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극장과 다른… ‘대학로 뮤지컬’의 매력

 

■ ‘퀴어’가 대세

‘모리스’ ‘하트셉수트’ 女관객만

男男 이어 女女 애정극도 ‘인기’

 

■ 중간박수 NO

팬들 오롯이 스토리 전개 집중

‘시체관극’ 비판 뚫고 관행으로

 

■ 아이돌급 덕질

대학로 곳곳서 배우들 생일카페

사진·포스터에 캐릭터 쿠키까지

대학로 팬덤 사이에서 인기몰이 중인 뮤지컬 ‘하트셉수트’, ‘도리안 그레이’, ‘모리스’(사진 위부터).  글림컴퍼니·PAGE1·뉴프로덕션 제공
대학로 팬덤 사이에서 인기몰이 중인 뮤지컬 ‘하트셉수트’, ‘도리안 그레이’, ‘모리스’(사진 위부터). 글림컴퍼니·PAGE1·뉴프로덕션 제공

‘청춘의 거리’ 대학로에는 하루에도 수십 편의 연극과 뮤지컬이 관객의 발길을 기다리고 있다. 대학로는 대극장 뮤지컬들과는 다른 고유의 뮤지컬 문화가 존재한다. 이제는 대학로 스테디셀러로 자리매김한, 남자 배우들의 케미스트리를 느낄 수 있는 ‘남남 페어’극부터 ‘최애’(가장 좋아하는) 배우 ‘덕질’까지. 매 주말 ‘종일반’(주말 하루 낮과 밤 시간대 공연을 모두 관람하는 것)을 자처한 기자가 직접 대학로를 찾아가 봤다.

◇‘퀴어물’은 여전히 대세. ‘男男극’ 넘어 ‘女女극’까지

뮤지컬 ‘모리스’와 ‘하트셉수트’ 공연장 로비에는 여성 관객이 가득하다. 기자가 관람한 날 ‘모리스’ 객석에 남성 관객은 10명이 채 안 됐다. 대부분이 이미 수십 차례 관람한 이른바 ‘회전문 관객’이다. ‘모리스’는 20세기 초 보수적인 영국 사회에서 피어난 케임브리지 대학생 모리스와 클라이브의 동성 간 첫사랑을, ‘하트셉수트’는 여성 파라오와 아문의 여성 사이의 사랑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9년 만에 돌아온 ‘도리안 그레이’ 역시 오스카 와일드의 소설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을 기반으로 한 창작 뮤지컬로 퀴어 코드가 녹아 있다.

하이라이트는 동성 배우 간의 키스신. 로맨스 드라마 못지않은 자극적인 키스신을 보여준다. 객석에서는 순간 숨을 멈춘 채 뮤지컬을 본다. ‘하트셉수트’ 관람 당일에는 커튼콜에서 배우들이 팬서비스 차원에서 키스신을 재연하자 기립한 팬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이전에는 남배우끼리의 페어에 열광했다면, 이제는 여성 배우들만 출연하는 ‘여여’극도 인기다.

최승연 평론가는 “남성 2인극의 시초는 ‘쓰릴 미’이다. 본격적으로 N차 관람의 힘을 보여준 작품”이라며 “지난해 각광받은 시스맨스(여자들의 진한 우정) 소재가 ‘하트셉수트’ 등으로 이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남성 페어 작품에 비하면 폭발력은 덜한 편”이라고 덧붙였다.

◇중간 박수는 없다…박수는 언제 치나요?

대학로 뮤지컬들은 대극장 뮤지컬만큼 공연 중간에는 박수가 크게 나오지 않는 편이다. 오롯이 스토리에 집중하는 팬들이 더 많기 때문이다. 이런 모습을 두고 ‘시체 관극’(움직임 없이 숨죽여 공연을 관람하는 것)이라며 비판하는 목소리도 많지만, 이미 대학로의 관행처럼 자리 잡았다. ‘모리스’는 커튼콜 때까지 중간 박수가 전혀 없고, 무대를 마치고서야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온다. ‘하트셉수트’는 ‘겨눈다’ 등 하이라이트 넘버가 끝나야 관객들이 박수를 보낸다. 두 작품 모두 소극장 뮤지컬이지만 커튼콜 때가 되면 여느 뮤지컬보다 큰 환호성이 쏟아진다.

이런 문화에 대해 최 평론가는 “뮤지컬 관람을 사적 경험으로 만들기 위한 데서 비롯된 현상”이라며 “브로드웨이에서는 배우가 처음 등장할 때부터 박수를 치고 소리 지른다. 중간중간 키득거리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대학로 팬덤’은 한국만의 고유한 문화이고 파급력도 있기 때문에 다 같이 향유하는 문화로 바뀌길 바란다”고 전했다.

◇배우 ‘덕질’도 아이돌처럼

대학로를 걷다 보면 ‘배우 000의 생일을 축하합니다’ ‘데뷔 N주년 축하’ 등 문구가 쓰인 카페들을 쉽게 볼 수 있다. 내부는 배우 사진과 포스터, 배우를 닮은 캐릭터 쿠키 등으로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다. 대학로에서 카페 오드 투 디저트를 운영 중인 이원준 씨는 “보통 한 달 내내 예약이 잡혀 있고 1년 전부터 예약을 원하는 분들도 있다”고 설명했다. 주말의 경우 하루에만 100명 이상의 팬들이 찾는다. 배우들도 본인의 소셜미디어에 방문 인증 사진을 찍어 올린다. 뮤지컬 배우 백형훈의 생일 카페를 운영한 적 있는 하승진(26) 씨는 카페 내부를 찍은 사진을 보여주더니 “배우가 직접 찍어줬다”며 웃었다. 이처럼 요즘 대학로에는 새로운 낭만과 꿈, 젊음이 넘친다.

김유진 기자
김유진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