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 일기

소피 퓌자스·니콜라 말레 지음│이정순 옮김│을유문화사

“몇 년이 흐른 뒤에 일기를 다시 읽으면 스스로 시인하지 않았던 것이 드러난다. 나는 항상 ‘나의 일기 속 여성’에게 놀란다.”

책의 맨 앞에 실린 인터뷰에서 2022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아니 에르노는 자신의 일기를 읽으며 느낀 점에 대해 이렇게 고백한다. 일기를 썼던 당시와 지금의 나는 다른 사람이라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자전적 글쓰기의 대가인 그는 이유에 대해서도 말한다. “사건이 일어나는 때에 바로 사건 자체를 그 외부에서 포착하는 것이야말로 공정하고 1년 혹은 10년 후에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는 유일한 기회다.”

이처럼 일기는 사람의 인생을 변화시킨다. 책에는 프란츠 카프카, 버지니아 울프를 비롯해 유명 작가 87명의 일기와 설명이 묶였다. 두 저자 중 한 사람인 소피 퓌자스는 서문을 통해 일기를 “한 페이지에 던져진 몇 개의 단어로 자기 시간을 고립하는 것”이라고 말하며 “나날을 쓸어가 버리는 망각에 저항해 그것을 기록하며 싸우는 것”으로 규정한다.

일기란 오로지 자신 한 사람만이 쓴다. 누군가 훔쳐볼 가능성도 있지만 독자 또한 기본적으로 자신뿐이다. 그렇기에 일기장의 백지 앞에서 모두는 조금 더 솔직해진다. 일기장에는 삶이 담길 뿐 행복한 이야기가 채워지는 것은 아니다. 빅토르 위고의 동생 아델 위고는 불우한 자신의 삶에 찾아온 한 육군 중위를 짝사랑하게 됐다는 일기를 쓴다. 캐나다에서 그와 결혼했다고 가족에게 거짓 편지를 보내지만 일기장에는 정신착란이라는 사실이 드러나 있다. 소설가 쥘리앵 그린은 99년의 인생 동안 숨겨온 동성애 정체성과 육체적 쾌락을 낱낱이 고백하기도 한다.

책에는 육필 원고 사진도 함께 실렸다. 내밀한 고백을 이어가는 그린의 일기에는 빨간 펜으로 수정하고 삭제한 흔적들로 가득하다. 또한 노벨물리학상과 화학상을 동시에 받은 과학자 마리 퀴리가 남편 피에르 퀴리를 잃고 쓴 1906년 4월 30일의 일기에는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슬픔이 두 방울의 눈물 자국으로 남아 있다.

사랑하는 이를 잃고 목숨을 끊어버린 실비아 플라스의 일기부터 나치와 제2차 세계대전을 마주한 토마스 만의 일기까지. 개인의 기록일 뿐이지만 필자들은 언젠가 원고가 세상에 나올 것을 예견하기도 한다. 아니 에르노 또한 자신의 일기를 출간하겠다고 밝힌다. 단, 사후에. 자신과 타인, 세상을 마주한 터질 듯한 마음을 세상에 전하는 가장 느린 방법인 것이다. 마침내 책은 책장을 덮고 일기장을 펴게 만든다. 360쪽, 2만5000원.

장상민 기자
장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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