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훈 논설위원

“나는 5번의 죽을 고비와 7번에 걸친 6년의 투옥, 55차례 가택연금을 겪었다.” 김대중(DJ) 전 대통령이 1995년 정계 복귀 후 선거 유세나 행사 때 종종 했던 말이다. 정치 역경을 압축한 팩트로, 인동초(忍冬草)라 불린 배경이기도 하다. 생사의 경계들에서 “신앙이 굳어졌다”는 고백(‘나의 길 나의 사상’)도 했다. 첫 고비는 6·25 때다. “인민군에게 붙잡혀 140명이 학살당하고 80명이 탈옥할 때 나왔다”고 했다. 1971년 총선 때 차량으로 유세 지원에 나섰다가 트럭과 충돌한 사고(고의 여부 불명)가 두 번째. 보좌관을 잃었고, 본인은 평생 지팡이를 짚게 됐다.
1973년 중앙정보부가 벌인 일본 도쿄 호텔 납치 사건 때 세 번째, 네 번째 고비가 왔다. 호텔 욕조에서 살해될 뻔한 데 이어, 공작선에 실려 온몸이 묶인 채 바다에 수장당할 위기에서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도움으로 살아났다. “하반신은 상어한테 물려도 상반신이라도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술회하기도 했다. 다섯 번째가 1980년 신군부의 내란음모 조작 사건으로 사형 선고를 받은 것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최근 DJ의 수난사를 소환했다. 지난 6일 “조봉암도 사법 살인이 됐고, 김대중 전 대통령도 내란음모죄로 사형 선고를 받은 일이 있다”고 했다. 대법원의 유죄 취지 파기환송 선고를 ‘정적 제거’로 규정한 것이다. 그러면서, “(칼 맞고) 1㎜ 차이로 살았는데, (이번에) 법률적으로 죽이려면 죽일 수도 있다”고 했다. 이 후보는 이날 ‘죽다’를 21차례, ‘살인’과 ‘피살’을 각 3차례, ‘살해’를 1차례 언급했다고 한다.
이 후보는 지난해 1월 부산 방문 중 범인이 개조한 칼에 목 부위가 찔리는 테러를 당했다. 얼마 후 김어준 씨의 유튜브에 출연해 상처 자국(자상 1.4㎝)을 보여주면서 “(찔린 곳이 동맥과) 1㎜ 차이였다. 의사들도 천운이라고 하더라”고 했다. 지지자들 사이에 ‘1㎜ 천운’이 퍼졌다. 최근 펴낸 책에서도 ‘하늘과 국민이 살려주셨다. 아직 해야 할 일이 많다고 여기신 것 같다’고 썼다. 생명이 달린 일에 경중을 비교하거나 정치적 의미를 따질 건 아니다. 다만, DJ는 후일 “용서”를 말했고, 이 후보의 1㎜ 천운은 사법 살인 주장과 연결돼 전방위 ‘사법부 보복’의 시원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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