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민의 정치카페 - 이재명에 포획된 대중

 

국회 장악한 민주당, 정권 노리며 노골적 사법 통제… 그래도 국민 절반이 지지

대중은 보수의 자폭에 냉소 보내고 이재명 이니셔티브에 열광… ‘대중독재’의 원형

더불어민주당은 오직 한 사람을 위해 움직인다. 민주당이 절대 과반을 차지한 국회 역시 이재명을 위해 기능한다. 숱한 범죄 혐의를 안은 채 대권에 도전하는 한 사람을 위해 당과 국회가 혼연일체가 돼 사법부 수장을 협박하고 삼권분립을 위협하는 대한민국. 의회민주주의가 이렇게 타락한 적은 없었다.

그럼에도 이재명에 대한 여론의 지지는 50%를 넘나든다. 대중은 어떻게, 왜 이재명에게 포획됐나.

◇한 사람을 위한 국회

대법원이 이재명의 공직선거법 2심 무죄 판결에 대해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한 것은 지난 1일. 다음 날인 2일부터 1주일간 이재명 한 사람의 사법 방탄을 위한 민주당 주도 법안이 14건 발의됐다.

#1 형사소송법 개정안: 대통령에 당선된 피고인의 경우 재직 기간 형사재판 절차를 중지하는 법 개정안이 2일 하루 5건을 포함, 모두 6건이 쏟아졌다. 헌법 제84조에 따라 내란 또는 외환을 제외하고는 재직 중 형사상의 소추를 받지 않고, 이미 공소 제기된 경우엔 대통령 임기 내내 재판이 중단된다는 내용이 담겼다. 8가지 사건, 12개 혐의로 5개 재판을 받는 이재명을 위한 입법이다.

#2 공직선거법 개정안: 허위사실공표 혐의로 재판 중인 이재명의 ‘면소’를 노린 법 개정안도 줄줄이 등장했다. 민형배 의원 등 11명은 2일 헌법상 표현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고 허위사실공표의 구성요건을 명확히 하도록 한 개정안을 내놨다. 민형배 의원 등 11명은 8일 선거 기간 중 후보자에 대한 공판절차를 중지하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한 법안을 발의했다.

#3 법원조직법 개정안: 집권 후 사법부 장악을 노린 입법도 봇물 터졌다. 8일 장경태 의원 등 10명은 대법관 수를 14명에서 100명으로 증원하는 내용의 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앞서 지난 2일 김용민 의원 등 14명은 대법관 수를 30명으로 늘리는 개정안을 꺼내 들었다. 민형배 의원 등 12명은 대법관 3분의 1 이상을 판·검사가 아닌 사람으로 임명하는 것을 담은 법안을 내놨다.

#4 헌법재판소법 개정안: 대법원 확정판결에 불복해 헌법소원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한, 이른바 ‘4심제’ 논란을 낳은 법안이 7일과 8일 연속 발의됐다. 이재명 한 사람을 위해 민주주의 국가의 글로벌 표준으로 정착된 사법 시스템마저 바꿔버리겠다는 것이다.

◇한 사람을 위한 사법

이재명이 대통령이 되면 형사재판은 중단되고, 특히 공직선거법 재판은 면소 판정을 받게 될 것이다. 이미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민주당의 온갖 협박 속에 재판을 대선 뒤로 미뤘다. 다른 재판들도 줄줄이 연기됐다. 이용우 전 대법관은 12일 언론 인터뷰에서 “사법이 정치권력에 무릎을 꿇은 것”이라고 했다. 민주당이 파기환송에 대해 ‘사법 쿠데타’로 공격하며 대법원장 탄핵, 특검법을 거론하는 건 이재명을 위한 사법 장악 행태가 극에 이르렀음을 보여준다.

사법 장악의 하이라이트는 ‘대법원 재구성’ 계획이다. 대법관 수를 현재의 두 배 이상으로 늘려 불리한 좌우 판도를 바꾸겠다는 것이다. 김종민 변호사는 이렇게 썼다. “대법관을 탄핵하고 대법관 수를 증원하겠다는 것은 좌파와 권위주의 정권의 족보 있는 전통 방식이다. 독립적 사법기관 구성원을 마음대로 해임할 수 없을 경우 대법원 재구성을 통해 우회하는 것이다.”(페이스북)

똑같은 수법을 선진 독재자들에게서 본다.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는 집권 후 대법관을 20명에서 32명으로 늘렸다. ‘혁명적’ 측근들을 대법관에 임명한 후 집권 기간 정부에 반대하는 대법원 판결을 ‘0’건으로 만들었다. 아르헨티나의 카를로스 메넴이 취임 후 가장 먼저 착수한 과업 또한 대법관 증원이었다. 5명으로 구성된 대법원에 친구 4명을 더 앉히려 총원을 9명으로 늘렸다. 헝가리의 빅토르 오르반은 헌법재판관을 11명에서 15명으로 늘렸고 집권당 단독으로 재판관을 임명하도록 해 헌재를 장악했다.

미국 뉴딜정책의 영웅 프랭클린 루스벨트도 대법원 재구성을 시도한 일이 있었다. 하지만 그가 ‘사법부 재조직법안’을 추진하자 집권 민주당이 “불필요하고 전례 없으며 위험하기 짝이 없는 짓”이라며 폐기시켰다. 대한민국의 민주당이 “개싸움은 룰을 따지지 않는다”며 사법부 장악을 드라이브하는 것과 극명하게 대비된다.

◇대중독재의 그림자

명백히 닥친 민주주의의 위기 상황에서도 유권자의 절반에 이르는 대중은 왜 침묵하거나 동조할까. 입법권력을 쥔 민주당이 대권을 목전에 두고 사법부에 대한 노골적인 통제와 간섭을 벌이는데도 대중의 광범위한 동의가 이뤄지는 건 왜일까. 이재명에 대한 견고한 지지는 최근 일련의 여론조사에서 확인된다. 11일 발표된 리얼미터 조사(5월 7∼9일)에 따르면 이재명·김문수·이준석 3자 대결 때 이재명은 무려 52.1%의 지지율을 나타냈다.

민주당 내에서 “삼권분립은 막을 내려야 한다” “사법부, 한 달 후에 보자”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지만, 대중의 우려나 반발은 크게 체감되지 않는다. 다수 대중은 민주주의의 대원칙인 삼권분립(分立)이 흔들리고 마침내 삼권불립(不立) 상황으로 치닫게 되더라도 용인할 태세다. 이는 향후 펼쳐질지도 모를 ‘대중독재의 원형’으로 해석된다.

임지현 교수 등이 쓴 ‘대중독재’(2004)에 따르면 근대의 독재는 위로부터의 강제뿐 아니라 아래로부터의 광범위한 동의를 통해 체제의 정통성을 마련한다. 즉 현대사회에서의 독재는 대중의 동의를 얻어내고 자발적 동원 체제를 만들어내는 다양하고 정교한 헤게모니적 장치들이 내장돼 있다는 것이다. 전근대의 딱딱한 스타일과는 달리 ‘부드러운’ 특성을 지닌 독재, 알렉시 토크빌이 일찌감치 예견했던 ‘연성독재(soft despotism)’다.

한국 사회에 떠오르는 대중독재의 원형, 그리고 동시대인들에 의한 광범위한 동의는 하늘이 내린 인물이라는 신성화, 민족문제 등 이슈의 상징화, 극성 팬덤의 광신화, ‘내란세력’에 대한 증오의 조직화 등 ‘정치종교’적 특징 속에서 견고해진다. ‘대중독재’에 따르면 정치가 신화의 옷을 입고 상징으로 통과의례를 할 때 대중은 지도자에 대해 신앙과 헌신과 희생심을 발휘하게 된다.

◇냉소와 열광

이미 국회를 장악한 이재명과 민주당은 대선 승리 후 사법부를 손아귀에 넣고 헌법재판소와 예산편성권까지 장악하기 위한 치밀한 작전을 전개 중이다. 보수가 충격적 방식으로 끊임없이 스스로 확인 사살하며 정치적 냉소를 불러온 와중에 대중은 이재명 이니셔티브에 포획됐다. 20여 일 남은 대선 레이스에 천지개벽과 같은 격변이 일어날 수 있을까.

전임기자, 행정학 박사

■ 용어 설명

‘연성독재’란 겉으로는 민주주의를 내세우나 실은 흑백논리·이중잣대·선전선동·민의독점 등 특징을 지니며 궁극엔 다수의 폭정으로 가는 것. 알렉시 토크빌이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제시.

‘대중독재’는 정치권력의 강제와 대중에 의한 광범위한 지지·동의가 결합되면서 나타난 근대적 의미의 독재. 임지현 교수 등이 2004년에 펴낸 ‘대중독재’가 사회적 논란과 공방을 불러.

■ 세줄 요약

한 사람을 위한 국회: 민주당과 국회는 오직 한 사람 이재명을 위해 존재함. 대법원의 공직선거법 파기환송 다음 날부터 1주일간 국회에서는 이재명의 사법 방탄을 위한 민주당 주도 법안이 무려 14건이나 발의돼.

한 사람을 위한 사법: 숱한 범죄 혐의를 안은 채 대권에 도전하는 한 사람을 위해 당과 국회가 사법부 수장을 협박하고 ‘대법원 재구성’을 시도하며 삼권분립을 위협. 의회민주주의가 이렇게 타락한 적은 없었음.

대중독재의 그림자: 명백한 민주주의 위기에서도 유권자의 절반은 침묵하거나 동조. 보수가 끊임없이 자폭하며 정치적 냉소를 부르는 와중에 대중은 이재명 이니셔티브에 포획돼. 이는 대중독재의 원형으로 보임.

허민 전임기자
허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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