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음상담소

▶▶ 독자 고민
일에 열정을 갖고 살던 제가 갑작스러운 임신과 출산으로 육아휴직을 하게 됐어요. 아기는 정말 예쁘지만, 하루 종일 달래도 잠들지 않으면 정말 밉다거나, 일부러 날 괴롭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그런 생각을 하는 제가 너무 무섭고, 이기적인 엄마 같단 기분이 들어요. 치료를 받아야 할까요?
A : 모성애는 완벽해야 하는 감정이 아닙니다
▶▶ 솔루션
어쩌면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신 당신도, 이분 얘기에 고개를 끄덕이셨을지 모릅니다. 아기가 사랑스럽지 않은 게 아닙니다. 아기를 바라보는 당신 눈동자에 이미 충분한 사랑이 담겨 있어요. 다만 그 사랑을 전할 수 없게 만드는 ‘지침’이 문제일 뿐입니다.
출산을 마친 많은 여성들이 겪는 산후우울증은 단지 ‘우울한 기분’이 아닙니다. 이는 생리적인 호르몬 변화, 일상의 급격한 붕괴, 그리고 누구에게도 말 못할 고립감이 겹쳐 만들어진 깊은 정서적 혼란입니다. 실제로 산모의 70%가 ‘베이비 블루스’(baby blues·일시적 산후우울감)를 경험하고, 이 중 20%는 치료 없이는 회복되지 않는 ‘산후우울증’으로 이어집니다. 이는 단순히 기분 문제나 성격 탓이 아닌, 몸과 마음이 너무나 혹독한 시기를 지나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할리우드 배우 브룩 실즈는 출산 후 딸을 품에 안고도 기쁨을 느끼지 못했고, 오히려 아이보다 더 많이 울었다고 고백했습니다. “이게 무슨 엄마야”하는 자책 끝에 창밖으로 몸을 던지고 싶은 충동까지 느꼈다고 했지요. 결국 정신과 치료를 받은 그녀는, 2005년 경험담을 실은 책 ‘비가 내렸어요’를 써 많은 산모들에게 위로와 용기를 전했습니다.
우울증은 슬픔과 다릅니다. 슬픔은 흘러가지만, 우울은 고여 마음을 짓누릅니다. 슬픔은 누군가와 나눌 수 있지만, 우울은 나를 고립시킵니다. 무엇보다 무서운 건, 우울은 사랑하는 능력부터 빼앗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자신을 의심하기보다, 자신이 얼마나 오래 혼자 견뎌왔는지를 돌아봐 주세요.
모성애는 완벽해야 하는 감정이 아닙니다. 사랑이 때때로 지치고, 밀려드는 분노에 휘청일 수도 있어요. 당신이 느끼는 복잡한 감정들, 그건 이기적인 게 아니라 너무 오래 무너지지 않으려 애써 온 ‘마음의 울림’일지도 모릅니다. 출산 후 당신의 방 한 칸이 세상의 전부가 되어버리고, 몸은 망가진 듯한 느낌, 바깥세상은 여전히 화려한 속도로 돌아가는데 나만 멈춰 서 있는 것 같은 외로움. 그 깊고 조용한 좌절 속에서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치료를 받는다는 건 ‘엄마 자격이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건 오히려 ‘나는 나와 내 아이 모두를 지키고 싶다’는 강한 사랑의 표현입니다. 그러니 완벽한 엄마가 되려 하지 마세요. ‘충분히 좋은 엄마’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아이에게 모든 것이 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해롭지 않은 어른, 넘어졌을 때 일어날 줄 아는 엄마, 스스로를 돌볼 줄 아는 엄마, 그것만으로도 아이에겐 충분합니다. 그러니 산후우울증이 병적인 양상을 보인다면, 즉 우울감이 2주 이상 지속될 때, 수면이나 식욕의 변화가 심할 때, 아이에게 관심이 가지 않거나 스스로에 대한 부정적 생각이 심할 때, 자해나 죽음에 대한 생각이 들 때 반드시 정신건강의학과를 방문해주세요. 그리고 그 아이가 자라 어른이 됐을 때 자신도 지쳤을 때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그렇게 당신을 닮아가기를 바랍니다.
권순재 대한정신건강의학과의사회 정보이사·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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