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보영 정치부장
후보 당선뒤 통합 14회 언급 李
대법원 상고심엔 사실상 불복
민주당은 度 넘는 사법부 공격
공동체 합리적 질서 유지 위해
국민에 대한 자의적 정의 중지
사법부 포함 3권분립 존중 필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선거 후보가 3번째 대권 도전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는 단어는 ‘국민’이다. 당 후보로 선출된 뒤 지난 4월 28일 첫 일정인 국립서울현충원 방명록에 ‘국민이 행복한 나라, 국민이 주인인 대한민국, 국민과 함께 만들겠습니다’라고 썼다. 전날 89.77%의 압도적 득표율로 선출된 뒤 행한 수락연설에서도 ‘국민’을 50회 사용했다. 특히, ‘국민통합’은 6000여 자 분량의 연설에서 14번이나 등장했다. ‘위기’(9회), ‘내란’(8회)보다 많았다. 비상계엄과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까지 4개월의 혼란을 극복하는 ‘통합의 지도자’ 이미지를 앞세우려는 듯 보였다.
하지만 이 후보가 지난 1일 대법원이 본인에 대한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상고심에서 유죄 취지 파기환송 선고를 내린 이후 사용한 ‘국민’의 의미는 이전과는 달랐다. “제 생각과 다른 판결”이라는 전제 아래 “법도 국민의 합의이고, 국민의 뜻이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대법원 판결이 국민의 뜻과는 위배된다는 의미로, 대법원 판결에 대한 ‘불복’ 뉘앙스가 짙다. 이 후보는 지난 4월 헌재의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 선고 이전에도 공개적으로 헌재 판결에 대한 ‘승복’ 의사를 표명한 적이 없다.
민주당도 ‘국민’을 앞세워 폭주한다. 대법원 상고심 판결이 나온 지난 1일 야밤에 최상목 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탄핵을 시도하는가 하면, 심우정 검찰총장 탄핵소추안도 발의했다. 윤석열 정부 인사에 대한 31번째 탄핵안 발의다. 조희대 대법원장을 포함한 대법관 10명에 대한 무더기 탄핵을 언급했고, 오는 15일 예정된 서울고법의 파기환송심 첫 공판기일을 대선 뒤로 미루라면서 기일 변경 ‘데드라인’도 설정했다. 윤호중 민주당 선대위 총괄본부장은 “법봉보다 의사봉이 강하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라는 위협 발언까지 내놓았다.
이 후보와 민주당의 국민에 대한 정의는 이중적이고 자의적이다. 한편에서는 분열·대립을 극복하는 통합의 대상이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본인과 자당의 이익을 위해선 언제든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는 명분이다. 민주주의가 다수결을 기본 원칙으로 삼는다 해도, 숫자만 앞세운 전횡까지 용인하지는 않는다. 게다가 이 후보에 대한 지지는 절대적 다수도 아니지 않나. 5일 공개된 리얼미터 여론조사에서 3자 가상대결 시 이 후보의 지지율은 46.5% 안팎으로 반을 넘지 않는다. 차기 대선 집권세력 선호도 조사에서 ‘정권 연장’ 응답도 전주보다 5.2%포인트 오른 42.8%에 달했다.
국민은 18세기 이후 국민국가 탄생과 함께 생겨난 근대적 개념이다. 베네딕트 앤더슨은 저서 ‘상상된 공동체’에서 국민국가와 국민이 모두 상상의 산물이라고 규정했다. 절대주의 국가 또는 왕조국가에서의 신민(臣民) 또는 백성을 대체하는 개념으로 창출됐지만, 민족과 국민 개념 모두 모호하다. 민족은 혈통으로만 분간할 수 없고, 국민은 다층적이기 때문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선거 외에 국민 의사를 직접적으로 알 수 있는 방법도 사실상 없다. 그렇기 때문에 상상의 공동체인 국가를 유지하고 국민을 통합시키기 위해 공동체 이념과 공통의 가치를 담은 헌법이 필요하며, 합의 과정에서의 양보·타협은 필수적이다.
국민을 정의하는 독점적 권한도 개인 한 명에게, 특정 집단에 있지 않다. 그런데도 민주당은 국민을 자의적으로 규정하면서 국민의 일부를 배제하고 있다. 이는 이 후보가 지난 4월 발간한 저서 ‘결국 국민이 합니다’에서 밝힌 “배제의 정치는 오래 못 간다”는 견해와도 배치된다. 이 후보는 국가의 역할로 “국가공동체 내에 합리적 질서를 유지하는 것”이라고도 했다. 이게 진심이라면, 이 후보와 민주당은 균형과 견제를 위해 행정·입법·사법부의 3권 분립을 담고 있는 헌법 정신을 존중해 사법부의 권위와 체계를 지금처럼 흔들어선 안 될 것이다. 지난해 총선에서 국민이 야당에 압도적 의석을 안겨주었지만, 개헌과 대통령 거부권 무력화까지 가능한 200석은 주지 않았던 이유도 되새겨야 한다. 이 후보는 저서에서 밝힌 대로 ‘절망 속에서 희망을 만들어내 비전을 제시하고, 사람들에게 꿈을 실어주는 정치’를 통해 ‘총보다 강한 투표지’로 정정당당하게 국민에게서 평가받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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