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법의학자 유성호의 유언노트’
매주 죽음 직시하며 통찰 얻어
삶 설계 도구로 유언 작성 권해
■ 기록노동자 희정 ‘죽은 다음’
장례지도사로서 인간성 탐구
산업화된 장례의 현주소 증언

죽음은 미지의 영역이다. 나 자신의 죽음이 그렇고 타인의 죽음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경험하기 전까지 다가오는 죽음과 스쳐 지나가는 죽음에서 비롯되는 감각을 알지 못하고, 이 때문에 궁금해하기도 한다. 최근 법의학자와 기록노동자가 인간의 영원한 탐구 대상인 ‘죽음’을 주제로 한 책을 잇따라 출간해 관심을 끈다. 끝내 알 수는 없지만, 이를 준비하는 마음과 태도는 한편으로는 그간의 호기심을 채워주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위로가 되기도 한다.
매주 시신을 마주하는 법의학자 유성호는 죽음을 직시하는 방법으로 ‘유언 쓰기’를 제안한다. ‘법의학자 유성호의 유언 노트’(21세기북스·왼쪽 사진)는 이를 실천하는 안내서다. 그는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지나치게 성실한 나머지, 삶 이후의 준비는 등한시한다고 말한다. 매년 스스로 유언을 작성한다는 그는, 그 과정이 “삶을 향한 다짐”이라고 말한다. 유언을 쓰며 차분해지고, 다시 읽으며 더 열심히 살고자 다짐하게 된다는 것이다.
책은 법의학자로서 수많은 죽음을 경험한 저자의 통찰을 담았다. 죽음을 의식할 때 삶의 태도가 달라진다는 그의 주장은, 죽음 또한 “배우고 준비하는 일련의 과정”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한다. 한국은 유독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삶에 집착하는 사회다. 한국의 말기 암 환자들이 죽기 직전까지 연명치료를 받는 현실에 대해 저자는 현세주의적 생사관과 전통적 효 문화의 영향으로 분석한다. 그는 “삶의 마지막까지 존엄성과 삶의 질을 지켜주는 체계가 웰다잉 사회로 가는 길”이라 강조한다. 나만의 유언 노트를 그 출발점으로 삼을 수 있다. 법적 효력은 없지만 자신의 삶과 죽음, 남기고 싶은 말, 추억과 감정을 자유롭게 기록하는 엔딩 노트는 ‘삶을 설계하는 도구’가 된다. 책에는 그의 자필 유서도 수록되어 있으며, 함께 제공되는 ‘30일 유언 노트’는 독자가 스스로의 유언을 써내려갈 수 있도록 돕는다.
기록노동자 희정의 ‘죽은 다음’(한겨레출판·오른쪽)은 ‘죽음을 준비한 이후’의 풍경을 다룬다. 장례지도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직접 염습실에서 시신을 마주한 저자는, 장례의 산업화 속에서 사라져 가는 애도와 인간성을 탐구한다. 임종에서 빈소까지 상품화된 장례는 “문화, 경제, 상징 자본이 드러나는 채점표”라며, 장례가 생전의 유대와 가치관을 드러내는 장이라 말한다.
미처 생각지 못했지만 삶의 종점인 장례식장만큼 삶의 불평등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곳도 드물다. 빈소의 크기, 화환의 수, 조문객의 면면은 고인의 생전 지위와 자산을 반영하고, 외롭고 비참한 죽음은 납골당 가장 낮은 층으로 안내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가 인터뷰한 의전관리사, 시신 복원사, 화장기사, 수의 제작자 등 각 분야 장례업 노동자들의 이야기는 장례의 현장에 스며든 인간의 온기를 느끼게 한다. 장례지도사는 시신의 입술에 립밤을 바르고 귀에 좋은 말을 속삭이며, 시신 복원사는 경직된 팔다리를 정성껏 주무른다. 이들이 지키기 위해 애쓰는 존엄한 죽음은 실은 존엄한 생이라는 사실을, 죽음이 삶의 연장선에 있음을 우리는 그 끝에서 확인한다.
신재우 기자주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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