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데스크가 만난 사람 - 강석진 중진공 이사장

 

Q. 위기의 중기를 되살리는 대선 공약?

 

일감 많이 들어와도 인력 없어

야근 몰리면 인건비 감당불가

태국도 출산율 1명 안되는 현실

동남아 근로자 고용만으론 한계

 

환율 높아져 원자재값 천정부지

징벌적 규제 등도 n차 악재 작용

소기업 위주 집중된 지원 정책

중견기업·유니콘에도 쏟게해야

강석진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이사장이 지난달 17일 서울 양천구 중진공 목동사옥 이사장 집무실에서 경영 비전을 담은 플래카드와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문호남 기자
강석진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이사장이 지난달 17일 서울 양천구 중진공 목동사옥 이사장 집무실에서 경영 비전을 담은 플래카드와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문호남 기자

인터뷰=이관범 산업부장 frog@munhwa.com

정리=장석범·이예린 기자

중소벤처기업부가 지난해 발표한 ‘중소기업 기본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 중소기업 수는 804만2726개(2022년 말 기준), 종사자는 1895만6294명에 달한다. 국내 기업 1000곳 중 999곳이 중소기업이라는 얘기다.

그런데 한국 산업의 근간을 이루는 중소기업계의 위기감이 요즘처럼 고조된 것을 본 적이 없다. 경기침체 장기화와 미·중 관세전쟁, 고환율, 인력난, 징벌적 규제와 상속세 등 헤아리기도 힘든 이른바 n차 악재와 분투하는 상황에서 이제는 주 4.5일제 등과 같은 포퓰리즘적인 대통령 선거 공약까지 쏟아지고 있다.

1∼3월 기준 올 법인 파산신청 건수는 역대 최다를 기록 중이며, 중소 제조업 가동률은 코로나19 수준까지 곤두박질치고 있다. 수출 한국호를 뒷받침해온 뿌리 산업인 중소기업계가 흔들리면 결국 대한민국 경제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 더 늦기 전에 중소기업 정책의 대전환을 모색해야 하는 시점이다.

2023년 9월 취임 이후 발이 닳도록 중소기업계를 만나온 강석진(66)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이사장을 만나 아우성치는 현장의 목소리와 해법을 들어봤다. 지난 4월 17일 서울 양천구 중진공 목동사옥 이사장 집무실에서 만난 강 이사장은 경남 거창군수와 청와대 선임행정관, 기술신용보증기금 전무이사, 20대 국회의원 등을 거쳤다.

―관세태풍이 몰려오고 있다. 현장은 어떤가.

“심리적 영향을 더 크게 받고 있다. 가뜩이나 국내 사정도 어려운데 경제적으로 미국발 관세까지 덮치니, 대체 우린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불안감이 전염병처럼 퍼져나가고 있다. 이런 때일수록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여러분 혼자만 있는 게 아니다, 여러분 주위엔 정부도 있고 국회도 있고 언론도 있다. 중소기업이 잘돼야 수출도 할 수 있다. 수출로 먹고사는 이 나라에서 뭐든 여러분을 위해 할 준비가 돼 있으니까 안심해 달라’는 메시지를 전해야 할 시점이다.”

―얼마나 힘든가.

“이미 환율이 높아지면서 현장은 죽을 지경이다. 원부자재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으면서 현실적인 위기를 맞고 있다. 이걸 막기 위해 긴급경영안정자금 등의 정책자금 예산을 최대의 속도로 집행하고 있다. 고비를 넘길 수 있게 상반기에 80%를 집행할 예정이다. 지금까지 50% 정도 했다. 급한 불을 꺼야 하니까 조기 집행을 하는 거다. 정부가 편성한 추경 예산안에 긴급경영안정자금이 5500억 원 정도 포함돼 있다. 그리고 수출 바우처라고 있는데, 이미 예산이 거의 다 소진돼 버렸다. (이번 추경에 바우처 사업 관련 예산도) 2174억 원 정도 포함돼 있다. 어떻게 해서든 어려운 기업이 심리적으로 안정을 되찾고 현실적으로 대처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중요하다.”

―부서장들과 함께 올해만 300명이 넘는 기업 대표들을 만났는데.

“어제는 조선업 관련 중소기업들과 만났다. 거기서 나온 얘기가 뭐냐면 조선업이 지금 활황이라 그러지만, 중소기업들은 더 죽을 판이라고 한다.”

―조선업은 활황이라 더 좋은 것 아닌가.

“중소기업계의 현실을 모르는 얘기다. 일감 더 들어오면 더 겁이 난다고 한다. 예를 들어 10개를 하다가 20개 들어왔다고 치자. 그럼 인력을 늘려야 하는데 인력이 없으면 어떻게 되느냐. 인건비가 올라간다. 외국인력을 쓰든가. 납기를 못 맞추면 주문받고 오히려 도산하는 경우도 생긴다. 발주처로부터 신뢰도 잃고, 인건비가 올라버리면 단가도 못 맞춘다. 그래서 지금 우리 중기 상황을 볼 때 주 5일제가 마지노선이다. 주 52시간보다 더 줄이게 되면 감당할 수 없는 후폭풍이 몰아친다.”

―주 5일제가 중기 현실과 얼마나 맞지 않나.

“주문을 받으면 딱 5일 8시간씩 착착 해서 납품 딱 하고 그렇게 되지 않는다. 주문이 몰릴 때는 왕창 몰리고 없을 땐 없다. 몰릴 땐 야근해서 줘야 하는데, 인건비가 150%, 200%로 올라버리고 생산비가 크게 늘어난다. 휴일을 늘린다든가 하는 것은 인건비, 생산비 부담으로 곧바로 반영되니까 너무 힘든 상황이 되는 거다.”

“대한민국 배가 전 세계 1등이라 하는데, 그건 중소기업에서 만드는 부속품이 1등이라서 1등이 된 것이다. 부속품을 일류로 만들어줘야지 세계 1등 배가 되는 것 아니겠는가. 중소기업들의 의견을 제대로 들을 수 있어야 한다.”

―대선을 앞두고 표만 계산하는 공약이 쏟아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선거를 앞두고 중소기업 육성과 지원을 위한 많은 공약이 나오고 있다. 그런데 중소기업 현장은 생각보다 심각한 실정이다. 대한민국의 경제 건강을 유지하고, 중소기업이 만드는 제품의 품질을 유지하지 못하면 우리는 나아갈 수가 없다. ” “간담회를 하러 가면 주 52시간을 폐지해달라고 아우성이다. ‘옴부즈만이나 정부 부처, 국회, 언론에 기회 되는 대로 말씀드리겠습니다’라고 CEO분들께 얘기한다. 현장에서는 주 5일제도 죽을 판인데 주 4.5일제라니, 이거는 현장 소리를 전혀 모르고 하는 얘기다. 주 4.5일제 하면 외국인력 감당은 어떻게 하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야간 근무, 추가 근무를 하게 되면 인건비를 150%, 200% 올려줘야 하잖나. 감당을 못한다. 인건비 부담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면 중소기업들은 전부 진짜 그만둬야 할 판이다.”

―인력난이 정말 심각한 것 같다.

“인력 문제는 적어도 국무총리급에서 전 부처를 아우르는 컨트롤타워를 세워야 할 정도로 심각하고, 필요한 일이다. 대한민국 중소기업 인력문제는 갈수록 어려워질 것이다. 일례로 동남아시아의 출산율도 우리만큼 저조하다. 태국은 합계출산율이 1명이 안 된다. 베트남도 2명을 넘지 못한다. 우리가 동남아에서 인력을 무제한 데려올 수 있을 것 같지만, 이것도 얼마 안 남았다는 뜻이다. 그쪽에서도 아이를 안 낳는다. 그런 것까지 생각해서 미래를 대비해야 한다. 진짜 총리실 같은 데서 컨트롤타워를 세워서 고령화, 저출생 이런 것을 하듯, 지역균형발전을 하듯, 인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범국가적인 컨트롤타워를 세우고 예산을 배정해야 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10년 내로 중소기업이 생존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 도래할 것이다. 큰 어젠다로 다뤄야 한다.”

―대선 주자에게 현장의 목소리를 전해 준다면.

“중소기업계 간담회에 가면 맨날 중소기업이 국가산업의 근본이다, 중소기업이 잘돼야 나라가 산다고 한다.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현장에선 ‘다 말로만 하는 거 아닌가요?’라며 반문들을 한다. 그거부터 불식시켜 나가야 한다. 냉정하게 정말 중소기업이 원하는 게 뭔지에 대해서 고민해야 한다. ‘중소기업이 국가의 중심이 되는 나라’ 얼마나 좋은 말이냐. 나도 외웠다. 그런데 현장에서 체감하지 못하는 것은 가업 승계를 포기하게 만드는 세계 최고 수준의 상속세나 갈수록 악화하고 있는 인력 문제 등에 대해 속 시원하게 나서주는 경우를 좀처럼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진짜 중기인들이 첫째로 가장 말하고 싶은 것은, 나라에서 정치하는 사람들이, 오피니언 리더들이, 언론인들이 중소기업 하는 사람들을, 기름때 묻히면서 기름밥 먹는 사람들을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하는지를 확실하게 보여줘야 한다.”

―상속세, 형벌적 규제 때문에 해외로 떠나는 중기인도 많다.

“제 나이 정도 되는 사람들은 이제 2세에게 물려줄 준비를 해야 한다. 애들 불러서 기업하면 안 되겠냐 하면 ‘와이프와 상의해 보겠습니다’라고 한단다. 상속세 50%, 60%인데 빚을 내야 한다. 그렇게 물려받은 중소기업이 잘된다는 보장도 없다. 인력 충원도 잘 안 되고 어렵다. 자제들은 (기업) 정리해서 돈으로 달라, 아파트 사달라, 이런다고 한다. 세금으로 50∼60% 내버리면 감당이 안 되지 않겠나.”

“스무 살도 안 돼 손에 기름때 묻히면서 기업을 키운 분들이다. 이분들에겐 기업이 자식이나 마찬가지다. 소주 걸치면서 하는 말이 ‘이 자식(사업) 챙기려니 저 자식(자녀들)이 울고 저 자식 챙기려니 이 자식 없어질 거 같고…’라더라. 중소기업인들은 (돈·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아니다. 일본도 그렇게 하잖나. 가업을 승계할 때는 상속세를 내지 않게 해주고 마지막 매각할 때 세금을 내도록 한다. 우리는 바로 내야 되기 때문에 절대 승계를 못 하는 구조다. 새로운 CEO를 영입해서 가업을 이어갈 수도 있지만, 오너만큼 애정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가장 심혈을 기울이는 사업은.

“중소기업 정책은 ‘소’에 무게가 몰려 있다. 전부 소기업 중심이다. 3년 이내 된 곳들에 지원한다. 이젠 정책을 바꿔야 한다. 중진공이 설립된 게 1979년도다. 그땐 우리가 개발도상국이었다. 지금 우리는 선진국이다. 소기업 지원을 위한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도 따로 있다. 과감하게 넘길 거 있으면 넘기고, 여기는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이니까 중기업의 도약과 중견기업에 대한 지원을 늘려야 한다. 큰 기업으로 키워야 한다. 그런데 7년이 넘어가면 지원을 못 하게 돼 있다. 수출을 많이 했다든지 인력 고용을 많이 했다든지 이런 때만 예외적으로 해주긴 한다.”

―왜 중견기업인가.

“대한민국 경제 캐파로 봤을 때 중견기업을 키워야 한다. 물론 소기업도 중요하지만 우리나라 5000만 인구에 캐파가 수출 아니면 뭐 먹고 살 수 있나. 중견기업이 살아야 소기업 생태계가 큰다. 맨날 소기업만 육성하면 좀비기업만 늘어난다.”

“소기업을 중기업으로, 중기업을 중견기업으로 키우는 예산을 연구해서 확보해야 한다. 중진공 설립 취지가 어려운 기업, 은행 못 가는 기업, 소기업 이런 데를 돕는다는 틀을 못 버려서 도리어 소기업이 잘 자랄 수 있는 토양 자체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한계를 안고 있다.”

모범수 뽑아 中企 연결 시켰더니… 과밀화·인력난·자립문제 모두 해결

최저임금 70% 수준으로 충원

재소자도 기업도 ‘윈-윈’ 효과

경남 사천서 2차 사업 추진 중

교도소와 중소기업을 연결해서 교정시설의 과밀문제와 중소기업 인력난을 해소하고 재소자의 사회 복귀·자립을 돕는 ‘1석 3조’의 실험이 결실을 맺고 있다.

강석진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이사장은 “지난해 12월 법무부 교정본부와 협약을 맺고 홍천희망센터를 열어 모범수 20명으로 하여금 중소기업에서 먹고 자며 일하게 하고 있다”면서 “사고 나면 문책을 당할 수 있어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았지만, 이번에 교정당국의 협조로 과감하게 현실화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중진공은 중소기업에 기숙사와 체육시설을 지어주고, 교정당국은 모범수를 뽑아 사실상 취업하도록 하는 새로운 통합형 모델이다. 낮에만 인력을 파견하는 모델은 있었지만, 아예 취업 효과를 내게 하는 시도는 처음이다.

강 이사장은 “안전망을 튼튼히 해 사회 안정에 기여하는 효과를 낼 것”이라면서 “중소기업 입장에선 최저임금의 70%만 주고도 인력을 충원할 수 있고, 재소자 입장에선 매달 120만 원 정도를 차곡차곡 모아 사회로 나갈 수 있다”고 말했다. 수감자 작업장려금이 1만 원 내외인 점을 고려할 때 그만큼 퇴소 후 자립을 위한 자금을 모을 수 있다는 얘기다.

더 좋은 것은 교정본부가 전국 재소자 6만 명 가운데 적절한 인력을 차출해 보내줄 수 있다는 점이다. 가령, 선반이나 목공 일을 할 줄 아는 사람 등을 전국 모범수 중에 뽑아서 이감해주는 방식이다. 강 이사장은 “외국인 근로자는 소통이 어려운데, 재소자들은 언어장벽이 없으니 기존 근무하는 사람들과도 잘 지낸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강 이사장은 해당 사업을 확대해 나갈 생각이다. 그는 “경남 사천에서 2차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면서 “좋은 취지에서 한 사업이니 지역 사회에서 좀 관대한 시선으로 봐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관범 기자, 장석범 기자, 이예린 기자
이관범
장석범
이예린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2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