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해동 경제부 부장

올해 4월 4일 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되면서 세계 10위권 경제대국 한국의 국정은 사실상 공백 상태다. 18대 박근혜 전 대통령 파면 이후 20대 윤 전 대통령 파면까지, 우리나라에서는 10년도 안 되는 기간에 두 명의 대통령이 파면됐다. 대통령 중심제 국가, 특히 우리나라 같은 제왕적 대통령 중심제 국가에서 대통령의 부재(不在)는 곧 국정 마비, 사실상 국정 중단을 의미한다. 대통령 권한대행이 있다고는 하지만 유명무실하고, 그나마도 최근에는 하도 자주 바뀌어 정책 집행력이 더욱 떨어진 상태다.

흔히 선거 전문가들은 “대통령 선거에서 영향력은 (선거) 구도, 인물, 공약(정책) 순서”라고 말한다. 국민의 표를 얻기 위해서는 일단은 ‘민주냐, 반(反)민주냐’ 같은 구도가 가장 중요하고, 그다음으로 인물의 매력이나 능력, 참신함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공약은 ‘가장 영양가 없는 것’으로 치부되기 일쑤다. 눈앞의 당락(當落)이 가장 중요한 후보자나 대선 캠프에서 ‘공약은 어렵고 복잡해 득표에 별다른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연금 개혁 같은 공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연금 구조가 중·장기적으로 재정(財政)에 미칠 영향과 복잡하게 얽힌 세대 간의 갈등 관계 등을 파악하고, 어느 방안이 더 좋은지에 대해 스스로 판단을 내려야 하는데 전문가에게도 쉽지 않은 일인 게 사실이다. 연금 개혁 외에도 저출산·고령화, 감세(減稅) 또는 증세(增稅), 잠재성장률(물가 상승을 유발하지 않는 최대 성장률), 규제 완화 등 국가 경제에는 아주 큰 영향을 미치지만, 듣기만 해도 골치 아픈 문제가 한둘이 아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공약 중에서도 중요하지만 복잡한 것은 우선순위가 뒤로 밀리고, ‘어느 지역에 공항이나 다리, 기차역을 새로 만들어준다’거나 ‘도로나 철도를 새로 깔아준다’ 같은 포퓰리즘 공약이 선거판을 횡행하곤 한다. 이번 대선 과정에서 포퓰리즘성 지역 개발 공약만큼이나 보고 싶지 않은 공약이 또 있다. 예컨대 ‘747(경제 성장률 7%, 1인당 국민소득 4만 달러, 세계 7위 경제대국)’ 같은 ‘숫자 공약’이 대표적이다. 우리나라도 이제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인데, 개발연대(開發年代)에나 통하던 숫자 공약을 아직도 내놓는 것은 시대착오적일 뿐만 아니라 실현 가능성도 희박하다. 잠재성장률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공약은 환영할 만하지만, ‘잠재성장률을 인위적으로 몇 %포인트 높이겠다’는 식의 공약은 차라리 하지 않는 것이 나을 것이다.

현실적으로 대선에 미치는 영향력은 구도, 인물, 공약 순서라고 하지만 정권이 성공했느냐, 실패했느냐 여부를 따질 때는 공약 이행 여부가 가장 중요한 척도(尺度)가 되는 경우가 많다. 선거에 이기기 위해서는 구도, 인물의 영향력이 크더라도, 일단 정권이 출범한 뒤에는 공약 이행의 중요성이 부쩍 커진다는 뜻이다. 공약은 국민 생활에도 다른 어떤 변수보다 큰 영향을 미친다. 투표할 때 공약을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내 일’이라고 생각하고 살펴보는 것이 개인뿐만 아니라 국가 전체를 위해서도 바람직하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떠올려보는 것은 어떨까.

조해동 경제부 부장
조해동 경제부 부장
조해동 기자
조해동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