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Global Window - 범죄와 전쟁…‘철권정치’ 우려도
에콰도르 “국가 교정모델 강화”
온두라스, 긴급 감금센터 건립
아르헨 “범죄 맞서 국민에 자유”
코스타리카, 부켈레에 훈장수여
부켈레 열풍에 모방 나서지만
갱단 청산에 큰 효과 못 거둬
무고한 시민 수감 등 부작용도

고질적인 치안 불안 문제로 골머리를 앓는 중남미 국가 지도자들이 취임 후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해 치안을 안정시킨 나이브 부켈레 엘살바도르 대통령 따라 하기에 나서고 있어 주목된다. 잇단 정치인·법관·경찰 피살(멕시코), 대통령 후보 암살(에콰도르) 등으로 국민들의 불안감이 커지자 강력한 범죄 소탕 효과를 거둔 부켈레식 치안 정책 도입을 통해 인기 회복을 노리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안전을 위해서는 민주주의와 인권쯤은 희생시킬 수 있다는 부켈레식 정책 확산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마노 두라(mano dura·철권 통치), 범죄와의 전쟁 선포한 부켈레 = 부켈레 대통령은 강력범죄 조직 소탕 정책으로 엘살바도르 국민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아 지난해 2월 재선에 성공했다. 부켈레 대통령은 2019년 첫 취임 후 카르텔과 부패 행위자들에 대한 무관용 정책을 펼치며 2015년 인구 10만 명당 105.2건에 달했던 살인율을 2023년 2.4건까지 떨어뜨렸다. 이는 아메리카 대륙에서 가장 낮은 살인율 수치였다. 또 스펙테이터 인덱스(The Spectator Index)에 따르면 지난해 엘살바도르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은 114건으로 집계됐다. 이는 2023년 대한민국에서 발생한 살인사건 수(801건)보다 낮은 수치다.
소위 ‘부켈레 모델’로 여겨지는 치안 정책은 범죄 행위를 억제하기 위해 예방이나 재활보다는 제재와 처벌에 초점을 두고 있다. 특히 중남미 최대 규모인 4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엘살바도르 테러범수용센터 세코트(CECOT)는 ‘테러리스트’로 규정된 갱단원을 한꺼번에 가둬놓기 위해 부켈레 대통령이 구상한 시설이다. 최근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자국에서 추방한 불법 체류 외국 범죄 조직원을 ‘위탁 수감’하며 전 세계의 집중을 받기도 했다. 수년 전 ‘전 세계 최악 수준’이라고 평가받던 엘살바도르 치안이 단시간에 안정될 수 있는 이유기도 하지만, 외부 활동에 대한 엄격한 금지와 변호인 및 가족 접견 제한 등 수감자에 대한 인권 침해 논란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부켈레 대통령의 리더십은 권위주의와 민주주의, 안보와 인권 사이 균형이라는 세계적 논쟁을 촉발했다”고 지적했다.
2022년 3월 이후 엘살바도르는 8만3000명 이상을 투옥했으며 나흘에 한 명꼴로 수감자가 사망한 것으로 밝혀졌다. 부켈레 대통령은 2024년 9월 미주인권재판소(IACHR)의 비상사태 연장 중단 요청을 무시하고 현재까지 총 39차례 연장한 바 있다. 이 기간 수백 명을 동시에 재판하는 대규모 사법 절차 진행으로 8000명의 무고한 시민이 수감되기도 했다고 현지매체 라프렌사는 전했다.
◇부켈레 따라 ‘범죄와의 전쟁’ 선포한 중남미 국가들 = 갱단원의 갈취와 폭력 범죄에 수시로 노출됐던 베네수엘라 국민은 물론 중남미 국민들도 부켈레 대통령의 정책에 환호하고 있다. 실제로 라틴계바로미터 2024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부켈레 대통령은 최근 선종한 프란치스코 교황을 제치고 2년 연속 라틴아메리카에서 가장 높은 평가를 받는 지도자로 뽑혔다. 이에 힘을 얻은 부켈레 대통령은 대놓고 자신을 ‘세계에서 가장 쿨한 독재자’라고 칭하며, 사실상 권위주의 정권을 유지하겠다는 발언을 서슴지 않고 있다. 이에 민심을 잡기 위해 ‘부켈레화’ 정책을 선호하는 중남미 국가가 늘어나고 있다.
에콰도르는 지난달 30일 보도자료를 통해 “국가 안보·치안 사무를 관장하는 대표단이 라틴아메리카에서 가장 현대적이며 안전한 교정 시설을 점검했다”며 국방부 장관과 내무부 장관의 세코트 방문 사실을 공개했다. 에콰도르 히안 카를로 로프레도 국방장관과 존 레임베르그 내무부 장관은 세코트를 답사한 자리에서 도시로부터 멀리 떨어진 입지, 군사적 접근 통제 용의성, 군경찰교정 당국 간 협업 시스템 구축, 인프라의 기능적 단순화 등에 대해 “적절하고 훌륭하다”는 평가를 내렸다. 로프레도 장관은 “이곳에서 얻은 귀중한 아이디어를 에콰도르로 가져와 국가 교정 모델을 강화할 것”이라고 피력했다.
2023년 여성 교도소에서 발생한 소요 사태로 40명이 숨지기도 했던 온두라스는 사람이 거의 살지 않는 동부 지역 올란초와 그라시아스아디오스 사이에 2만 명 수용 규모의 ‘긴급 감금센터’(CRE)를 건립하기로 하고 관련 절차에 착수했다. 온두라스 정부는 또 카리브해 섬 쪽 방향으로 2000명 규모의 다른 교도소 건설 계획도 다듬고 있다. 아르헨티나의 파트리시아 불리치 안보장관은 “범죄에 강경하게 맞서고 정직한 아르헨티나 국민에게 자유를 줄 것이다”라며 부켈레식 모델을 채택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한편 로드리고 차베스 코스타리카 대통령은 부켈레 대통령에게 코스타리카 정부가 수여하는 가장 높은 훈장인 ‘모라 페르난데스’를 수여했다. 이는 부켈레 대통령이 중미 안보에 이룬 진전을 기리기 위한 것이다.
◇부켈레만 성공한 ‘부켈레식 철권 정치’ = 중남미 각국 정부가 부켈레 대통령을 따라 강경책 집행에 나섰음에도 정작 엘살바도르 외에 효과를 거둔 국가는 거의 없다. 플로리다 국제대학의 호세 미겔 크루스 범죄학 교수는 “부켈레는 멕시코의 한 자치구만 한 규모의 나라를 통치하고 있어 (다른 나라에 비해) 일이 분명히 수월하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엘살바도르 영토 크기는 에콰도르 13분의 1, 콜롬비아 54분의 1, 브라질 400분의 1에 해당해 정부가 갱단을 청산하기 위해 필요한 시간과 재정적 노력이 적게 든다. 현지 언론 누에바 소시에다드는 카르텔의 본거지로 꼽히는 멕시코나 에콰도르의 경우 갱단이 오랜 기간 발전·분열되어 와 청산이 어렵다고 지적했다.
부켈레 대통령의 정책이 정부 재정 집행의 비효율성을 가져온다는 지적도 나온다. CNN 등에 따르면 엘살바도르는 부켈레 대통령 집권 기간 10만 명당 수감자 1000명 이상을 기록하면서 지구상에서 수감률이 가장 높은 나라로 변모했다. 이에 감옥 과밀이라는 구조적 문제는 수감자의 재통합이 일어나 정부가 폭력을 조장하는 역효과 우려가 제기된다. 자메이카 출신 범죄학자 제이슨 매케이는 “살인율을 낮추는 데 부켈레의 수법이 매우 효과적이며 매력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면서도 “(부켈레 대통령 정책의) 문제는 효과가 단기적일 뿐만 아니라 인권 문제도 수반된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지연 기자주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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