람이다. 좀체 상대 진영에서 공격하지 않는 스트라이커는 치명적 실수도 하지 않는다.
문제는 관중이다. 야유받는 축구팀도 골만 넣으면 경기에서 이기지만, 정치는 그렇지 않다. 여론조사(스코어)에서 줄곧 앞서도 ‘바람’(관중의 반응)이 불면 선거 구도는 요동친다. 지난해 4월 총선,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가 화성을에서 선거 초 두 배 이상 여론조사 지지율 차이를 극복하고 공영운 당시 민주당 후보를 상대로 막판 대역전극을 벌였다. 정치에서는 더블 스코어 수치를 뒤집는 것을 사실상 불가능한 일로 보는데, 바람을 일으킨 이 대표가 선거 구도를 잡아먹는 일을 해낸 것이다.
구여권에서는 ‘10분의 기적’을 기대하고 있다. 크게 3가지 측면에서 그렇다. ①상대가 이 후보다. 탄핵당한 대통령이 속한 당에서 대선 승리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지만, 비호감도가 높은 이 후보가 있어 포기할 단계는 아니다. ②이 후보가 ‘왜 대통령이 되고 싶은지’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사법 리스크 일시 해소를 위해 대통령 자리를 원하는 것인지, 검찰 권력에 대한 복수를 하고 싶은 것은 아닌지에 대한 의심이 커지고 있다. ③대통령이 되면, 입법에 더해 행정까지 쥐게 된다. 균열이 발생할 수 없는 환경 자체에 대한 견제심리가 분출할 수 있다.
한덕수 권한대행이든 국민의힘 대선 후보든 국민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처절히 노력해야 한다. ‘뻔한 단일화’는 이미 노출된 소재다. 예상 가능한 전개로는 반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반이재명’만 외쳐서도 답이 없다. 민생경제를 돌볼 정책은 무엇인지, 통합과 포용 방안은 무엇인지, 탄핵의 강은 어떻게 건널 것인지, 미래 비전은 무엇인지에 대한 답을 하루빨리 내놔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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