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식 주필

 

여의도정치 지속 불가능 상태

전대미문의 정치 쓰나미 속출

국민은 파격적 정치개혁 열망

 

범보수 빅텐트는 절호의 기회

미국 공화당도 ‘빅텐트 정당’

공화주의 기치로 기반 넓혀야

한국의 정치 시스템은 더는 지속 가능하지 않은 임계 상황에 도달했다. 다수당 폭주와 비상계엄 맞불은 1차 폭발이었다. 앞으로 전대미문의 정치 쓰나미 2파 3파가 계속 덮칠 것이다. 국민의 정치 불신은 비등점을 넘은 지 오래다. 거대 양당의 기득권이 솥뚜껑을 누르고 있는 형국이지만, 이젠 변화의 압력을 견디기 힘들게 됐다. 민의에 반응해야 할 정당들이 시대 변화에 부응하긴커녕 심각한 퇴행 현상까지 보인다. 국민의힘은 ‘대통령 하수인’으로 전락했고, 더불어민주당은 ‘이재명 득표율 89.77%’가 상징하듯 유례없는 1인 정당이 됐다.

민주주의 관점에서는 대선 승패보다 정당정치 개혁이 더 근본적 과제다. 민주당이 지금 앞서 달리지만, 역설적으로 그 때문에 과감한 개혁에 나서기 힘들다. 국민의힘은 판세를 뒤집기 위해 무슨 일이든 할 수밖에 없다. 빅텐트를 만드는 게 급선무인데, 기존의 인적·제도적 울타리를 초월하는 게 대전제다. 구멍이 생겨 비가 샐 수도 있지만, 일단 텐트 크기를 키워야 한다. ‘텐트 안에서 밖으로 오줌을 누도록(piss out) 하는 게 밖에서 안으로 그러도록 하는 것(piss in)보다 낫다’는 미국 정치 격언도 있다. 결선에 진출한 두 후보는 “합당한 방법으로 단일화”(김문수), “이기기 위해선 뭐든 할 것”(한동훈)이라고 밝혔다. 당원 투표를 의식해 에둘러 말했겠지만, 후보로 확정되면 파격적 결단이 불가피할 것이다.

보수 정당사를 보면, 시초부터 사당(私黨) 성격이 강했다. 반공과 호국, 빈곤 탈피라는 절대 목표가 민주적 운영이라는 형식을 압도했기 때문이다. 이승만의 자유당, 박정희의 민주공화당, 전두환의 민주정의당은 최고 권력자의 퇴장과 함께 사라졌다. 1990년 3당 합당으로 새 지평을 열었고, 김영삼-이명박-박근혜-윤석열 정권을 창출했다. 그렇지만 당내 민주주의는 뒷걸음쳤고, 윤 정권에선 파탄으로 치달았다.

권력자 정당에서 진정한 국민정당·시스템정당으로 거듭나야 할 때다. 그러면 대선 승리 희망도 커진다. 현재 3대 주자인 김문수·한동훈·한덕수 모두 여의도 정치에서 자유롭고, 정치 기득권이라고 할 만한 것도 없다. ‘대통령병 환자’도 아니다. 구태와 구연(舊緣)에 얽매이지 않고 과감한 변화를 추구할 토대는 마련된 셈이다.

이처럼 한국 정치의 ‘창조적 파괴’ 여건은 무르익었다. 빅텐트가 어떻게 만들어질지 예단하기 힘들지만, 인물이나 정치공학보다 정치의 창조적 파괴라는 대의를 기둥으로 삼으면, 꽤 광범위한 세력을 모을 수 있을 것이다. 미국 공화당은 1854년 노예제 반대 기치 아래 다양한 세력이 모인 ‘빅텐트 정당’이었다. 보수적 노선을 견지했던 휘그당의 온건 세력, 친노예제 성향의 민주당에서 이탈한 세력, 군소정당인 자유토지당과 무지당(無知黨)이 노예제 반대라는 대의 하나를 위해 뭉쳤다. 그리고 ‘정치 신인’ 에이브러햄 링컨을 대선 후보로 내세워 승리했고, 200년 가까이 미국과 세계 정치의 중추 역할을 해오고 있다. ‘친윤’이 존재감을 상실한 국민의힘은 미국 공화당 창당 때와 같은 시도를 해볼 기회를 맞았다.

빅텐트를 위해 국민의힘 간판에도 연연할 필요가 없다. 당명은 세계 유수의 선진 정당들처럼 간명하면서 정체성을 담는 게 좋다. 개인의 인권과 자유를 중시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공동체의 안녕이 보장돼야 한다는 공화주의 이념이 좋은 이정표가 될 수 있다. 적절한 계기에 공화당 또는 공화연합당으로 바꾸는 것도 검토할 만하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는 헌법 제1조에도 부합한다. TK와 6070세대 중심 구조에서도 탈피해야 한다. TK가 중요한 기반이지만, 거기에 안주하려는 정치인들 때문에 기반이 위축되고, 다시 TK 의존도를 높이는 악순환이 이어져 왔다. 부작용이 더 큰 비례대표제 폐지, 국회의원 숫자는 물론 특권과 세비의 대폭 축소, 중대선거구제와 결선투표제를 통한 정치 양극화 완화 등을 제시한다면 국민이 공감하고 환호할 것이다.

무엇보다 희망을 잃지 않고 모두가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최근 선종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자서전 ‘희망’에서 ‘진정한 희망이란 과거에 발목 잡히지 않으며,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내일을 밝게 바라볼 줄 아는 마음의 힘’이라고 했다.

이용식 주필
이용식 주필
이용식 논설위원
이용식

이용식 논설위원

논설위원실 /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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