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산 =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
‘제2의 백남준’으로 불리는 미디어 아티스트 정연두, 여성주의 표현과 거리문화를 융합해 주목받는 일본 작가 리이(LY), 지난해 서울 리움미술관 화제의 전시 주인공인 필립 파레노까지…. 새롭고 묵직하고 매력적인 세 개의 전시가 부산에서 동시에 열리고 있어 눈길을 끈다. 상반기 국내 최대 미술품 장터인 아트부산은 11일로 막을 내렸으나, 아트부산과 함께 시작된 부산의 미술 축제, ‘아트 위크’는 이제 시작이다. 올해 아트부산은 아티스트와 관람객, 컬렉터들의 접점을 늘리는 데 초점을 맞추며, 지역과 연계한 전시 및 행사들을 통해 초여름의 부산을 ‘아트 도시’로 탈바꿈시켰다. 지금 부산에 간다면 반드시 봐야 할, 아니 부산에 가서라도 반드시 봐야 할 전시를 직접 둘러봤다.

◇블루스 음악과 막걸리에 취하는 미술관… 정연두의 ‘불가피한 상황과 피치 못할 사정들(The Inevitable, Inacceptable)’=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콘트라베이스 연주자의 영상이 실물 크기로 관람객을 반긴다. 그리고 은은하게 들려오는 블루스 음악. 저 멀리서 색소폰과 피아노 소리가 뒤섞여 흥겹게 다가온다.
부산 수영구 복합문화공간 F1963에 위치한 국제갤러리 부산점에서 열리고 있는 정연두 작가의 개인전은 작은 공연장 같다. 색소폰, 건반, 드럼 등 각기 다른 블루스 음악 연주자들의 영상이 세워져 있고, 건너편엔 막걸리 발효에 쓰이는 항아리 단지, 그 위로 발효 중인 메주 사진 시리즈가 가득하다. 여기에, 고려인의 사연을 가사로 염색한 천에서 ‘BTS’란 알파벳을 발견하고, 제빵사가 흩뿌려 놓은 밀가루의 사진에서 은하수를 본다.
하나하나 그 자체로 인상 깊지만, 둘러보다 문득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이게 다 무슨 상관인가. 블루스와 미생물의 발효, “한국은 참 아름답지만(…) 불행히도 저는 한국인이 될 수 없다”고 노래하는 고려인, 그리고 밀가루가 만든 우주. 그것들엔 그저 전시 제목처럼 각기 다른 ‘불가피한 상황과 피치 못할 사정들’이 있을 뿐 아닐까. ‘제2의 백남준’으로 불리며 미디어아트의 새로운 계보를 써내려가고 있는 정 작가의 말을 들어보자. 그는 이번 전시를 감싸는 블루스 음악에 대해 “흥겨운 음악이라기보다 주로 삶의 잔잔한 이야기들을 유머러스하게 이야기 형식으로 전개한다는 점에 이끌렸다”고 했다. 그제야 삶의 고단함을 잊기 위해, 흑인들이 자유롭게 풀어낸 음악인 블루스가 한이라는 고려인의 정서를 품는다는 걸 깨닫는다. 이는 다시 막걸리와 메주에 가 닿는다. 삶이라는 건 결국, 발효라는 화학 변화를 겪어 새로운 풍미를 만드는 과정이라고, 전시는,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을, 열심히 이해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7월 20일까지.

◇일본 작가가 감각한 부산, 내면의 풍경이 되다… 리이의 ‘노래하는 새들’= 부산 해운대 그랜드조선호텔 4층에 자리한 갤러리 오케이앤피(OKNP)에서 아시아 최초로 소개하는 일본 작가 리이의 개인전은 기묘한 감성을 불러일으키는 작품들을 접할 수 있다. 리이 작가는 정식 미술 교육 대신 거리문화가 발전하는 과정과 함께 성장했는데, 초기에 집중했던 여성주의 표현형식에 스트리트 감성을 접목해 최근 프랑스와 미국 등에서 반향을 일으키는 중이다.
작가는 유령 혹은 그림자처럼 보이는 ‘러브(LUV)’라는 캐릭터를 자주 등장시킨다. ‘노래하는 새들(Singing Birds)’이라는 제목으로 선보인 이번 전시에도 러브는 어디에든 있다. 햄버거 가게 앞에, 숲 속에, 화병 속에, 혹은 길섶에. 언제나 무표정한 러브는 감상자를 다양한 해석과 상상으로 이끈다. 러브가 검정 옷을 입은 건 이를 위함일 것이다. 검정이란 애초 아무 색도 아니면서 동시에 모든 색이니까. 러브가 안내하는 작가의 내면 풍경에 부산이 영향을 끼쳤다는 걸 염두에 두고 관람하면 전시가 더욱 흥미로워진다. 리이 작가는 이번 전시를 위해 부산을 직접 방문해 도시를 스케치했고, 그때 감각한 부산이 작품 곳곳에 조용히 녹아들어 있다. 전시장에서 조망할 수 있는 아름다운 해운대 바다는 덤이다. 6월 8일까지.

◇다시, 또, 새롭게 만나는 현대미술 거장 필립 파레노= 지난해 서울 리움미술관 개관 20주년 특별전으로 만날 수 있었던 프랑스 작가 필립 파레노를 부산에서 다시, 새롭게 경험할 기회다. 부산 해운대구 달맞이길에 자리한 조현화랑과 최근 서울에서 확장 이전하며 신선한 기획을 선보이고 있는 독일 갤러리 에스더 쉬퍼가 협업한 전시. 부산에선 처음 선보이는 파레노의 개인전이다.
지금 세계 미술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거장 중 한 사람인 파레노는 영화와 조각 드로잉, 텍스트 등 다양한 매체를 아우르는 작업으로 유명하다. 이번 전시에서는 스페인 화가 프란시스코 고야의 집을 배경으로 공간 이미지 시간의 관계를 탐구한 영상 작품 ‘귀머거리의 집’과 화려한 네온사인과 순수한 빛을 결합한 대표작 ‘마키’ 시리즈를 소개한다. 지난해 리움미술관에서 선보인 아시아 최대 회고전 ‘보이스’를 인상 깊게 본 관람객이라면, 규모는 작지만 부산이라는 맥락에서 펼쳐지는 파레노의 세계가 새삼스럽게 다가올 것이다. 6월 1일까지.
박동미 기자주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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