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혜진 국제부 차장
프랑스가 1789년 혁명으로 하루아침에 자유, 평등, 박애로 상징되는 근대 민주주의 국가로 탈바꿈한 것은 아니었다. 가치가 제도로 정착되기까지 상당한 혼란을 겪었다. 봉건제 타도에 성공한 개혁세력들은 1791년 삼권분립에 기반한 헌법을 제정해 왕정을 입헌군주제로 전환했다. 그리고 1년 후에야 시민(국민)이 주인인 나라, 공화국이 탄생했다. 민의를 상징하는 국민공회(국회)가 세워지고 국민공회 의원(국회의원)을 뽑는 선거가 진행됐다. 선거 결과, 온건 개혁을 내세운 지롱드파가 의회 다수를 차지해 국정을 운영했다. 하지만 대외 전쟁과 경제 악화 등으로 지롱드파에 대한 시민 반발이 커지면서 프랑스에는 다시 한 번 정치 위기가 닥친다. 소시민과 민중을 토대로 급진 개혁을 주장해온 소수세력인 자코뱅파가 이들의 분노를 앞세워 지롱드파 탄압에 나선 것이다.
그 선봉에 인권변호사 출신 막시밀리앙 로베스피에르가 있었다. 국민공회를 장악한 그는 인민주권론을 내걸고 의회를 장악한 자신의 권력을 정당화했다. 그는 모든 통치 권력 가운데 국민공회만이 국민의 권리를 완전히 행사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공안위원회와 혁명재판소를 만들어 행정과 사법 권력까지 행사했다. 그러고는 반대세력을 대거 처형하며 공포정치를 휘둘렀다. 소시민을 위한 국가를 내세웠지만, 실상은 그에게 반대하는 세력을 척결하기 위함이었다. 1년 남짓한 그의 공포정치 기간에만 1만7000명이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다. 폭주기관차처럼 내달리던 로베스피에르의 독재가 끝난 건 민중의 봉기로 그 역시 단두대로 보내진 후였다. 이후 프랑스에서는 의회 독재가 절대왕정의 독재만큼이나 위험하다는 인식이 생겼고, 이후 정치 체제 변화 속에서도 삼권분립은 가장 중요한 국가 원칙으로 다뤄졌다.
프랑스만큼이나 정치적 부침을 겪은 우리나라에서도 삼권분립은 훼손할 수 없는 국가의 근간으로 여겨졌다. 10년 전 박근혜 정부 때만 해도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은 국회 연설 때마다 행정권의 과도한 개입을 비판하면서 삼권분립을 강조했다. 하지만 두 번의 총선을 거치면서 입법권력을 손에 쥔 민주당은 행정권을 넘어 사법권에까지 손을 뻗치고 있다. 민주당은 최근 이재명 당 대선 후보에 대한 상고심 판결을 ‘사법 쿠데타’로 정의 내리며 대법원장 등에 대한 탄핵에 나섰고 민주당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 관계자는 삼권분립이 막을 내려야 한다는 발언까지 했다. 본인들이 원하지 않는 판결을 내렸다고 해서 법관을 무작정 탄핵할 뿐 아니라 삼권분립의 틀까지 훼손하려는 행보는 프랑스혁명의 공포정치를 떠올리게 한다. 자신만이 ‘정의’라고 외치며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른 로베스피에르는 결국 국민의 심판을 받았다.
대한민국 역사를 되돌이켜봐도 다수당의 횡포는 항상 주권자인 국민의 심판을 받았다. 1996년 신한국당의 노동관계법 날치기 통과는 1997년 대선에서 김대중 당시 새정치국민회의 후보가 승리하는 계기가 됐고, 2004년 한나라당과 새천년민주당의 노무현 당시 대통령 탄핵안 발의는 같은 해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의 압승을 가져왔다. 2025년 민주당은 예외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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