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골프 달인들도 눈물 쏟게 하는 결정적 순간

 

‘태국의 박세리’ 쭈타누깐

예상 못한 샷 실수로 무너져

 

김인경도 통한의 퍼팅 악몽

트라우마 극복에 5년 걸려

 

‘그랜드슬램’이룬 매킬로이

US오픈서 1m 퍼트 놓치기도

 

“압박감에 호흡·동작 빨라져

긍정적 생각으로 루틴 지켜야“

태국의 에리야 쭈타누깐이 지난달 28일(한국시간) 미국 텍사스주 우드랜즈의 더 클럽 칼턴 우즈 잭 니클라우스 시그니처 코스에서 열린 LPGA투어 메이저대회 셰브론 챔피언십 4라운드 18번 홀에서 어프로치를 실수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태국의 에리야 쭈타누깐이 지난달 28일(한국시간) 미국 텍사스주 우드랜즈의 더 클럽 칼턴 우즈 잭 니클라우스 시그니처 코스에서 열린 LPGA투어 메이저대회 셰브론 챔피언십 4라운드 18번 홀에서 어프로치를 실수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클러치(CLUTCH). 사전적 의미는 ‘운동 경기 중에 득점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잡아 득점으로 연결함. 또는 그런 능력’이다.

클러치는 농구에서 처음 사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농구 외에도 많은 스포츠 경기에서 승패가 나뉘는 결정적인 순간에 ‘클러치’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이 클러치의 순간은 구기 종목에서 더 두드러진다. 특히 한 번의 샷에서 극명하게 희비가 갈리는 골프에서는, 주로 매 홀의 마침표를 찍는 퍼트에서, 다른 어떤 스포츠보다 승리와 패배가 결정되는 순간이 더욱 자주 등장한다.

지난달 28일(한국시간) 미국 텍사스주 우드랜즈의 더 클럽 칼턴 우즈 잭 니클라우스 시그니처 코스에서 막 내린 여자골프 메이저대회 셰브론 챔피언십 최종 4라운드 18번 홀(파5)에서 발생한 에리야 쭈타누깐(태국)의 칩샷이 대표적이다.

1타 차 단독 선두로 마지막 18번 홀에 들어선 쭈타누깐은 두 번째 샷을 그린 뒤 관중석 부근으로 보낸 뒤 어프로치하는 작전을 선택했다. 공은 그린 옆 관중석에 있던 관계자를 맞힌 뒤 러프에 파묻혔지만 충분히 꺼낼 수 있는 상황으로 보였다.

하지만 쭈타누깐은 누구도 예상 못한, 어쩌면 자신도 예상하지 못했던 실수를 하고 만다. 평소였다면 가볍게 러프를 탈출했을 쭈타누깐이지만 평소와 달리 다소 서둘러 때린 샷은 공이 아닌 잔디에 맞고 튀는 실수로 이어졌다. 당황한 얼굴로 캐디를 바라본 쭈타누깐은 이내 다음 샷을 시도했지만 당황한 탓에 홀을 훌쩍 넘겼고 결국 1타를 잃어 연장 승부를 허용했다. 우승 문턱에서 주저앉은 쭈타누깐은 결국 준우승으로 마쳐 우승상금 120만 달러(약 17억2500만 원)를 놓쳤다.

이런 사례는 골프 경기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지난해 남자골프 메이저대회 US오픈에서도 로리 매킬로이(북아일랜드)가 16번, 18번 홀에서 1m 남짓한 퍼트를 연이어 놓쳐 브라이슨 디섐보(미국)에게 우승을 내준 것도 유사한 상황이다. 이 우승 실패에 매킬로이는 잠시 골프채를 내려두고 상처 입은 몸과 마음을 추스르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북아일랜드의 로리 매킬로이(왼쪽 사진)가 지난해 US오픈 4라운드에 결정적인 퍼트 실수 후 아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 오른쪽 사진은 김인경(왼쪽)이 2012년 나비스코 챔피언십에 출전해 30㎝ 퍼트를 놓쳐 연장 승부를 허용한 뒤 준우승해 아쉬워하는 장면. AP 연합뉴스
북아일랜드의 로리 매킬로이(왼쪽 사진)가 지난해 US오픈 4라운드에 결정적인 퍼트 실수 후 아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 오른쪽 사진은 김인경(왼쪽)이 2012년 나비스코 챔피언십에 출전해 30㎝ 퍼트를 놓쳐 연장 승부를 허용한 뒤 준우승해 아쉬워하는 장면. AP 연합뉴스

한국 선수들도 이런 사례에서는 빠지지 않는다. 가장 대표적인 예시가 바로 2012년 셰브론 챔피언십의 전신인 나비스코 챔피언십에서의 김인경이다. 당시 김인경은 어쩌면 쭈타누깐보다 더 우승에 가까웠던 선수였다. 김인경은 미국 캘리포니아주 랜초미라지의 미션힐스 골프장에서 열린 나비스코 챔피언십 4라운드 18번 홀(파5)에서 30㎝ 정도의 짧은 파 퍼트를 남긴 채 선두를 달렸다. 이 퍼트만 성공하면 메이저 트로피를 들 수 있었다. 하지만 김인경의 퍼트는 홀을 돌아 나왔고 결국 연장 끝에 준우승한 김인경은 눈물을 쏟았다.

남자선수 중에는 한국프로골프(KPGA)투어에서 활약하던 베테랑 강욱순이 2003년 미국프로골프(PGA)투어 퀄리파잉스쿨에 출전했다가 마지막 50㎝ 퍼트를 놓쳐 1타 차로 ‘꿈의 무대’에 나설 기회를 놓친 것이 대표적이다.

클러치의 순간에 승자가 된 선수의 기쁨보다 패자가 된 선수의 아픔이 더욱 오래가는 법이다. 그러나 이들은 보란 듯 다시 위기를 기회로 만들었다. 매킬로이는 아픔을 겪고 나서 한 달가량 몸과 마음을 회복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러고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시 대회에 출전해 불과 1년이 되기도 전에 마스터스에서 우승하며 남자골프 역사상 여섯 번째 커리어 그랜드 슬램의 주인공이 됐다.

김인경은 매킬로이보다 더 긴 슬럼프를 겪었다. 2017년 또 다른 메이저대회인 브리티시여자오픈을 포함해 시즌 3승을 하고 난 뒤 당시의 아픈 기억에서 벗어났다. 훗날 김인경은 “발생할 확률이 아주 낮은 일이 내게 벌어진 것이라고 받아들였다. 스스로 나무랄 필요는 없었다”고 당시 상황을 회상했다.

사실 쭈타누깐은 과거에도 클러치 상황에서 무너진 경험을 여러 차례 한 선수다. 쭈타누깐이 스윙 전에 항상 부정적인 생각과 함께 지나치게 긴장한다는 점을 간파한 그의 멘털코치는 스윙 직전에 심호흡을 한 뒤 억지로라도 미소를 짓는 루틴을 연습하도록 했고, 이는 2016년에만 한 차례 메이저대회를 포함한 총 5번의 우승을 가져오는 일등공신이 됐다.

이 클러치의 순간은 프로골퍼뿐 아니라 아마추어 골퍼에게도 찾아온다. 그리고 골프의 순간이 아닌 일상생활 상황에서도 마치 우승자를 결정하는 클러치 샷의 순간처럼 결과를 바꾸는 결정적 순간이 마주하기도 한다.

스포츠심리학 박사인 최우열 국민대 골프과학산업대학원 교수는 “우승을 결정짓는 짧은 퍼트 등을 앞둔 극한의 스트레스 상황이 되면 호흡과 동작 등이 평소보다 빨라질 수밖에 없다”고 진단한다. 최 교수는 “바로 이 극한의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에서 자신의 루틴을 지키지 않거나 평소보다 빠르게 경기하면 실수가 나올 가능성이 크다”면서 “일단 호흡을 느리고 깊게 하면서 의식적으로 움직임을 천천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 최대한 긍정적인 결과를 상상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오해원 기자
오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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