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데스크가 만난 사람 - 지경천 정선군립병원장
Q. 군립병원 ‘의료 질’ 높인 비결은
서울 대형병원 퇴임후 고향에
지역주민과 테니스 치며 소통
종합검진센터 세우고 협진도
좋은 의료진·병원서비스 관건
시니어 의사 지역 정착하도록
숙소 문제 등 정부 지원 필요
의대증원 정책 순서가 잘못돼
의사 숫자만 늘리려 하기보단
어떻게 활용할지 협의후 추진

인터뷰=김충남 사회부장 utopian21@munhwa.com
정리=김린아 기자 linaya@munhwa.com
서울 대학병원 교수로 근무하며 위암 수술의 대가로 명성을 떨친 의사가 정년 퇴임하자 낙향했다. 낙후한 폐광 지역이자 의료 취약지인 고향 강원 정선 지역의 의료를 살리자는 마음 하나뿐이었다. 퇴직하면 더 높은 몸값으로 페이 닥터가 되거나 수도권 지역에서 개업할 수도 있지만 ‘참의사’의 길을 고민했다. ‘의사가 되면 나중에 고향으로 돌아와 의술을 베풀면서 살라’는 어머니의 뜻도 그의 발걸음을 고향으로 돌렸다.
지난달 30일 정선군 사북읍에 위치한 정선군립병원의 지경천(67) 병원장 얘기다. 늘 인자한 미소로 환자를 맞는 지 원장과 1시간 넘게 인터뷰를 하면서 머릿속에 계속 떠도는 단어는 ‘인술(仁術)’이었다. 의술이 뛰어난 의사는 많지만 고매한 인격과 삶과 환자에 대한 철학, 품위를 갖춘 의사는 찾아보기 힘든 세상이다. 지역에 대한 관심과 애정으로 주민들의 존경과 신뢰를 받는 군립병원으로 만들자는 게 그의 목표였다. 실제로 지 원장은 지난 2년여간 지역 주민의 삶 속에 들어가 애환을 함께하고 소통하면서 국내 최초로 기초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정선군립병원을 떠나간 환자들이 다시 찾고 의료 질과 만족도가 높은 최고의 병원으로 탈바꿈시키고 있다. 사랑의 인술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의 지역의료 살리기 해법은 간단하면서도 의대 증원으로 시작된 현 의료개혁의 본질을 담고 있다. 정부와 지자체의 적극적인 재정 지원 의지, 좋은 의사 채용, 친절함과 서비스로 무장한 병원의 소프트웨어 혁신 등이다. 지 원장은 현안에 대해 말을 아끼면서도 증원된 의사를 어떻게 활용할지 합의가 안 된 상태에서 추진한 정부 의료개혁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아울러 의료계와 정부 양 당사자가 조속히 만나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고향에 오게 된 계기는.
“2023년 1월에 2대 원장으로 부임해야 했는데, 대학 정년 퇴임이 2월 말이다 보니 여기서 두 달을 기다려줬다. 그래서 퇴직 후 바로 올 수밖에 없었다. 퇴임하고 쉬면서 여행가는 로망이 있었는데 이루지 못했다. 고향이다 보니 친구도 많고 최승준 정선군수도 초중학교 1년 선배다. 모든 사람이 정년 됐으니 고향에 와서 봉사도 해야 하지 않느냐고 했고, 어머니도 예전에 그런 얘기를 해서 오게 됐다.”
―환자들과 군 모두 좋은 평가를 하는 것 같다.
“그렇게 평가해줘 감사하다. 제 취미가 테니스인데 부임 후 바로 동호회에 가입해 지역 주민들과 많이 어울리고 있다. 또한 친구들이 많으니 지역 분들을 많이 소개해줘 소통을 많이 한다. 자연스럽게 주민이 원하는 군립병원에 대해 의견을 전달받고 피드백을 주면서 병원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의료진 규모와 환자들 특징은.
“처음 근무할 때 내과, 외과, 정형외과, 소아청소년과 4개 과밖에 없었다. 병원이 작년 9월 증축되면서 가정의학과, 산부인과가 보강됐고, 원래 하고자 했던 종합건강검진센터도 개설했다. 그밖에 인공신장실, 응급실을 운영하고 있다. 예전에는 공간도 협소하고 인프라가 열악해 국민건강검진, 채용검진, 특수검진 등의 기본 검진만 시행했다. 의료진은 총 9명이다. 2023년 5월 모교인 중앙대병원과 협력병원을 체결했다. 비뇨기과, 신경과, 피부과 3개과 교수들을 그해 8월부터 파견받았다. 한 달에 1번씩 진료를 온다. 예전에는 전문의가 없어 일반의 수준의 처방만 했는데 협력병원 이후로 대학병원 수준으로 의료 질이 올라갔다.”
―지역의료 모델 케이스인데, 성공 비결은.
“병원 발전에 관심이 많고 고향이니까 애정도 많다. 힘들지만 병원과 군민 건강 증진에 도움이 된다면 있는 동안 뭔가를 제대로 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군수님도 병원에 관심이 많아 이번에 종합검진 시작하면서 제1호로 검진받았다. 그렇게 군민들에게 홍보가 되니까 도움이 많이 된다.”
―그럼 군민들이 건강검진 받으러 서울로 안 가고 군립병원으로 오고 있나.
“시작한 지 얼마 안 돼 홍보 부족으로 몇 분씩 오고 있긴 하다. 앞으로 지역 내 기관들과 종합검진 업무협약(MOU)을 맺어 그 직원들이 올 수 있게 하겠다. 그동안은 서울에 있는 대형병원, 건강검진 전문 기관으로 갔는데, 가면 하루 종일 걸리고 그래서 아예 검진을 안 받는 사람도 많았다. 저희 병원을 이용하면 시간 절약도 되고 훨씬 편하다.”
―병원에 오는 환자들 특징은.
“정선군은 인구 분포상 고령분들이 많아 성인병 환자가 많다. 당뇨, 고혈압, 심장질환, 고지혈증 등을 복합적으로 갖고 있다. 70∼80대 노인분들이라 거동이 불편하고, 병원이 역할을 제대로 못 할 때는 손쉬운 약국, 개인 의원에 많이 갔다. 여기는 의약분업 예외 지역이어서 약국에 가면 얼마든지 약을 살 수 있어 약물 남용이 심한 편이다. 초기에는 그런 식으로 약 달라고 병원에 왔는데, 환자들에게 그러면 안 되는 이유를 설명하면서 많이 바뀌었다. 입원실은 30병상 중 10병상 정도가 평균적으로 차 있다. 주로 폐렴, 조절 안 되는 당뇨 환자, 교통사고 환자, 항암 환자, 말기 암 환자 중 호스피스 쪽으로 와서 있다가 돌아가시는 분들이다.”
―기억에 남는 환자는.
“90세 넘은 할아버지 한 분이 폐렴에 걸려 우리 병원에 입원해서 잘 치료받고 나갔는데, 1년 만에 폐렴으로 또 오셨다. 정성스럽게 치료해줘 다시 회복해서 나가 큰 보람을 느꼈다. 이런 연세가 많은 분들도 저희 병원에서 치료할 수 있다. 심하지 않은 폐렴은 연세 상관없이 치료가 가능하다. 외래 환자 중 지역 특성상 뱀에 물리거나 벌에 쏘인 환자들이 많이 온다.”
―시설, 인프라 중 아직 부족한 부분은.
“종합건강검진을 하게 되면 초음파 환자와 내시경 환자가 많이 온다. 위·대장 내시경이 지금은 1부스밖에 없는데, 더 늘려야 한다. 영상의학과 의사를 채용하기 어려워 지금은 가정의학과 의사가 초음파를 같이 봐주고 있다. 현재는 토요일에 영상의학과 의사가 근무하면서 유방, 갑상선 초음파검사를 하는데 향후에는 평일에도 근무할 수 있는 환경으로 바꿔야 한다. 의사 구인에 어려움이 많다.”
―지역의료 활성화를 위해 어떤 부분이 필요한가.
“먼저 정부와 지자체에서 지역 병원들이 잘 운영되고 있는지 관심을 갖고 재정적 지원 의지를 확실하게 보여줘야 한다. 둘째, 훌륭한 의료진을 채용해야 한다. 의료진을 구하는 게 정말 쉽지 않다. 현재 국립중앙의료원에서 시니어의사 지원센터를 만들었는데, 실질적으로 활용이 안 되고 있다고 본다. 시니어의사를 요청하면 아직 초창기라 그런지 매칭이 잘 안 된다. 이 센터가 활성화돼야 좋은 의료 인력을 쉽고 빠르게 수급할 수 있다. 최근 개인적 소명감으로 은퇴 후 지역 병원이나 보건소 같은 곳에 가는 시니어의사들이 생기면서 변화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 셋째, 병원 직원들의 마인드 변화도 필요하다. 이 병원에 오고 나서 직원들에게 병원 증축으로 좋아지는 하드웨어만큼 소프트웨어도 좋아져야 한다고 했다. 친절함, 프로 정신, 자기 혁신 등 직원 교육을 열심히 했다. 직원들에게 자기개발서 읽기를 시키고 독후감을 공유했다. 그랬더니 개인주의였던 곳이 이젠 직원 간 반목도 없고 소통도 잘한다. 환자들이 서비스 질 향상이 느껴진다고 평가를 하고 있다.”
―지역의료원이나 공공병원들이 코로나19 이후 환자가 안 돌아온다고 한다.
“코로나19 때 공공의료기관이 감염병 중점 병원으로서 큰 역할을 했다. 그런데 환자들은 연속성이 있어 한 병원에 계속 다니게 된다. 코로나19 때 병원을 옮기게 된 경우에 옮긴 곳에 계속 다니게 된다. 그리고 코로나19 시절에 공공의료에서 좋은 의료진이 많이 빠져나간 뒤 돌아오지 않으면서 공백이 많이 생겼다. 악순환이 형성된 것이다. 지역에 있는 사람들이 자기 지역 병원에 가려면 인지도 있는 의사가 오거나 지역 병원 인프라와 서비스가 좋아져야 한다. 정부에서는 시니어의사 제도를 활용해 좋은 의사를 보내주고, 이들이 올 수 있는 환경, 예컨대 숙소 문제나 취미 여건 제공 이런 메리트를 줘야 한다. 직원들의 친절 마인드 교육도 꼭 필요하다.”
―제도적 해법은 없을까.
“제가 대학 다닐 땐 보건복지부에서 장학금을 주는 공중보건 장학생이 의대 6년 졸업을 하면 지방의료원에 가서 5년 정도 근무하는 시스템이 있었다. 그때 혜택받은 동기들이 지방에서 개업하고 자리를 잡기도 했다. 지금 의료개혁한다고 하는데 어느 한쪽이 밀어붙인다고 되는 건 아니다. 공공의대도 뜻은 좋지만 정부와 의료계가 합의점을 찾은 다음에 해야 한다.”
―의대 증원 필요하다고 보는가.
“지방에 내려와서 보니 분명 지방에서 근무할 수 있는 의사들이 많지 않다. 지금 증원해봤자 피부과로 다 갈 거라고 어떤 정치인이 얘길 하더라. 지금 상태로 증원해봤자 지역이나 필수 의료로 갈 거라고 생각 안 한다. 정부와 의료계가 머리를 맞대고 얼마나 증원이 필요한지, 증원된 인원을 어디에 어떻게 활용할 건지 고민해봐야 한다. 지금은 순서가 잘못됐다.”
―정부에서 하고 있는 국립대병원 중심의 지역거점병원 육성이 현실성 있는 해법인가.
“예전엔 지역 국립대 병원과 국립대학교가 굉장한 경쟁력이 있었다. 그땐 지방에도 인구가 많아 지방에서 정착해도 똑같은 이득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대부분 수도권에 인구가 집중돼 있고 앞으로는 부산도 어느 지역은 소멸될 거라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아무리 좋은 걸 지역에 해놔도 공동화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니 서울에 있는 대형병원의 규모를 관리하고, 지방 병원 활성화를 위해 훌륭한 의사와 자원 투입, 수도권 인구의 분산 등을 같이 생각해야 한다.”
―전공의, 의대생 문제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일전에 뉴스를 보니 모 의과대학 학장이 전공의들과 대화를 해봤는데, 공감대 형성이 잘 안 된다고 하더라. 일단 지금 전공의들은 증원 백지화, 본인들 의견 반영을 원하는 걸로 안다. 원점에서 토론하고 합의점을 찾아야지 밀어붙여서는 안 될 거다. 현재 전공의가 없어지고 학생 강의실이 비어서 교수들이 교수의 본연 임무를 못하고 있다. 그런 게 결국 의료 붕괴로 이어질 것은 뻔한 사실이다. 더 붕괴되기 전에 빨리 해법을 찾도록 노력해야 한다. 새 정부가 원점에서 다시 논의해야 한다. 정책적인 문제는 접점에 있는 사람들이 모여서 해법을 찾아야 한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 공공의료는 어떻게 해야 하나.
“공공병원들은 모두 현재 적자 상태다. 성남의료원같이 큰 곳도 적자지만 여기처럼 작은 병원도 군에서 연 40억 원 정도를 보전해주고 있다. 경영 성과를 보고 자구책을 강구하며 재정자립도를 높여가도록 해줘야 한다. 저희 병원은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직원들에게 고객서비스(CS) 교육도 시켰지만 해외 연수라는 당근도 줬다. 미국에 거주하는 친구의 도움으로 1년에 한 번 연휴를 이용, 직원 3명을 미국에 8박 9일간 무료 연수시키는 프로그램을 운영해 직원들의 높은 호응을 끌어냈다.”
―의사 후배들에게 해주실 말씀은.
“현재 의정 사태는 결국에는 학생, 전공의, 의료단체, 정부에서 머리를 맞대고 협의하며 해결할 문제지 나 같은 사람들이 얘기해서 될 문제가 아니다. 나보다 훨씬 훌륭한 분들이 의대생들 돌아오라, 어떻게 하자고 얘기해도 해결이 안 됐다. 누가 나서서 말한다고 되는 게 아니고, 시스템으로 해결해야 한다.”
△정선읍 출생 △정선중 졸업 △서울 중앙대부속고 졸업 △중앙대 의과대학 졸업 △중앙대 의과대학원 의학박사 △중앙대 용산병원 외과과장 △중앙대병원 외과과장 △중앙대 의과대학 외과교수 △대한위암학회 이사 △정선군립병원장
김충남 기자, 김린아 기자주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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