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학 시절, 거리에서 싫어했던 은사님과 마주쳤지만, 나도 모르게 외면한 적이 있다. 옹졸하게도 과거 상처에 대한 앙갚음이라 여겼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입장이 바뀌었다. 백화점 통로에서 제자인 듯한 사람과 마주쳤지만, 그는 날 차갑게 외면했다. 충격을 받았고, 비로소 그 선생님이 받았을 상처를 헤아리게 되었다.
이렇듯 5월은 성찰의 계절이다. 나로 인해 상처를 받은 사람이 어디 한둘이겠는가. 잡다한 기억의 침전물 뭉치들이 스멀스멀 떠오른다.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어떤 회한의 앙금들을 들키기라도 한 것 같다. 류정숙의 막대풍선 같은 굵은 필치들이 과오를 반성하는, 딱 이 정황을 거울처럼 비춰주고 있다.
일견 화면은 산 형상으로 읽히면서도 서법 추상 양식에 뿌리를 드러낸다. 다분히 자동기술적인 것들로서 그 출처가 내면임을 시사해준다. 서법적인 스트로크 자체가 그러데이션을 띰으로써, 효과는 심미성만이 아니다. 관찰자의 온갖 경험이 투사되고 있는 것이다. 상처를 받은 분들께 머리 숙여 사죄를 드린다.
이재언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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