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 몸

 

■ 주희 ‘논어집주’

 

천지만물과 나는 하나

몸을 통해 氣로 소통

仁 갖추면 깨닫게 돼

 

어질지 못하면 소인배

인간 형상 지녔지만

신체는 동물적인 몸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살면서 내가 자연과 한 몸이라는 생각이 든 적이 있는가? 내가 평온하면 자연도 평온해진다고 느낀 적은 또 어떤가? 인간과 자연을 칼같이 나누는 근대인들에게는 무척 생뚱맞은 물음이지만, 한자권의 옛사람들에게는 이상할 것 하나 없는 물음이었다. 도가의 대표자인 장자는 천지와 나는 더불어 살아가며 만물은 나와 하나라고 단언했고, 불교에서도 천지는 나와 한 뿌리이고 만물은 나와 한 몸이라고 가르쳤다.

도가나 불교와 대척점에 서 있던 유가도 예외가 아니었다. 성리학을 집대성한 주희는 “온 세상은 모두 한 형제”(논어)라는 공자의 세계관을 더욱 확장하여 “천지만물은 본디 나와 한 몸이어서, 나의 마음이 바르면 천지의 마음도 바르게 되고 나의 기가 순조로우면 천지의 기도 순조롭게 된다”(사서집주)고 잘라 말했다. 그가 이렇게 단정할 수 있었음은 다름 아닌 ‘인(仁)’, 그러니까 어짊 덕분이었다. 유가에게 어짊은 천지만물이 한 몸임을 알게 해주고, 그들과 소통을 가능케 해주는 도덕이었다. 어짊이라는 도덕을 갖추면 천지만물이 본래 나와 한 몸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어 절로 소통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천지만물과 내가 한 몸이라는 것은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 옛사람들은 사람을 포함하여 만물은 기(氣)로 이루어졌다고 보았다. 순자가 명쾌하게 정리했듯이 사람이나 동물, 식물은 물론 불과 물 같은 것도 모두 기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맹자는 이러한 기가 만물과 나뿐 아니라 온 천지간에 가득 차 있다고 하였다. 천지만물은 이렇게 기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한 몸인 것이고, 서로 간에 기로 연결되어 있기에 한 몸처럼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손과 발이 떨어져 있지만 신경으로 연결된 덕분에 한 몸으로 느낄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이렇게 보면 우리 몸은 내가 천지만물과 기로써 소통하는 장소가 된다. 여기에 어짊이라는 도덕이 갖추어짐으로써 나의 몸은 천지만물과 원활히 통하게 된다. 반대로 어짊을 갖추지 못하면, 다시 말해 어질지 못하면 천지만물과 소통하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어질지 못함을 뜻하는 불인(不仁)의 다른 이름이 ‘마비’였다.

물론 어질지 못하면 몸이 마비된다는 사고가 뜬금없다고 느껴질 수 있다. 살아오면서 도덕적이지 못한 선택을 하고 이를 행할 때가 사실 적지 않은데 그때마다 몸이 마비되는 것은 아니었다. 모르긴 해도 어질지 못하다고 하여 신체가 마비된다면 세상에는 몸 성한 자보다는 몸이 성치 못한 이가 훨씬 더 많을 것이다. 오늘날만 그러한 것도 아니라 저 옛날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왜 맹자, 순자 같은 유가는 도덕을 갖추지 못하면 몸이 마비된다고 보았을까?

인간의 몸에는 두 가지의 가능성이 담겨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하나는 도덕적 몸이 될 가능성이고 다른 하나는 기질적 몸에 머무를 가능성이다. 유가는 기질 차원에서 인간과 동물은 동일하다고 봤다. 그래서 맹자는 동물과 사람이 다른 점은 매우 적으니, 도덕의 구비 여부에 따라 인간과 동물이 나뉜다고 했다. 이러한 관점에 따르면 기질적 몸은 곧 동물적 몸이다. 또 맹자는 인간으로 태어나도 도덕을 갖추면 군자가 되고 그렇지 않으면 소인배가 된다고 했다. 소인배는 인간의 형상을 지녔지만 그 신체는 동물적인 몸이라는 얘기다. 우리가 부도덕해도 몸이 마비되지 않았던 이유가 이것이다. 우리가 도덕적 몸이 아닌 동물적 몸으로 살아가기에 그러했던 것이다.

도덕적 몸이 동물적 몸보다 우월하다는 얘기를 함이 아니다. 맹자나 순자 같은 현자가 그렇게 보았다고 하여 오늘날을 사는 우리가 꼭 이를 따라야 함도 아니다. 다만 그들의 통찰처럼 인간의 몸이 도덕적 몸이기도 하고 동물적 몸이기도 하다면, 더욱 중요한 것은 이 둘의 조화와 견제일 수 있다. 또한 천지만물과의 소통까지는 아닐지라도 나를 둘러싼 주변과의 소통 능력은 오늘날에도 매우 중요한 역량이다. 이래저래 귀담아들을 필요는 있을 듯싶다.

김월회 서울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