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한구 美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 선임연구위원, 前 통상교섭본부장

 

만들기보다 쓰면서 성장한 美

中은 쓰기보다 만들면서 성장

불균형 분업구조 한계에 봉착

 

롤러코스터 관세 종착점 관심

길게 보고 개혁하는 쪽이 승리

창조적 파괴로 경쟁력 높여야

‘코끼리 둘이 싸우면 정작 망가지는 것은 나무와 초원’이라는 아프리카 속담이 있다. 미국과 중국이라는 코끼리 둘이 작정하고 싸우니 그간 평화와 번영을 누려 온 중소국들(나무)과 그것을 가능하게 했던 글로벌 무역 시스템(초원)이 망가지고 있다.

이 코끼리들이 왜 지금 와서 이렇게 싸우게 됐을까? 수십 년간 유례없는 세계 경제의 글로벌화와 성장을 이끌었던 동력은 미·중 간 불균형에서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24년 미국의 무역적자는 1조 달러에 육박한다. 반면, 그해 중국의 무역흑자도 사상 최고로 1조 달러에 근접했다. 이 불균형의 원인으로 들어가 보면 미국 경제는 ‘만들기보다는 쓰면서’ 성장하는 반면, 중국 경제는 ‘쓰기보다는 만들면서’ 성장해 왔다는 구조적 차이에 이른다. GDP 대비 소비의 비중이 미국은 70%인 데 비해 중국은 56%에 불과하다. 중국에서 제조업은 GDP의 27%가량 기여하는 데 비해, 미국에서는 10% 안팎에 불과하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시작한 무역전쟁은 관세라는 정책 수단을 통해 구조적 불균형을 근본적으로 바꾸겠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미국은 ‘쓰지만 말고 좀 더 만들고’, 중국은 ‘만들지만 말고 좀 더 쓰는’ 식으로 조정하겠다는 것이 요지다.

하지만 주로 ‘쓰면서’ 성장해 온 세계의 시장(미국)이 갑자기 관세의 ‘만리장성’을 쌓으니 통상국가들의 수출에 충격이 온다. 또한, 주로 ‘만들면서’ 성장해 온 세계의 공장(중국)은 미국행이 막히니 과잉생산을 제3국 시장으로 밀어내기 수출하는데, 제조국들의 국내 산업에도 타격이 온다. 미·중 무역전쟁으로 수출과 산업, 안팎의 더블 충격을 받는 것이 바로 한국과 같은 수출 주도형 제조국 모델을 가졌던 중소국들이다.

오늘날 자유무역의 이론적 배경을 제시했던 19세기 데이비드 리카도의 비교우위론은 그 기본적 가정이, 영국·포르투갈 같은 비슷한 규모의 국가 간에는 대체로 서로 비교우위가 있는 분야에 특화하고 자유무역을 통해 함께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이 핵심이다. 하지만, 리카도의 시대에 중국처럼 14억 인구에다 거의 모든 분야에서 값싸고 효율적인 제품과 혁신적인 첨단기술 제품까지 만들며 시장을 지배할 수 있는 공룡 경제가 있었다면, 자유무역과 비교우위론이 어떻게 바뀌어 적용됐을까? 이 해답을 찾는 과정이 앞으로 중국과 새로운 균형점을 찾아야 하는 세계 경제에 던져진 숙제다.

트럼프 행정부 100일을 맞은 워싱턴의 초관심사는 롤러코스터식 관세전쟁, 특히 미·중 무역전쟁의 종착점(endgame)에 관한 것이다. 필자의 판단으로, 이 무역전쟁의 최종 승자는 길게 보고 고통을 인내하며 먼저 자기 개혁을 해내는 국가와 기업이 될 것으로 보인다. 결코 90일 내에 관세율 몇 % 조정한다고 끝날 게 아니다. 수출 감소, 산업 구조조정, 성장률 감소 등의 고통을 경제적·정치적으로 견뎌낼 수 있는 인내가 필요하다. 과거의 경제 모델과 역동성을 잃은 산업 생태계를 ‘창조적 파괴’가 일어나는 혁신 생태계로 재편해 나가야 한다.

워싱턴에서는 ‘해방의 날’ 상호관세 이후 월가의 주식·국채·환율이 요동치고, 기업들의 재고가 동나는 수주 안에 상점 진열대의 상품들이 바닥날 수 있으며, 여름까지는 불황에 접어들 수 있다는 조급증이 만연하다. 반면, 베이징에서는 미측이 145%의 대중(對中) 관세를 원래 수준으로 내리지 않는 한, 협상에 응하지 않겠다며 참호를 깊게 파고 중장기전에 대비하는 태세다.

최근 뉴욕타임스의 토머스 프리드먼은 중국 방문 후 미국이 아닌 중국에서 미래를 봤다는 칼럼으로 경각심을 울렸다. 트럼프 1기 때의 수출 통제와 제재로 존폐 위기로까지 몰렸던 화웨이가 새로이 연 연구개발(R&D)센터는 축구장 225개 규모에 104개의 빌딩에서 3만5000명의 과학자·엔지니어가 인공지능(AI), 반도체 등 최첨단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고 했다. 화웨이가 최근에 만든 전기차를 탔더니 천장에서 내려온 스크린이 랩톱과 동조화돼 생전 들어보지 못한 완벽한 음향을 구현하더라고 한다. 미국과의 무역전쟁 중에도 중국의 자강 혁신은 계속 진전하는 셈이다. 역설적이지만, 이런 때일수록 내부의 경쟁력 강화에 집중하는 쪽이 결국 승자로 떠오를 것이다.

여한구 美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 선임연구위원, 前 통상교섭본부장
여한구 美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 선임연구위원, 前 통상교섭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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