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정숙 ‘사운드 스트로크’, 130×130㎝, 캔버스에 아크릴, 2024.
류정숙 ‘사운드 스트로크’, 130×130㎝, 캔버스에 아크릴, 2024.

대학 시절, 거리에서 싫어했던 은사님과 마주쳤지만, 나도 모르게 외면한 적이 있다. 옹졸하게도 과거 상처에 대한 앙갚음이라 여겼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입장이 바뀌었다. 백화점 통로에서 제자인 듯한 사람과 마주쳤지만, 그는 날 차갑게 외면했다. 충격을 받았고, 비로소 그 선생님이 받았을 상처를 헤아리게 되었다.

이렇듯 5월은 성찰의 계절이다. 나로 인해 상처를 받은 사람이 어디 한둘이겠는가. 잡다한 기억의 침전물 뭉치들이 스멀스멀 떠오른다.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어떤 회한의 앙금들을 들키기라도 한 것 같다. 류정숙의 막대풍선 같은 굵은 필치들이 과오를 반성하는, 딱 이 정황을 거울처럼 비춰주고 있다.

일견 화면은 산 형상으로 읽히면서도 서법 추상 양식에 뿌리를 드러낸다. 다분히 자동기술적인 것들로서 그 출처가 내면임을 시사해준다. 서법적인 스트로크 자체가 그러데이션을 띰으로써, 효과는 심미성만이 아니다. 관찰자의 온갖 경험이 투사되고 있는 것이다. 상처를 받은 분들께 머리 숙여 사죄를 드린다.

이재언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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