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파우저 언어학자, 前 서울대 교수

 

키오스크서 번거로운 음식 주문

배터리 잔량 부족할 때의 초조함

 

21세기의 급격한 변화에 불안

20세기로 돌아가자는 주장 많아

 

옛날만 그리워하는 건 도움 안 돼

현실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해야

좋은 글을 쓰려면 좋은 글을 많이 읽어야 한다는 건 이른바 글쟁이들 사이의 통설이다. 영문 텍스트 가운데, 70대 미국인 칼럼니스트 페기 누넌의 글을 좋아해서 자주 읽는다. 이미 30대 때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의 연설문 작성을 담당했던 그는 2000년 이후 ‘월 스트리트 저널’에 정기 칼럼을 썼고, 10여 권의 책도 펴냈다. 그의 글은 언제나 간결하면서도 본질을 잘 포착하는 깊이가 있다.

올해 초 새로 나온 책을 홍보하는 인터뷰에서 누넌은 매우 인상적인 이야기를 했다. 2024년 11월의 미국 대선이 주제였다. 그는 선거 결과에 대해 21세기를 싫어하는 사람이 많아서 그렇게 된 것이라며, 21세기의 급격한 변화에 불안을 느끼는 사람들은 20세기를 가상의 황금기로 여기며, 그런 그들이 20세기로 돌아가자고 주장하는 도널드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선택한 게 아닌가 싶다고 했다.

1961년 12월생인 나는 초반 38년 동안은 20세기에 살았고, 이후로 올해까지 약 25년을 21세기에 살고 있다. 이런 나를 ‘20세기 사람’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지금까지의 인생에서 차지하는 비율을 보면 20세기에 60%를, 21세기에 40% 남짓을 살았다. 학창 시절 대부분과 젊은 시절은 20세기에 보냈지만, 인생의 중요한 경력을 포함해 꾸준히 하는 집필 활동은 대개 21세기에 이뤄졌다. 엄밀히 보자면 21세기의 실질적인 시작은 디지털 혁명, 냉전 종식, 글로벌화 등이 이뤄진 1990년 이후부터라고 할 수도 있으니, 나는 ‘21세기 사람’에 더 가깝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그런데 누넌의 말을 듣고 있자니 나 역시 21세기를 싫어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이 정치적 성향에 영향을 미치고 있지는 않지만, 일상에서 느끼는 묘한 긴장과 답답함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이런 감정의 핵심은 일상의 많은 것이 옛날보다 확실히 복잡해졌고, 그래서 귀찮아졌다는 것이다.

오늘날 미국의 많은 미술관은 흔히 ‘방문 계획’(plan your visit)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관람 시간’(hours)이라고 하면 간단할 말을 이렇게 복잡하게 쓴다. 예전에는 보고 싶은 전시가 있으면 전시장 관람 시간에 편하게 가서 매표소에서 표를 사서 들어가면 되었다. 오늘날에는 신경을 써서 ‘계획’을 해야 한다. 어떤 때는 관람 시간대를 미리 선택해야 하고 필요하면 예약도 해야 한다. 안내원에게 물어보면 간단할 일을 곳곳의 안내문을 읽고 스스로 파악해야 할 경우도 많다. 전시장 방문은 언제나 즐거웠는데 이제는 여러모로 계획이 필요한 ‘일’이 돼 버려 살짝 부담스럽기도 하다.

사회 곳곳에서 흔히 마주하는 디지털화는 일 처리를 쉽게 하긴커녕 더 복잡하게 만드는 것 같다. 먹고 싶은 걸 주문하려면 원하는 걸 얻기까지 매장의 키오스크에서 단계마다 질문이 쏟아져 나온다. 하나하나 선택하면서 다음으로 넘어가는 일은 답답하고 피곤하다. 예전에는 자리에 앉으면 종업원이 와서 주문을 받아 갔는데, 이제는 음식 주문도 ‘일’이 되어 버렸다. 휴대전화 앱이나 QR코드로 주문하는 것은 더더욱 번거로운 일로 여겨지고, 배터리 잔량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는 답답함을 넘어 초조하기까지 하다. 이런 부담은 내 속에 남아 있는 ‘20세기 사람’의 성향 탓인 듯하다.

누넌의 인터뷰를 접한 뒤 한동안 나도 21세기를 싫어하고 있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싫어하는 것들의 목록이 계속해서 떠올랐다. 그러다 문득, 내가 이미 살고 있는 21세기를 싫어하면 어쩌나 하는 데 생각이 미쳤다. 21세기가 좋아서가 아니었다. 이미 21세기에 살고 있는데 옛날이 그립다는 생각을 해봐야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오늘의 현실을 인정하고 미래의 방향에 맞춰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옛날을 추억하며 그리운 그때 그 시절을 떠올리는 것까지야 나쁠 게 없지만, 그 생각만 붙들고 지내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시간은 계속 앞으로 흘러간다. 뒤를 돌아보는 것은 의미도 없고 현실을 받아들이는 데 장애가 될 뿐이다. 현실을 지금 있는 그대로 파악하고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적응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미술관이나 박물관의 ‘방문 계획’도, 키오스크도, QR코드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내가 답답하고 복잡하게 여긴다고 해서 사라지거나 없어질 게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짜증 나고 복잡한 심정도 조금씩 가라앉는다.

누넌의 말을 듣고 난 뒤 며칠을 깊이 생각하며 내가 내린 결론 앞에서 문득, 내가 21세기에 항복한 건 아닌지 생각했다. 그러나 21세기의 변화를 인정하고 불편한 마음을 내려놓고 받아들이는 것은 항복이 아니라, 현재를 받아들이는 것임을 인정해야 했다. 나이 들수록 남은 미래는 짧아진다. 그래서 살던 대로 살고 싶다는 생각, 미래에 대한 생각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가 종종 있다. 그렇지만 다음 세대를 위해서라도 과거에 매달리기보다 현실에 대한 적극적인 적응, 미래에 관한 생각을 해야 하는 것이 나이 든 내가 해야 할 일이 아닐까. 그런 점에서 정치는 미래에 관한 논의라고 할 때, 21세기가 싫다는 이유로 20세기로 돌아가자는 데 찬성하는 행위는 다음 세대를 위해 지금 우리 세대가 해서는 안 되는 결정이 아닐까. 생각은 이렇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로버트 파우저 언어학자, 前 서울대 교수
로버트 파우저 언어학자, 前 서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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