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든 것의 새벽

데이비드 그레이버· 데이비드 웬그로 지음│김병화 옮김│김영사

재러드 다이아몬드 ‘어제까지의 세계’, 유발 하라리 ‘사피엔스’ 등 그간 ‘빅 히스토리’(거대문명사)류의 문법은 대체로 비슷했다. 인류의 유구한 문명이 도중의 어느 시점에서 혁명적인 전환기(농업혁명, 산업혁명, 과학혁명 등)를 맞아 특정한 방향으로 나아갔다는 것, 고대 그리스와 근대 유럽으로 대표되는 서구 문화에 근간해 현대사회 문제점의 원인을 찾는다는 점, 그리고 현재 혹은 미래에 대한 전망이 밝든 우울하든 사회는 단선적이고 단계적으로 진화한다는 것이다. ‘빅 히스토리’는 역사와 경제, 진화생물학과 심리학의 관점에서 이런 이론을 옹호하면서 지금의 불평등과 부자유한 상황을 바꿀 대안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러나 5년 전 세상을 뜬 인류학자 데이비드 그레이버와 고고학자 데이비드 웬그로는 대담하게도 이를 거부한다. 거대한 진화는 환상이며 사회적 현실은 그보다 훨씬 복잡하고 다양하다고 주장한다. 현대 사회과학이 신념처럼 떠받드는 17~18세기 토머스 홉스(‘리바이어던’)와 장 자크 루소(‘인간 불평등 기원론’)의 자유, 평등, 민주주의 사상을 뿌리째 흔드는 파격이다.

그레이버와 웬그로도 처음엔 인류 불평등의 기원을 찾고자 했다. 지금까지 문명사에서 불평등의 기원을 설명하기 위해 약 1만2000년 전 출현한 농경사회에서 원류를 찾았고, 이후 도시의 발달과 사회의 계층화, 그에 따른 인간 불평등을 내세웠듯이 이런 진화 자체가 인간 삶의 조건이 됐다는 스토리를 따랐다. 하지만 둘은 얼마 안 돼 ‘사회적 불평등의 기원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잘못됐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질문을 이렇게 바꾼다. ‘우리는 어쩌다 하나의 사회적 형태에 고착되어 버렸는가.’

두 저자는 급진적이다 싶을 정도로 인류 사회의 기원과 진화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던 것을 전복한다. 최근 수십 년간 발견됐으나 전문 학술 영역에서만 다뤄져 온 새로운 인류학·고고학 증거들을 제시한다. 이에 따르면 농업혁명 같은 건 없었다. 적어도 혁명적 사건은 아니었다. 대규모 사회가 반드시 지배와 위계를 수반하는 것도 아니다. 많은 인구가 모여 큰 도시를 이루고 살면서도 행정적 위계와 권위주의적 지배의 흔적이 부족한 고고학적 발견이 세계 각지에서 이어지고 있다.

민주주의와 자유·평등의 이념도 실은 아메리카 선주민(토착민) 사상에서 발원했다고 본다. 오늘날 세계 질서의 근간으로 알려진 서구 정치 이념이 유럽 계몽주의가 아니라 아메리카 선주민이라는 폭로는 매우 놀랍다. 지금은 당연해 보이는 세계 자본주의와 시장경제 체제는 우리가 잠시 고착한 시스템의 하나일 뿐이며, 인류는 수만 년 전부터 유동적인 생존법을 찾아왔음을 보여준다. 912쪽, 4만7000원.

김인구 기자
김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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