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준 경희대 석좌교수, 前 駐유엔 대사

지난주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은 러시아의 제2차 세계대전 종전 기념행사에 참석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회담했다. 장기 집권하고 있는 두 지도자로서는 시 주석이 러시아를 방문한 것만 해도 11번째다. 그러나 이번 만남은 재집권한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새로운 대외정책들을 쏟아내는 가운데, 그에 대응하는 두 강대국의 결속 과시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우리로서는 북한의 러시아 파병,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등 전환기에 처한 한반도에 주는 의미를 짚어 볼 필요가 있다.

먼저 한미 관계를 보면, 지난 몇 년간 한국과 미국은 동맹을 중심으로 한 안보 협력 관계를 강화해 왔다. 이는 당연히 중국·러시아·북한의 반발을 불러 왔고, 이번 중·러 공동성명도 한·미가 강조해 온 확장억제 정책이 ‘군비 경쟁과 긴장을 고조시킨다’고 비판한다. 즉, 북한의 핵 개발에 대응해 미국이 한국·일본에 핵우산을 강화하는 데 반대함을 분명히 한 것이다. 이러한 태도는 미국이 중·러와 협상을 진행하는 상황에서 한미동맹 관계에 어떤 영향을 줄지 주시하게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안보 협력을 포함한 모든 문제를 협상의 지렛대로 사용할 수 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또한, 중·러 공동성명에는 북핵 문제에 대한 시사점도 발견할 수 있다. ‘관련국들이 북한에 대한 일방적 강압 조치를 포기할 것’을 요구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와 중국은 핵확산금지조약(NPT)에 따라 공식적으로 핵무기를 보유한 전 세계 5개국 중 두 국가다. 따라서 중·러 양국은 새로운 핵보유국 등장으로 자신들의 핵 독점체제가 도전받는 것을 막아야 하는 공동의 이해관계가 있다. 그래서 그동안 북한 비핵화의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북한의 붕괴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강요할 수는 없다는 태도를 취해 왔다.

하지만 러시아는, 북한이 지난해 파병을 통해 ‘어려울 때 친구’로 도움을 준 이후 비핵화가 뒷전으로 밀린 것 같다. 특히, 북한에 대한 보상으로 군사·경제적 지원 외에 뚜렷한 방법이 없는 상황에서 대북 제재의 완화가 필요해졌다. 중국도 북·러 관계 강화가 중국의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 감소를 초래할 가능성을 우려하는 것 같다. 이 때문에 양국 공동성명은 ‘NPT의 완전성’을 강조하면서도, 대북 강압 조치의 포기를 촉구하는 모순성을 보여 준다. 대북 제재는 북한을 괴롭히려는 목적이 아니라, 핵무기를 포기하고 경제 발전을 택하도록 하는 효과를 기대하는 것이다. 따라서 제재가 충분히 강력해야 국제적 비확산 체제를 유지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트럼프는 미국 대통령 최초로 북한 지도자와 회담했으므로, 집권 2기에도 대북 관계에 전향적일 것이란 예측이 많다. 그러나 ‘최초’의 의미는 반복될 수 없는 만큼 단순한 만남으로는 성과가 되기 어렵다. 비핵화에 진전이 있어야 한다. 2019년 하노이 정상회담의 실패가 좋은 교훈이다. 실제로 북한 정권이 핵무장을 통해 권력을 굳히려는 것은 잘못된 인식에 기초하고 있다. 과거 수많은 독재정권이 무너진 것은 핵무기가 없어서가 아니라, 국민의 불만이 커져 권력의 정당성이 취약해진 것이 대개의 원인이다. 북한은 이를 깨닫고, 정책 전환의 계기가 필요하면 대화가 쉬운 트럼프 대통령의 재집권 기회를 활용해야 한다.

오준 경희대 석좌교수,  前 駐유엔 대사
오준 경희대 석좌교수, 前 駐유엔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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