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극 ‘생추어리 시티’
이오진 연출 “현대의 비극 속에
삶에 대한 단서 찾을 수 있기를”

“아무도 도와주지 않아 절박하게 버티려는 사람들이 존엄을 잃어가는 현대의 비극이죠. 하지만 비극에 그치지 않고 그들의 삶에서 내 삶에 대한 단서를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연극 ‘생추어리 시티’는 어떤 작품이냐는 질문에 이오진 연출은 이같이 답했다. 이 연출의 대답만큼이나 작품 속 주인공들의 삶은 다층적인 고통으로 가득 차 있다. 모순적이게도 제목 ‘생추어리 시티’는 안식처를 뜻한다.
미등록 이민자 자녀로 미국에 살고 있는 주인공 B(김의태)와 G(이주영). B는 한국과 필리핀 혼혈, G는 멕시코 출신이다.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채 여러 폭력에 노출돼 있는 아이들은 서로가 유일한 버팀목이다. 그러던 중 G가 시민권을 얻고 대학 진학에 성공하면서 상황이 변한다.
‘지역’을 주제로 하는 두산아트센터의 ‘두산인문극장 2025’ 개막작 ‘생추어리 시티’가 무대에 올랐다. 연극 ‘생활의 비용’으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작가 마티나 마이옥의 대표작이며, 영화 ‘메기’,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 등으로 얼굴을 알린 배우 이주영의 첫 연극이기도 하다. 이 연출은 “원래부터 좋아했던 배우”라며 “무대의 언어와 매체 언어가 좀 다른데, 그 차이를 굉장히 빨리 흡수한다. 이를 체화시키고 구현하기까지의 과정도 빨라 하루하루 달라진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주인공들 이름이 알파벳 철자인 점이 독특하다. 이 연출에게 어떤 의도일지 물었다. “누구의 이름도 붙일 수 있는 이니셜이기 때문에 다양한 인종과 배경을 가진 인물들의 이름을 대입할 수 있는 대표적인 두 알파벳을 고른 게 아닐까요.”
2001년 9·11 테러 직후 미국 사회가 배경이지만 이민자, 동성애 등 소수자에 대한 이야기는 오늘날에도 통용된다. ‘이민자’들이 등장하는 만큼 외국인 배우(아마르볼드·몽골)가 출연한다. 그는 B의 동성 연인 ‘헨리’ 역을 맡았다. 이 연출은 “이민자와 인종에 대한 고민을 담기 위해 외국인 배우와 일하고 싶었다”며 “서유럽 출신이 아니되 외면적으로 정확하게 인종이 드러나는 외국인이 아닌 사람을 섭외하고자 했다”며 캐스팅 배경을 밝혔다.
어엿한 미국 시민이 된 G는 “삶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선택지”라며 B에게 위장 결혼을 제안한다. 이를 계기로 인물들의 관계가 삐걱거리기 시작한다. “우리가 외국인을 남이라고 느끼지만, 사실은 서로 분리될 수 없는 것처럼 여기까지는 사랑이고, 저기부터는 우정이라고 이야기하는 선도 분명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해요. 모두가 그 경계에 서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공연은 오는 10일까지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에서 계속된다.
김유진 기자주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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