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규회의 뒤집어보는 상식

한국 복싱이 29년 10개월 만에 아시아 지역 통합 챔피언 결정전에서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윤덕노는 지난 4월 26일 서울 관악구민종합체육센터에서 열린 ‘세계복싱기구(WBO) 아시아태평양 및 동태평양복싱연맹(OPBF) 슈퍼미들급 통합 타이틀 매치’에서 OPBF 챔피언 노나카 유키를 상대로 3라운드 3분 9초 KO승을 거뒀다.
복싱은 1960∼70년대에 최고의 인기 스포츠였다. 세계 챔피언은 개인의 영광을 넘어 국가적 경사였다. 세계 챔피언이 탄생하면 김포공항에서 서울시청 앞까지 카퍼레이드를 벌이며 뜨거운 환영을 받았다. 우리나라는 한때 연간 5∼6개씩의 챔피언 벨트를 보유할 정도로 내로라하는 철권(鐵拳)들이 많았다.
한국 프로복싱사는 19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1966년 6월 25일 밤 9시 서울 장충체육관. 당시 장충체육관은 국내 스포츠 경기의 요람이었다. 이곳에서 한국 권투 사상 최초의 세계 프로복싱 챔피언이 탄생했다. 주인공은 바로 김기수(1938∼1997)다. 도전자 김기수는 혈투를 벌인 끝에 이탈리아의 복싱 영웅인 챔피언 니노 벤베누티를 15라운드 2-1 판정승으로 꺾고 세계복싱협회(WBA) 주니어 미들급 챔피언에 등극했다. 이후 김기수는 1969년 9월 프로전적 45승 2무 2패의 화려한 대기록을 남기고 링을 떠났다.
김기수는 한국인 최초의 프로복싱 챔피언 도전자일까? “아니다”. 그보다 1년 앞서 챔피언에 도전한 사람이 있었다. 바로 1960년대 ‘돌주먹’으로 이름을 날렸던 서강일(사진)이다. 서강일은 1965년 12월 한국인 최초로 필리핀 마닐라에서 벌어진 WBA 주니어 라이트급 세계타이틀전에 도전했다. 그러나 홈 링의 텃세를 넘지 못하고 안타깝게 판정패를 당했다. 필리핀 매스컴들은 서 선수의 승리가 아니면 무승부의 경기라며 대서특필했다. 이 경기는 한국 프로복싱 역사상 최초의 세계타이틀 매치로 기록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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