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일 강릉 순포해변서 진행… 손숙·송승환 등 초청
주연 영화 마지막 촬영 겸해
생전 유쾌한 장례 치르기로
“늘 응원해 주신 분들 오셔서
웃고 떠들며 축복해주세요”

‘꽃은 필요 없습니다./꽃 대신 기억을 들고 오세요./ 마지막으로 들었던 나의 목소리를/ 내가 좋아했던 대사를/오래된 이야기와 가벼운 농담을/우리가 함께 웃었던 순간을 안고 오세요.’
올해 83세인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박정자 배우가 지인 150여 명에게 이런 내용의 부고장(訃告狀·사진)을 냈다. 오는 25일 오후 2시 강원 강릉 순포해변에서 자신의 장례를 치를 예정이니 참석해달라는 것이다.
“제가 살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신세를 졌을까요? 그분들이 제가 죽을 때 와서 웃고 떠들며 다른 세상으로 가는 것을 축복해줬으면 합니다. 그래서 ‘장례 축제’를 미리 열어서 제 평생의 동지였던 분들을 초대하는 것입니다.”
박 배우는 12일 문화일보 기자에게 자신의 부고장을 발송한 까닭을 이렇게 설명했다. 기실 이번 장례는 영화 ‘청명(淸明)과 곡우(穀雨) 사이’의 마지막 촬영을 겸한 것이다.
“배우 유준상 씨가 제작하고 감독을 하는 예술영화입니다. 한 여배우의 생애 여정을 따라가며 삶과 죽음의 의미를 헤아려보는 작품인데, 마지막 촬영 때 지인들을 초대하겠다는 저의 제안을 유 감독이 흔쾌히 받아준 것이지요.”
유준상(55) 감독은 정극과 뮤지컬 무대를 넘나드는 배우로 활약하는 한편, 장편 영화를 수차례 연출한 바 있다. 그는 대학에서 연출 전공을 하다가 연기로 전향했으나 감독에 대한 꿈을 지켜왔다고 했다. 이번 작품은 그의 꿈을 펼치는 한편, 죽음에 대한 평소 고민을 담은 것이다.
“제가 20대에 아버지를 여읜 후 죽음을 늘 의식해왔어요. 3년 전 노래를 만들었는데, 내가 죽으면 웃으면서 보내달라는 게 주제였어요. 성악가 임선혜 씨가 노래를 불러서 녹음을 마친 후 뮤직비디오를 찍으려다가 이 주제로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주인공으로 박정자 선생님이 떠올라서 전화를 드렸더니, 선생님께서도 마침 그런 영화를 찍고 싶으셨다고 하시는 거예요.”
그렇게 의기투합한 박정자, 유준상 두 사람은 촬영을 진행하며 작은 제작비 속에서도 충실한 내용을 담기 위해 애썼다. 독특한 형식에 보편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을 담아 세계 유수의 영화제에서 인정을 받고 싶다는 게 두 사람의 공통된 소망이다.

이 영화의 제목은 봄꽃이 만발하는 시기를 뜻한다. 박 배우는 “유 감독이 제목을 지었는데,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시간을 시적 상징으로 표현한 것이 참 마음에 든다”고 했다.
두 사람의 설명에 의하면, 장례 장면에서 하얀 한지로 만든 미니어처 상여를 박 배우가 직접 들고 가며 지인들이 뒤를 따를 예정이다. 전통 상여 장례를 새롭게 해석하며 그 축제성을 한껏 강조하고 싶다는 것이다. 누구나 피하고 싶은 죽음이지만, 삶의 절차로서 좀 더 편안하게 맞이해보자는 뜻이다.
박 배우가 이번 장례 축제에 초대한 지인들은 80대부터 30대까지 연령이 폭넓다. 김동호(영화인), 김종규(박물관·출판인), 강부자(배우), 손숙(배우), 정지영(감독), 손진책(연출가), 장사익(소리꾼), 박인자(무용가), 양희경(배우), 신현웅(문화복지재단 대표), 송승환(배우·예술감독), 정병국(예술단체장), 박명성(연극기획자), 이창기(예술경영인), 유병안(건축가) 등 문화계 거장·중견들이 많다. 활동 영역이 다르지만 가깝게 지내온 후배들도 불렀다고 박 배우는 밝혔다. 그는 그들 모두에게 숙식을 제공한다.
“초대장을 만들어 발송하고, 숙소와 식사 장소를 마련하는 것이 힘들지만 보람 있습니다. 그동안 저의 연극을 봐 주고 늘 응원한 분들이니까요. 모두 전날 오셔서 강릉 선교장(船橋莊) 등에 묵으며 늦봄의 정취를 한껏 느끼셨으면 합니다. 어떤 분들은 부의금을 갖고 가야 하냐, 검은 정장을 입어야 하냐, 고민이 된다더군요(웃음). 그냥 빈손에 편한 복장으로 오셔서 장례식 순간을 환한 웃음으로 함께 맞아주셔요.”
장재선 전임기자주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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