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강체육상’ 공로상 장명희

 

82년 쇼트트랙 처음 들여와

프로그램 만들고 선수 육성

동구권 선수 초청 아직 생생

“동계스포츠 기반 튼튼히 해”

“그저 한국 동계스포츠의 기초를 잘 닦은 인물로 기억되고 싶어요.”

오는 9일 서울 중구 세종대로 코리아나호텔에서 열리는 제17회 소강체육대상 시상식에서 특별 공로상을 받는 장명희(93·사진) 아시아빙상연맹 회장의 소감이다. 소강체육대상은 한국체육 근대화에 힘쓴 민관식 선생의 업적을 기리고 체육계 발전에 공헌한 체육인을 매년 격려하기 위해 마련된 상이다. 지난 1일 서울 압구정동 한 식당에서 만난 장 회장은 “이 나이에 무슨 욕심이 있겠냐”면서도 “건강이 허락하는 한 계속 스포츠와 인연을 이어갈 것”이라고 했다.

장 회장은 한국 동계스포츠계의 원로이자, 산증인이면서 아직도 현역이다. 그는 황해도 개성 출신으로 유년시절 평양 대동강에서 스케이트를 탔고, 보통학교(초등학교) 시절 전국소년체전에서 두 차례나 우승을 차지하면서 동계스포츠와 인연을 맺었다. 이후 1960년 심판위원을 시작으로 대한빙상경기연맹과 인연을 맺은 뒤 1993년 연맹 회장에 올랐고, 1994년 국제빙상연맹(ISU) 이사로 당선돼 20년간 재임했다. 또 2004년 9월엔 아시아빙상연맹 회장에 선출된 후 6선에 성공, 현재까지 그 직함을 유지 중이다.

장 회장은 세계최강을 자랑하는 한국 쇼트트랙스피드스케이팅의 개척자이기도 하다. 그는 1982년 국내에 쇼트트랙을 보급하고, 체계적인 프로그램을 도입했으며 선수 육성에 공을 들였다. 1992 알베르빌동계올림픽에서 한국 동계스포츠 사상 첫 금메달을 따낸 김기훈 등이 그의 손을 거쳤다.

장 회장은 동계올림픽과 유독 인연이 깊다. 장 회장은 1976 인스브루크동계올림픽부터 1994 릴레함메르동계올림픽까지 감독과 부단장, 단장을 차례로 역임하는 등 동계올림픽 무대에만 총 11차례나 다녀왔다.

장명희(왼쪽부터) 아시아빙상경기연맹 회장이 지난 1976년 1월 이탈리아에서 열린 세계주니어스피드스케이팅선수권 대회에서 이영하·이남순 선수, 박창섭 코치와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당시 이영하는 한국 빙속 최초로 세계선수권에서 종합 우승을 차지했다.  장명희 회장 제공
장명희(왼쪽부터) 아시아빙상경기연맹 회장이 지난 1976년 1월 이탈리아에서 열린 세계주니어스피드스케이팅선수권 대회에서 이영하·이남순 선수, 박창섭 코치와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당시 이영하는 한국 빙속 최초로 세계선수권에서 종합 우승을 차지했다. 장명희 회장 제공

장 회장은 90세를 훌쩍 넘긴 나이에도 또렷한 기억력을 과시했다. 장 회장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1988 서울올림픽을 3년 앞둔 지난 1985년 당시 공산권 피겨 스케이팅 선수들을 초청한 일이었다.

그는 “당시만 해도 ‘냉전시대’여서 서울올림픽에 소련 등 공산권 국가의 참가 여부가 불투명했다”면서 “그해 일본 도쿄에서 열린 세계피겨선수권대회에 참가 중인 소련과 동독의 피겨 스타들을 한국으로 초청하자는 아이디어를 내가 냈는데 공산권 국가에 긍정적인 이미지를 심어 주겠다는 계산이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정부를 설득해 허락을 받은 그는 당대 최고 피겨 스타였던 카타리나 비트(당시 동독) 등 동구권 선수들을 데려왔다.

장 회장은 “당시 007작전을 방불케 할 정도로 국가적인 역량이 총동원됐다”면서 “서울과 대구 등을 이동하는 일정이었는데, 각종 음식과 휴게소 등 이동 과정 등에서도 힘을 썼다. 당시 소련 체육계 인사가 같이 왔는데, 고국으로 한국의 좋은 이미지에 대한 보고가 잘 이뤄진 것으로 안다. 이후 북한의 방해 책동에도 소련과 동독 등은 끝내 서울올림픽에 참가했다”고 떠올렸다.

장 회장은 건강 관리 비법을 묻자 “꾸준한 운동과 낙천적인 성격, 특히 욕심을 내지 않는 것이 건강의 비결”이라고 귀띔했다.

소강상 시상식이 있는 9일은 공교롭게도 아내의 기일이다. 아내는 3년 전 먼저 세상을 떠났다. 장 회장은 “매일 아침 책상을 만들어 아내 사진 앞에 커피를 놓고 시시콜콜한 대화를 나눈다”면서 “이번 상으로 아내에게 한 가지 더 자랑스러운 일이 생겼다”며 활짝 웃었다.

정세영 기자
정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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