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고 - 이승돈 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장

지난 2023년 5월 18일, 프로야구가 열리던 잠실야구장에 불청객이 나타났다. 폭설이 내리듯 갑자기 나타난 길이 5㎝의 동양하루살이 떼는 놀라움과 함께 혐오감을 줬다. 전혀 예기치 못한 곤충 떼의 출현은 이제 흔한 일이 됐다. 2017년 서울의 하늘소, 2019년 충북의 매미나방, 2020년 인천의 깔따구 유충, 2022년 서울의 러브버그까지, 해충의 습격이 우리에게 던져 주는 경고는 의미심장하다.

기후변화를 넘어 기후위기 시대 생물환경 변화는 인류에게 위기감을 고조시키고 있다. 농업 분야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기온이 올라가고 국제 농산물 교역이 증가하면서 유입 병해충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다. 2000년대 이후 외국으로부터 갈색날개매미충, 꽃매미, 미국선녀벌레 등 많은 종류의 새로운 병해충이 국내에 유입됐다. 과수의 에이즈라 불리는 화상병은 2015년 국내에 처음 발생한 이후 사과·배 산업에 위협을 주고 있다.

국내에 있어 왔던 병해충도 예고 없이 갑자기 대거 발생해 농업인들에게 시름을 주기는 마찬가지다. 2014년 전남 해안에 발생해 농경지와 도로를 뒤덮은 수억 마리의 풀무치 떼는 공포 그 자체였다. 2021년 전북에 대거 발생한 도열병, 2023년 과수에 큰 피해를 준 탄저병, 2024년 발생한 벼멸구 등 병해충 문제는 현재진행형이고 미래 농업의 큰 장애요인이 될 것이다.

2023년 유엔식량농업기구(FAO) 보고서에 따르면 병해충으로 인한 전 세계적 농작물 손실은 20∼40%에 이른다. 농작물 병해충 문제는 어느 한 국가만의 문제가 아니라 글로벌 문제로 확대되고 있다. 식물 병해충 연구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으며 이에 대한 고민이 필요할 때다.

먼저 식물 병해충 문제 해결을 위한 통합 연구와 네트워크 강화가 절실하다. 병원의 ‘다학제 진료 시스템’처럼 농작물 병해충 문제 해결을 위해 관련 분야 전문가들이 네트워크를 강화하고 힘을 모아야 한다.

다음으로 병해충 발생 예측을 위한 빅데이터 기반의 정보기술(IT)과 인공지능(AI) 기술 접목에 선제적인 투자가 이루어져야 한다. 지금까지 추진해 온 기상 요인과 재배 환경을 분석해 병해충을 예측하는 프로그램 개발에 더해 이제는 AI와 접목해 정확도를 높이는 데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마지막으로 병해충과의 공존을 생각해야 한다. 병해충도 생태계를 구성하는 한 축이기 때문에 ‘박멸’이라는 개념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이제는 친환경 작물보호제나 마이크로바이옴 등 환경과 조화를 이루는 병해충 문제 해결 방안 마련에 고민해야 할 때다.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영화 ‘인터스텔라’에는 식량 문제로 인류가 어려움을 겪는 미래 상황과 이 상황이 옥수수 병으로 인한 것으로 추정되는 대사가 나온다. 어쩌면 식물 병해충은 인류의 미래를 쥐고 있을지도 모른다. 영화 마지막 부분의 ‘우린 답을 찾을 거야. 항상 그래왔듯이’라는 대사를 떠올리며 기후위기 시대 식물 병해충 연구의 사명을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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