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보나 첫 시집 ‘나의 모험 만화’

김보나 시인은 지난달 25일 시집의 표지 색상에 맞춘 하늘색 블라우스에 보라색 재킷을 입고 배낭까지 멘 채 문화일보사를 방문했다. 그는 ‘나의 모험 만화’ 그 자체였다. 박윤슬 기자 
김보나 시인은 지난달 25일 시집의 표지 색상에 맞춘 하늘색 블라우스에 보라색 재킷을 입고 배낭까지 멘 채 문화일보사를 방문했다. 그는 ‘나의 모험 만화’ 그 자체였다. 박윤슬 기자 

2022년 문화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하며 “앞으로도 활자를 믿고 쓰면서, 빛과 사랑을 따라 흔들리며 나아가고 싶다”는 소감을 전했던 김보나 시인이 첫 시집 ‘나의 모험 만화’(문학과지성사)를 펴냈다. “문화일보에 다시 오니 친정에 온 듯 반갑다”는 김 시인을 지난달 25일 만났다.

등단 후 첫 시집을 내기까지 꼬박 3년, 시인은 어떤 시간을 보냈을까. 김 시인은 “책의 제목처럼 모험적인 시간이었다”며 웃었다. 스스로를 전형적인 ‘집순이’로 소개하는 시인이 모험적인 시간을 보냈다니 더욱 궁금해진다. 여행을 가고 싶다는 생각만 자주 할 뿐 좀처럼 떠나길 결심하지 않는다는 시인에게는 자신만의 모험이 있다. “현실에 묶여 있는 나 대신 화자들을 즐거운 곳으로 보내 봤어요. 가고 싶었던 곳, 꿈꾸던 곳을 마음껏 쏘다녔고 발견하고 느낀 것이 시집에 담겼죠.”

표제작에서 어린 시절의 화자는 모험 만화를 그린다. 그리고 만화의 주인공에 대해 설명한다. 모험 만화 주인공이라면 대개 비범한 능력을 지닌 히어로를 떠올리지만 화자에겐 아니다. ‘나의 주인공은 그저/다들 지나치는 사육장의 토끼를/혼자 돌보는 사람…공조차 앞지를까 봐/달리는 속도를 조절하는 사람’. 평범하다 못해 소심하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은 인물이다. 심지어 모험에는 고난과 역경, 극복의 서사도 없다. ‘이 모험의 끝은 친구를 만드는 일이라는 듯’ 명대사 대신 웃음만 짓는다. 어린 시절을 떠올리던 화자는 이내 어른인 지금으로 돌아온다. 지하철에서 백팩의 무게를 견디며 서 있는 어른은 여전히 ‘칸 속 사람들의 말풍선을 속속들이 알고 싶다’고 말한다. 친구 삼을 사람들의 마음을 궁금해하던 동심을 간직한 채 어른이 되고 또 계속 사람을 궁금해하는 일, 그것이 시인에게는 모험인 것이다. “즐거운 만남이 끝나고 마음속에 남겨진 말과 표정의 잔상들이 시가 돼요. 사람과 만나 부대낄 때 시를 쓸 수 있으니 더 많은 사람을 궁금해하고 싶어요.”

시인은 상상하고 만들어 낸 화자들에 대해 “현실의 나보다 훨씬 용감하다”고 설명했다. 세상의 곳곳에서 각양각색의 사람들을 만나며 더욱 단단한 마음을 가지게 됐기 때문이다. 동유럽 광장에서 만난 집시 할머니와의 대화로 시작하는 시 ‘폴란드식 기념품’에서 화자는 ‘남은 삶에서 마주치게 될 수없이 많은 문에 대해 생각한다’고 말한다. 그만큼 알 수 없는 미래는 두렵기도 하지만 수록시 ‘다 뜻이 있겠지’에서 화자는 결론을 내린다. ‘나는 믿어요/조롱당하며 맛있어지는 것도 세상엔 있으니까요’. 이처럼 긍정을 믿는 마음에서 비롯된 용기는 특히 사랑의 동력이 된다. 또 다른 수록시 ‘히쓰지분가쿠 보컬과 결혼하려면’에서 화자는 사랑하는 마음을 전할 수만 있다면 바다를 건너는 것도 주저하지 않을 기세다. ‘윙스팬(Wingspan)’의 화자는 ‘나는 사랑의 전문가가 아니면서/한 사람의 손을 잡기도 했다’고 고백한다. 또한 ‘어둠 속을 같이 걷고 싶은 사람에겐/이렇게 말해야 하는지도 모른다/우리 같이 진화하자’라며 사랑을 위해 현실의 모든 조건을 가뿐히 초월해버리려 한다.

“누군가 기죽어 있을 때면 힘이 되는 말을 건네고 싶다”는 그의 말처럼 시인의 용감한 사랑시는 모든 독자를 향한 응원이다. “언제 내가 기뻤을까 생각해 봤어요. 현실의 내가 초라하고 왜소하며 괴롭다 할지라도, 또 사랑과 우정이 끝났다 할지라도 눙치며 한 번 더 ‘다시’를 말할 수 있을 때였죠. 앞으로도 다시 일어설 기운을 시로 전해드릴게요.”(웃음)

장상민 기자
장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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