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미 논설위원

새 교황이 선출된 뒤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이 즉위명 정하기다. 주로 성인이나 역대 교황 중에 존경하는 이의 이름을 따른다. 즉위명은 초기 기독교 역사에선 존재하지 않다가 6세기경부터 자리 잡았다. 그 시조는 제56대 교황 요한 2세(재위 533∼535년)로 자신의 이름인 메르쿠리우스가 로마신화 속 상업과 교역의 신으로 ‘이교적’이라는 이유로 즉위명을 따로 썼다. 그 뒤로 가장 많이 사용된 즉위명은 요한(21명)이며 이어 그레고리(16명), 베네딕트(15명) 그리고 8일 선출된 제267대 새 교황이 선택한 레오이다. 사자를 뜻하는 레오는 강인함, 용기, 리더십을 상징한다. 실제로 제45대 교황이었던 레오 1세(재위 440∼461년)는 서로마제국이 외세 침략에 속수무책일 때 훈족과 반달족을 물리친 것으로 유명하다.
새 교황 레오 14세는 지난 10일 추기경단 연설에서 자신의 즉위명에 대해 직접 설명했다. “레오 13세(재위 1878∼1903년)가 역사적 회칙 ‘새로운 사태(Rerum Novarum)’를 통해 처음으로 산업혁명의 맥락에서 사회 문제를 다뤘다”며 “오늘날 교회는 또 다른 산업혁명과 인간의 존엄, 정의, 노동 수호에 새로운 도전을 제기하는 인공지능(AI) 발전에 대응해 사회적 가르침이라는 보물을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산업혁명 초기인 1891년 ‘새로운 사태’를 통해 자본주의를 비판하며 노동자권리, 국가의 약자 보호 의무 등을 밝힌 레오 13세를 계승해 우리 시대 새로운 혁명, 특히 AI 혁명에 대해 근본적으로 대응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최근 가톨릭 교회는 AI에 깊은 관심을 보여 왔다. 전임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해 가톨릭 역사상 처음으로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참석해 AI 위해성에 대해 연설하고 1월에는 세계경제포럼(WEF) 총회에 서한을 보내 “AI는 인간 존엄성을 해치지 않고 공동선을 위해 봉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기술이 불평등을 심화하고 갈등을 악화시킨다면 진보가 아닌 퇴보” “윤리 없는 기술은 인간을 억압한다”고 밝혀 왔다. 개인은 새 기술 익히기에 바쁘고, 제도와 법률·윤리는 기술 발달 속도에 한참 뒤지는 시대, AI 담론의 한 축을 자임한 교황의 일성은 휘몰아치는 기술 혁명 속 우리의 과제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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