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조 시장경제와민주주의연구소 이사장
권력은 무엇이며 어떻게 행사되는가? 1950년대부터 ‘지역사회 권력 논쟁’(community power debate)으로 불리는 오랜 실증적 연구와 이론적 토론을 벌인 미국 정치학계에서는 권력에 세 차원이 있다는 데 대체적인 공감대를 형성했다. 첫 번째 차원은 ‘결정’이다. 가만히 뒀으면 하지 않았을 것을 하게 만드는 게 권력이라는 것이다. 두 번째는 ‘비결정’이다. 내버려 뒀으면 했을 것을 하지 않게 만드는 것도 권력이라는 것이다. 세 번째는 권력자의 ‘예상되는 반응’에 따라 행동하게 하는 힘이다. 굳이 하라 말라 개입하지 않아도 ‘알아서 기게 하는 능력’이기 때문에 가장 고차원의 힘이라고 할 수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개인 팬덤과 당(黨)을 통해 1, 2차원의 권력을 누리게 된 데 이어 대선 승리가 멀지 않아 보이게 되면서 이제는 가장 높은 차원인 알아서 기게 하는 힘까지 손에 넣은 듯하다. 단적인 예가, 법원의 이 후보 관련 재판의 줄 연기이다. 서울고법 형사7부는 오는 15일로 예정됐던 이 후보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의 파기환송심 첫 재판을 6월 18일로 연기했다. 오는 13, 27일로 예정됐던 서울중앙지법의 대장동 재판도 6월 24일로 미뤄졌다. 보이지 않는 압력을 의식하기도 했겠지만, 새 권력 앞에 알아서 기는 듯한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이 후보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은 1심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판결이 나왔지만, 2심은 전부 무죄를 선고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이를 뒤집어 지난 1일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하자 서울고법 재판부는 그 이튿날 사건을 배당받고 바로 첫 공판을 15일로 지정했다.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한 만큼 사실상 유죄는 확정됐고, 형량 결정만 남은 상태였다. 하지만 이 후보 측이 공판기일 변경 신청서를 내자 재판부는 1시간 만에 첫 재판을 대선 이후로 연기한 것이다. 재판부는 “균등한 선거운동의 기회를 보장하고, 재판의 공정성 논란을 없애기 위해”라고 연기 이유를 밝혔지만, 이것뿐이라면 애초 공판 기일을 굳이 서둘러 발표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유죄가 사실상 확정된 후보의 권익을 옹호하기 위해 국민의 선택권을 침해한 행위다.
이런 논리라면 위증교사 사건 2심 등 다른 사건들의 재판도 대선 이후로 연기될 공산이 크다. 이렇게 6·3 대선 이후로 재판이 연기되면 이 후보의 사법 리스크는 말끔히 사라진다. 민주당이 국회 법사위에서 ‘대통령 당선 시 재판 정지’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단독 처리했기 때문이다. 개정안대로면 피고인이 대통령에 당선된 때 법원은 임기 종료 시까지 재판을 정지해야 한다. 민주당은 이 개정안에 무죄를 선고할 것이라면 재판을 계속해도 된다는 조항까지 넣었다고 한다. 재판을 여는 순간 무죄가 확정되니 가관이다. 이 법안은 대통령 권한대행의 재의권 요구를 피하기 위해 이 후보가 당선되는 순간 국회 본회의를 통과할 것이다.
이 후보는 경기지사 시절이던 2018년 한 기자간담회에서 “무협지 화법으로 말하자면 나는 ‘만독불침(萬毒不侵)’의 경지다”라고 했다. 만 가지 독에도 침범당하지 않는 불사신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자부다. 사법부 일각의 알아서 기기가 그의 만독불침을 완성시켰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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