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주영이 만난 ‘세상의 식탁’ - 나라마다 다른 ‘케이크 풍경’

5월, 한국의 제과점 앞은 유난히 북적인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날…. ‘가정의 달’에는 도대체 케이크를 몇 번이나 사게 되는 걸까? 그 덕분에 제과 업계는 이 시기와 크리스마스를 연중 최대 성수기로 본다. 실제로 프랜차이즈 제과점의 5월과 12월 케이크 매출은 연간 전체 판매의 약 40%를 차지하며, 이 시기 판매량은 평소보다 20% 이상 늘어난다. 이제 케이크는 단순한 디저트를 넘어, 기념일을 완성하는 데 빠질 수 없는 음식이 됐다.
하지만 이 익숙한 장면은 국경을 넘는 순간 다른 풍경이 된다. 예전, 독일에 사는 친구의 생일파티에 초대받아 케이크를 사러 현지 제과점을 찾았을 때였다. 그곳에서 뜻밖의 문화 차이를 경험했다. 케이크의 본고장인 유럽이 한국보다 선택지가 더 많을 거라는 예상을 깨고, 독일 동네 제과점에서는 한국에서 흔한 생일 케이크를 찾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대신 현지 제과점에는 간식으로 먹을만한 소박한 형태의 파운드 케이크류가 많았다. 당황한 내가 친구에게 생크림 케이크처럼 특별한 날 이벤트용으로 쓸 케이크는 어디서 살 수 있냐고 물었더니, 독일에서 케이크는 ‘사는 것’보다 ‘굽는 것’에 더 가깝다고 했다. 한국에서 케이크가 특별한 날 마음을 전하는 상징이라면, 유럽에서는 일상 속에서 직접 구워 즐기는 문화의 일부였다.
실제로 독일, 프랑스 등 유럽 주요국의 케이크 소비는 ‘홈베이킹’과 ‘장인정신’을 중시하는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다. 독일은 ‘카페 운트 쿠헨(Kafee und Kuchen: 커피와 케이크)’이라는 오후 티타임 문화가 있어, 이 시간에 맞춰 직접 구운 케이크를 가족이나 이웃과 나눠 먹는다. 영국 또한 잼과 크림을 곁들인 스콘, 빅토리아 스펀지 케이크처럼 전통적인 레시피가 여전히 사랑받고 있으며, 마트에는 DIY 홈베이킹 키트가 다양하게 구비되어 직접 굽는 문화가 유지되고 있다. 같은 유럽에서도 프랑스는 한국처럼 제과점에서 케이크를 구매하는 비중이 높은 편이다. 단, 일상적인 빵을 판매하는 제과점인 블랑제리(boulangerie)와 케이크나 디저트를 판매하는 소규모 장인 제과점인 파티스리(patisserie)가 구분되는데, 제과 장인인 파티시에(patissier)가 만드는 오페라, 프레지에 같이 완성도 높은 전통적인 디저트가 인기가 많다.
반면, 아시아 특히 한국에서는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인다. 한국의 케이크 시장은 단순한 ‘맛’과 ‘기념’의 차원을 넘어서, 시각적이고 디지털적인 ‘경험’으로 진화 중이다. 맛보다 먼저 사진을 찍는 시대, 케이크는 이제 SNS 속 ‘나의 감성’과 ‘기념의 순간’을 인증하는 매개체가 됐다. 이에 케이크 선택의 핵심 요소로 온라인에서 공유 가능성, 개성을 살린 맞춤형 제작, 차별화 콘셉트 등이 부상했다. 애니메이션 캐릭터 케이크, 제철 과일을 활용한 프리미엄 케이크, 전통 떡을 변형한 ‘앙금 케이크’, 생화로 장식한 ‘꽃 케이크’, 심지어 ‘치킨 케이크’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케이크는 매일 새로워지고 있다.

여기에 최근에는 푸드테크 스타트업의 등장도 눈에 띈다. 일부 기업은 온라인으로 케이크 디자인을 주문하면, 3D 프린터가 자동으로 아이싱과 토핑을 케이크 위에 올려주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는 단지 먹는 디저트를 넘어, 케이크가 ‘예술’이자 ‘기술’의 접점에서 소비되고 있다는 것을 상징한다.
한국의 케이크는 유럽의 전통과는 또 다른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손맛보다 스토리텔링, 장인정신보다 커스터마이징, 그리고 일상보다 SNS 속의 특별한 경험이다. 디저트 한 조각에 담긴 사회의 풍경은, 때로는 그 어떤 문화 설명보다 많은 것을 말해준다.
서울대 웰니스융합센터 책임연구원
■ 한 스푼 더 - 케이크·설탕 과학
케이크의 품질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바로 설탕이다. 설탕은 단순히 달콤한 맛을 내는 재료가 아니라, 수분을 끌어당기고 유지하는 ‘습윤제(humectant)’ 역할을 한다. 반죽 속 수분을 잡아주기 때문에 케이크는 굽는 동안 수분을 덜 잃고 더 부드럽고 촉촉한 식감을 유지할 수 있다. 건강을 고려해 설탕을 줄이거나 알룰로스와 같은 대체 감미료를 사용할 경우, 이러한 수분 유지 기능이 약해지면서 케이크가 쉽게 퍽퍽하거나 부서지기 쉬워질 수 있다.
설탕은 또한 케이크 겉면이 노릇하게 구워지는 마이야르 반응(Maillard Reaction)에도 관여하여, 풍미와 색감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설탕을 줄이면 맛뿐 아니라 식감, 외관까지 영향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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